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청에서 김훈 선생님을 만나다

입력 2014-03-20 09:18 수정 2014-04-06 19:48







 


                  <사진제공ㅡ 성북 문화재단 구립도서관>


성북구청이 주최하고 성북 문화재단이 주관하며 성북구립도서관이 시행한 <김훈 작가와의 만남>(2014.3.15)에 다녀왔습니다. 성북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성북구립도서관에서는 주민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작가와의 만남>을 새롭게 디자인하였습니다.

성북구에서 유년과 청년기를 보낸 김훈 선생님을 강사로 초청한 것도 행사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강연회에<로맨틱앙상블ㅡ현악 3중주에 해금과 기타가 곁들여진 실내악>의 연주가 함께 하니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웠습니다.

진행은 사회자(이 명원 문학 평론가 경희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선생님의 작품<개>, <칼의 노래>, <흑산>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질문하고 김훈 선생님이 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사회자는 김훈 선생님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 진행을 물 흐르듯 순조롭게 이끌어 갔습니다.

먼저 성북구 돈암동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출생은 종로구 청운동이지만, 한국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 갔다 다시 서울로 올라 온 후엔 성북구에서 유년과 청년기를 보냈기에 이곳은 많은 삶의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돈암 초등학교,ㅡ휘문중.고등학교ㅡ 고려대학교까지)

“초등학교 시절, 학교 파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성북 소방서의 망루를 눈여겨 보곤 했다. 마을의 안전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얻었다.

소방관은 높은 망루에 앉아 동네를 살피다 연기가 나면 곧장 출동하는데, 인간이 인간의 재난에  덤벼들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그때부터 소방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싹텄다.“. (후일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쓰게 됨)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내 청춘에 결코 없었다. 당시의 꿈은 밥을 못 먹는 나라에서 먹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건전한 소망이다. 하지만 내 안에 쌓여 있는 것들을 언젠가는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이 세상의 바탕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인간의 존엄은 악의 구조와 싸우는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로 남아 있다“.

   작품<개>
집에서 기르던 개(진돗개 보리)의 발바닥 (까맣게 굳은살을 만져 보면 폭신폭신하다)에는 삼국사기가 쓰여져 있다. 청력은 인간의 50배, 후각은 인간보다 100배나 뛰어난 개의 내면을 나의 언어로 쓰고 싶었다. 개 발바닥의 굳은살엔 세상에서 버텨야 하는 힘이 함축돼 있다.

*. 개에서 읽었던 인상 깊은 구절(저의 개인적인 독서 경험)
'봄에 숲 속으로 들어가서 이리저리 빈둥거리고 있으면 나무들이 물을 빨아올리느라고 윙윙윙, 쉭쉭쉭, 쿨렁쿨렁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이들의 몸속도 그와 같은 모양이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몸속에서는 소리가 난다. 나무도 풀도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였다.'(99쪽)

‘점심때면 자기네들끼리만 먹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할 일 없이 들에 나가 쥐나 참새를 골탕 먹이면서 놀았다. 그런 여름날 하루는 너무 길어서 심심하고 배고팠다.'(101쪽)

‘나는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짖기로 했다. 짖고 또 짖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작품 <개>에 대한 작가의 말 중에서)

'나는 모른다, 주인님은 죽어서 땅 밑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인님의 관이 땅 속으로 내려갈 때 나는 우우우우 울었지만,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나는 울었다.'(192쪽)

*실물을 봐야만 글을 쓸 수 있다. 물건을 보면 실물감과 자신감이 생긴다. 내 몸을 통과하는 느낌들을 소중히 간직해 두었다가 생각이 익으면 글로 옮겨 적는다.
등장인물의 육체성과 욕망을 묘사할 때, 몸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둔다

' 작품<흑산>에서 조선의 천주교도 만여 명이 절두산에서 참수되었습니다.
민초들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택한 미래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요?(진행자의 질문)

'사대부가 카톨릭을 받아 들인 것은  종교라기 보다 지식(서학)이었고, 민초들이 받아들인 카톨릭은 천주교의 오묘한 교리가 아니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한마디에 감동한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말만 지켜져도 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해결될 수 있다.'

내 마음의 영웅은 이순신과 우륵이다. 우륵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다섯 줄 나온다. <현의 노래>를 쓰면서 황 병기 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기록이 없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림성>을 작곡하셨느냐고 여쭈었더니 밤하늘의 별을 보라 하시더라. 별은 가야의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밤하늘에 떠있으므로.

서초동 국립국악원 안에 있는 악기 박물관에 가서 악기를 보고 온다. 연주는 사람이 몸을 움직여서 소리를 내는 것이라 좋아하는데 젊어서는 바이올린 같은 양악을 좋아했으나 나이 드니 국악이 좋아지더라. 이것은 自得(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륵의 고향은 고령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철제무기와 악기가 같은 자리에서 만들어졌던 매혹적인 곳이다.

문체는 조사에 의해서 형성된다.
대여섯 개에 지나지 않은 조사가 우리말 중 가장 어렵다.
*<칼의 노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ㅡ 독자의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

꽃‘이’로 하면 사실을 묘사한 것이고,
꽃‘은’으로 하면 정서나 느낌의 표현이고,
꽃‘도’로 하면 뽕짝스타일이다.
내세에는 조사가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고 싶다. (청중 폭소)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 국문과 대학원생의 질문에 대한 답변)

정돈된 생각을 조금씩 쓴다.
표현은 전쟁이다. 물러서면 안 된다. 나는 검법을 문장에 응용하여 많은 문체들을 만들어 낸다.
한 칼을 휘두름엔 생과 사가 명멸한다.
부분적으론 성공하지만 많은 부분은 실패한다.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지점으로 다시 옮겨놔야 한다.

단편의 경우, 작업 전에 시작과 결말이 드러날 때도 있다.
그 때는 4-5일이면 작품 하나가 완성된다.

장편의 끝 문장에 대한 전략은 없다.
써놓고 보면 '아니다'라는 것을 알 때가 있지만 끝낼 수밖에 없다. 그럴 때엔 매우 슬프다.

‘몇 번의 봄이 나에게 더 남아 있을까’

'새벽에 잠이 깨면 잠결에 내 팔을 꼬집어 볼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살아있나 해서.'

'그럴 때엔 눈시울에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나는 겨우겨우 산다.'

삶은 외롭고
이웃은 매정하고
마음은 괴로운  동시대의 서민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작가.

저는 '문학은 인문학의 고향'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문학은 생명을 보호하는 呪文'이라는 평론가 김치수 선생님의 말씀도 함께.

김훈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있는 시간은 행복합니다.
시장경제의 냉혹함을 넘어서는 지혜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오는 것일진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천착을 누구보다도 진실하게 수행해오고 있는 작가가 김훈 선생님이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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