프랑스 빵장수와 한국 떡장수

입력 2002-11-18 16:44 수정 2002-11-18 16:44
얼마 전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났습니다.


"빵의 명장 푸알란 사망.... 불(佛) 애도 물결"


부제는 이렇게 달려 있었습니다.


"라파랭 총리 `세계 식탁의 마술사를 잃었다` 성명"




내용인즉 프랑스의 제빵업자 `리오넬 푸알란`(57)이 헬리콥터를 직접 조종, 부인과 함께 리맹섬에 있는 별장으로 가던 중 추락사고로 사망했고, 이에 대해 `라파랭` 총리가 애도성명을 발표하고 언론들이 일제히 추도특집을 내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파리시민의 추모행렬도 이어졌다는군요.




푸알란은 진흙과 벽돌 화덕에 장작불로 빵을 만드는 16세기식 비법을 계승한 빵의 명장으로 유명했답니다. 파리 외곽에 있는 그의 빵공장에선 40명의 제빵기술자들의 하루에 1만5천개의 빵덩어리를 만들었다고 하구요.




제빵업자 집안에서 태어난 뒤 14살 때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 70년대에 가업을 이어받은 뒤엔 수많은 제빵기술자들을 찾아다니며 옛날 빵맛의 기법을 알아내 이를 재현했다는 상세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반드시 맷돌에 빻은 밀가루에 바다소금과 누룩을 써서 만든 무게 1.9kg짜리 빵덩어리를 구웠었다는 얘기도 있었구요.




이 기사는 제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우선 머나먼 남의 나라 빵장수가 죽었다는 기사를 국내 주요신문에서 인물면 톱으로 다룬 까닭, 빵장수가 세상을 떠났는데 총리가 애도성명을 내고 언론들이 일제히 추도특집을 내보내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직업관과 사회풍토 등등.




앞쪽은 나름대로 추정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저도 기자니까요. 파리 특파원의 눈으로 볼 때 `빵장수의 타계에 총리가 애도성명을 내고 언론들이 대서특필하는 프랑스의 사회상`은 충분히 기사가 된다고 본 것일 테지요, 아마. 특파원이 보낸 기사를 받아본 본사에서도 나름대로 주목할만하다고 판단한 것일 테구요.




며칠 뒤 같은 신문에 실린 칼럼에 이 일이 다시 한번 거론된 걸 보면 상당히 뉴스가치가 있다고 본 게 분명한 듯했습니다. 그러니까 빵의 명장이 사망했다는 사실보다 그의 사망에 대해 총리와 일반국민 모두 슬퍼한다는 데 주목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 역시 그 사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놀라웠습니다. "정말일까" "기자가 초를 좀 심하게 친 건(기사를 다소 부풀려서 쓰는 걸 `초친다`고 합니다) 아닐까". 어쨌거나 총리가 애도성명을 내지 않은 걸 냈다곤 할 수 없었을 테고, 신문에서 추모특집을 싣지 않았는데 실었다곤 할 수 없었을 테니 `푸알란`의 죽음이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건 틀림없습니다.




제빵업자, 우리 식으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일개 빵장수의 죽음에 온나라가 떠들썩하다는 것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요. 만일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분야건 나름대로의 기술로 장인이 되기만 하면 사회적으로 충분한 인정과 사랑을 받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돼도 너나 할 것 없이 대학 그것도 법대, 상대, 의대에 가겠다고 난리법석을 떨까요?




저는 엊그제 어느 대학교수가 신문칼럼에서 "커피를 나르는 건 천하고 서류를 들고 다니는 건 귀한 일이란 말인가" 라고 쓴 걸 보고 솔직히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교수의 논리는 커피 나르는 거나 서류 들고 다니는 거나 그게 그건데 채용시 여자들에게 "커피 심부름을 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못하게 함으로써 그나마 여자들에게 해당되는 "커피 나르는" 직종 취업도 가로막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묻고 싶었습니다. "그래, 교수님께선 커피 나르는 거나 서류 들고 다니는 게 똑같은 비중으로 생각되니 그동안 조교를 안시키고 직접 커피를 타서 드셨는지요? 그리고 그게 같은 비중이라면 왜 커피 나르는 일은 여자만 해야 하는 것일까요?"하구요




남녀차별금지법이나 여성발전기본법 양성평등채용법 등에 무리한 부분이 있다는 걸 부인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오죽하면 그런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지는 지에 대해선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여자가 돼 갖고 커피 나르는 게 뭐가 어때서?"라는 식의 논리를 펴는 건 정말이지 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빵을 만들건, 고기를 굽건 사회적으로 똑같이 대우한다면 뭣 때문에 기를 쓰고 엄청난 돈을 들여서 대학에 가려고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말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둥 꼭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느냐는 둥 하면서 실제론 빵을 만들거나 고기를 구우면 우습게 알고 책상머리에 앉아 서류를 만지거나 "사(士)"자가 들어가는 직업을 가져야 사람 노릇을 한다고 생각하는 통에 머리보다는 손을 쓰는 일을 훨씬 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을 외우느라 땀을 빼는 것 아닐까 싶은 것이지요.




사람마다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다 다를 수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손을 써서 하는 일은 천하고 머리와 입으로 하는 일만 중요하다고 우기고 있는 바람에 자라나는 세대와 부모 세대 모두 진흙탕 속에서 헤매고 있는 건 `혹` 아닐른지요.




공부를 안해도 된다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어느 분야건 수없이 많은 피땀 없이 `명장`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다만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각의 일이 모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치있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공인하는 풍토가 될 수는 없을까를 궁리해 보는 것이지요.




그러자면, 남의 나라 빵장수 사망기사만 크게 내보낼 게 아니라 한국의 떡장수에 대한 기사도 대문짝만하게 다루는 게 먼저가 아닐까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제빵업자 사망에 총리가 애도성명을 발표했다는 걸 알림으로써 우리나라에도 장인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내 매스컴들이 먼저 나서서 전통요리연구가 등 각종 장인들을 우대하고 관련기사를 크게 다룰 때 21세기를 맞아서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해소되지 않을까 한다면 너무 소박한 바람일까요. 직업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바꾸지 않는 한 대학입시 지옥은 영원히 사라지기 어려울 것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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