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미밥

입력 2012-10-22 22:29 수정 2012-11-01 05:12


 




가을에 장만해야 할 식재료가 많습니다. 고추를 빻아 저장하여야 하고, 일년 분의 참깨도 마련하여 참기름을 짜고 양념깨도 볶아두어야 하니까요.
한데 그 일이 쉽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으니 시장에서 구입해야 하는데, 낭패스런 경험이 많았습니다. 어머니 한테 고춧가루며 참기름을 조달 받을 때엔 뭣모르고 그냥 받아먹기만 했었는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요 몇년 사이, 수업료를 많이 지불했습니다.

시골 5일장을 찾아다니며 고추와 참깨를 구입하였는데 여러 번 속았습니다.
한 번은 커다란 자루에 담긴 고추가 선홍빛이고 꼭지가 노르스름한 게 영락없는 양건이다 싶어 고가를 지불하고 사서 집에 와 부어보니, 웬걸요, 위에만 좋은 걸로 덮여 있고 나머지는 형편 없는 중국산 고추가 들어 있는 거예요. 제가 그 아주머니더러 물었지요. 속까지 다 같으냐고요.
어디다 부어보면 좋겠다 했더니, 없어서 못 파는 건데 그리 못 믿겠으면 그만두라면서 가을걷이 하러 가야하니 바쁘다면서 물건을 거두려 하는 거예요. 이걸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 덥석 샀지 뭐예요.
 
참깨도 비슷한 수법으로 당했지요. 금세 밭에서 털어온 거라며 가시랑이가 꽤 보였던 게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았고, 알맹이도 잘 여문 팔목깨로 덮여 있어 정말 좋은 참깨다 싶었습니다. 제까닥  구입하여 집에 와 부어보니 위에만 국산이었고 밑엔 벌레가 기어다니는 저질 중국산 참깨였지요.
바로 자루에 담아 그곳으로 달려가서 보니 그 장사꾼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어요.
고추에 속고 참깨로 다시 속으니 화가 치밀더이다.
먹을거리로 장난 치는 일이 생산지에선 없을 줄 알았는데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농산물 이력제가 실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지만 요원한 일이고, 스스로 식별하는 능력을 기를 수밖에요.

한데 작년부턴 친구의 소개로 직접 농사를 지으시는 분과 직거래를 하니 질 좋은 식재료를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어 좋습니다.
고춧가루와 참깨가 마련된 다음엔 끝물고추를 구입하여 소금물에 삭히고, 애호박을 썰어 호박고지를 만들고 표고버섯도 고깔을 떼어내고 저며 말렸습니다.
토란대는 껍질을 벗겨 말리고, 더덕은 껍질을 벗겨 맑은 물에 행궈 말려 고추장에 장아찌를 박았습니다. 깻잎은 조림장에 삭혀두었습니다.
올 가을엔 갈무리하여야 할 식재료들을 죄다 마련하였다 싶어 뿌듯합니다.

오늘 저녁엔 별미밥을 지어보았습니다.
햅쌀에 고구마, 찰보리쌀, 동부콩, 밤과 대추채를 넣고 밥을 지었습니다.
깐밤은 딱히 활용할만한 데가 별로 없어 불고기나 밥에 넣어 먹으면 좋더군요.
어머니의 유품으로 보관 중이던 놋그릇을 꺼내어 닦아  밥을 담아보니 어머니 생각이 간절합니다. 이맘때면 무안 뻘낙지 사다가 낙지탕탕이도 초회도 볶음도 듬뿍 만들어 먹었고, 고향에서 구해 온 송이버섯이며 참게장, 은어로 밥상이 푸짐했었지요.

고향 큰댁 마을의 언덕에서 캐보았던 고들빼기로 담근 김치의 쌉싸레한 맛도 잊을 수 없어 고들빼기김치도 담갔습니다.
무가 이제 맛이 들어 지난 초여름에 손질하여 저장해 두었던, 신안 지도의 병어로 조림을 만들었습니다. 간이 잘 배인 무에 병어 한 점을 올리니, 옆에 어머니가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참 말캉말캉해서 좋구나! 우리 진호네가 한 것은 뭣이든 다 맛있어." 하시면서 병어조림을 받아 잡수시던 날의 정경이 떠오릅니다.

좋아하는 감국으로 차를 만들었습니다.
산에서 따온 감국을 맑은 물에 행궈 데쳐 물기를 빼고 그늘에 말려 한지로 된 봉지에 보관하고, 뜨거운 물을 찻잔에 붓고 감국차를 두어 개 띄워 한 모금을 마시니 우러나는 菊香과 함께 그리움도 피어오릅니다. '愛別離苦',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현실의 아픔이 밀려듭니다.
어머니! 보고싶습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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