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와 경희식당

입력 2002-07-23 17:42 수정 2002-07-23 17:42
//며칠 전 속리산 법주사에 다녀왔습니다. 당일코스였던 만큼 법주사에 들렀다가 유명한 경희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화양계곡을 따라 잠시 올라갔다가 돌아왔지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가 처음 지었다는 유서깊은 곳입니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옛모양을 되살려 재건한 것이지만, 쌍사자석등(국보 5) 석련지(국보 64) 사천왕석등(보물 15) 마애여래의상(보물 216) 등 국보와 보물은 신라 때 것으로 1천5백년 전 조상들의 숨소리를 그대로 들려주는 듯합니다.




팔상전(捌相殿:국보 55)의 단청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퇴색됐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칠한 이의 정성과 뛰어난 감각을 그대로 전합니다. 국보라는 걸 몰라도 어딘가 남다른 건물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것도 그때문이겠지요. 뿐인가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과 망개나무(천연기념물 207)는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자연의 놀라운 힘을 알려주지요. 국보와 보물은 아니라도 3천명의 스님이 사용했다는 돌물통과 무쇠솥 역시 감탄하기에 충분하구요.




다만 새로 조성한 거대한 금동불상(높이 33m)은 너무 큰 데다 번쩍거려 옛절의 분위기와는 영 안어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한창 진행중인 대웅전 불사를 보는 마음도 왠지 기쁘고 뿌듯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물론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광지인 만큼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게 있었으면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 유적이나 유물이 중국 것에 비해 규모가 너무 작다는 얘기도 많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문화유산이란 크기가 아니라 특성으로 보는 게 아닐까`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중국산 도자기가 아무리 화려해도 우리 눈엔 소박한 듯 섬세한 우리 도자기가 제일이다 싶은 것처럼 건물이나 불상도 크다고 해서 모두 눈길을 끄는 건 아닐 터이기 때문입니다. 이제쯤 `큰 것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도 된 것같다는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요??




///옛절이 지닌, 깨지고 빛바래고 얼룩진 것들 속에 감춰진 은근함과 정겨움에 대한 감탄과 금동불상에 대한 까닭 모를 아쉬움이 교차된 속에 찾아간 `경희식당`의 화단엔 나팔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시멘트마당은 생경했지만 화단의 나리꽃과 봉숭아도 반가웠지요.




`경희식당`은 `외국인도 알아주는 50년 전통의 속리산 한정식 전문집` `격식을 갖춰 제대로 상을 차려내는 한정식집` `역대 대통령이 식사한 집` 등 각종 수식어가 붙어있는 유명한 곳입니다. 경희식당이란 이름은 이곳을 시작한 남경희할머니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남경희할머니는 1950년 대전에서 개업한 뒤 74년 속리산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충청북도 향토음식 기능보유자이기도 하구요. 저는 할머니의 요리비법을 담은 `최고의 한식밥상`이라는 책을 제 부엌살림의 `금과옥조`로 여겨 왔습니다.




이책엔 `집에서 만드는 천연조미료` (멸치국물 새우국물, 다시마가루 표고버섯 가루,장조림간장,북어가루 등), `한식에 잘 어울리는 고명`(곱게 썬 파, 지단 미나리초대 실파초대,대추채,표고채 등), `음식맛 살리는 기본양념장`(겨자장,양념간장,집장,쌈장 등) 만드는 법 등 다른책에서 보기 힘든 우리음식의 기초와 계절별 반찬 조리법이 상세히 담겨 있으니까요.




그런만큼 언제고 속리산에 가면 경희식당에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관훈클럽의 답사길 점심식사 장소가 경희식당이라는 사실은 솔직히 즐겁고 기뻤습니다.




신발을 벗고 큰방으로 들어가는 도중 카운터에 앉아 계신 남경희할머니는 사진과 너무나 똑같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자그마하지만 단아한 모습은 서울 출신 양반가 할머니임을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았지요.




하지만 정작 상을 마주 대한 저는 다소 당황스러웠습니다. 배추김치 깍두기 열무김치등 각종 김치에 고사리나물 콩나물 고구마줄기볶음 표고버섯볶음등 각종 나물, 수삼무침 도라지생채, 밤정과 호두땅콩정과까지 상 하나 가득 차려진 음식은 알려진 것처럼 마흔가지는 족히 돼 보였지만 가짓수에 비해 이거다 싶은 게 없었거든요. 간장게장은 너무 짰고 메인요리로 내놓은 불고기도 별다른 특색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먹었는데도 반찬 대부분이 그대로 남는 건 안타까웠습니다. 남은 반찬을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됐구요. 버린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깝고, 그렇다고 다시 쓴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영 입맛이 썼습니다.




게다가 후식 또한 식혜나 수정과같은 한식음료를 주지 않고 입구에 설치된 커피자동판매기를 이용하게 했습니다. 이쯤 되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음식점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지요. 그렇다고 서비스하는 이들이 친절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약을 했다곤 해도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들이닥친 만큼 다소 어수선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밥을 다 먹을 때쯤 국을 갖다주는 건 곤란하다 싶었습니다.




물론 입맛은 사람마다 다른 만큼 경희식당의 반찬이 맛있고, 한꺼번에 마흔가지 반찬을 모두 맛보는 게 큰 즐거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경우엔 밑반찬 중심의 음식이 딱히 산뜻하지 않았고 비슷비슷한 상위의 음식 모두를 맛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마흔 가지를 한상에 다 늘어놓을 게 아니라 보통 때는 8가지나 10가지 정도씩 세트로 묶어 기호에 따라 선택하게 하고, 특별한 경우에만 마흔가지를 모두 선보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안그러고 지금처럼 가짓수로 승부하면 낭비도 심하고, 뭔가 특징적인 음식을 내놓기도 어려운 게 아닌가 여겨지니까요.




소문난 식당에 갔다가 실망한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번엔 적잖이 속이 상했습니다. 할머니의 손맛을 담은 요리책을 애지중지해온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이지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습니다. 식사후 마당에 나온 다른 분들도 저와 거의 비슷한 의견을 털어놨으니까요.




그동안 유명했고 그 결과 인터넷에 멋진 소개가 떠있다고 해도 한번 먹어본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글쎄요??




오랜만에 한 속리산 나들이는 즐거웠습니다. 장마철 중간에 반짝 떠오른 태양 아래 촉촉한 숲은 싱그럽기 짝이 없었구요. 하지만 세상에 너무 가까워진 듯한 절이나 이름에 비해 실망스러운 음식점, 똑같은 기념품은 왠지 서글펐습니다. 화장실이 많고 깨끗한 것도 좋지만, 유적지란 그래도 유적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고, 근처에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과한가요??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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