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입력 2012-01-18 02:41 수정 2014-04-22 00:39




   






           <이만익 화백의 그림. 어머니>

어머니, 알고 계신지요.
설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어요.
유년의 이맘때쯤이면 어머니는 유과를 만들고, 놋그릇을 챙기고, 설빔을 마련하느라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고 계실 시간입니다.

식구들의 취향과 매무새를 고려해 양단이나 명주를 끊어와, 마름질을 하고, 재봉틀로 박고, 바늘로 꿰매고, 인두로 고운 선을 살리고, 다림질로 마무리 하여 완성된 설빔을 반닫이 위에 얹어 놓고는 흐뭇해 하셨지요. 저는 꽃분홍 양단 치마와 색동 저고리에 털이 달린 조끼가 맘에 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입어보는 요스레를 떨며 어서 명절이 오기를 기다렸지요. 설날 아침, 막상 차려 입은 설빔은  불편하기 짝이 없어 세배가 끝나자마자 벗어던져 버리는 변덕을 부리곤 했지만요.

제수에 쓰일 나물거리와 과일, 생선,고기를 장만해두고 온천 걸음을 하려는데 병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저밉니다. 나이가 드니 여느 노인들처럼 저도 온천이 좋아졌습니다. 입장객들 중엔 어머니 연배의 노인들이 꽤 눈에 띄입니다. 딸이나 며느리와의 동행일 텐데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 모녀는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겠지요.

지난 세밑 전철에서 본 광경 하나, 초고령의 할머니와 초로의 남정네가 손을 잡고 들어오더니 바로 제 옆 좌석에 앉았어요. 얼른 봐도 모자간이겠다 싶어 연세를 여쭈니 아들은 70, 모친은 95 세라 하데요. 아흔다섯 살의 노인이 전철을 타고 외출을 하시다니요. 지팡이를 짚는 것 외엔 여느 노인들과 다를 게 없는 일상을 보낼만큼 건강하대요. 아뿔사, 어머니 보다 11년 연상인데 그 할머니는 허리도 굽지 않았더이다. 노모를 봉양하는 7순의 아들내외가 애쓰겠다 싶었지만 무척 부러웠습니다. 상찬의 뜻으로 제 배낭에 들어 있던 떡봉지를 꺼내 할머니의 손에 쥐어 드렸더니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데요.

엄마, 엄마가 일찌기 몸져 누우셨던 거라면 이렇게 억울해 하진 않을 거예요. 그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저와 통화한 지 두 시간도 채 안 지났는데 낙상이라니요, 그것도 방안에서. 믿기지 않은 사실에 놀라면서도 저는 금세 나으시겠지 싶었어요. '근육이 놀라 뭉친 것 같다, 며칠 지나면 풀릴 것이니 걱정 말거라.'는 말씀만 믿고 바로 내려가 병원으로 모시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지요. 방치한 5일은 당뇨 합병증의 원인이 돼 버렸어요. 

얼굴엔 황달기가 번지고 혈당치마저 급격하게 올라 골절된 척추 시술도 한참이나 지연 됐지요. 병세는 악화 일로로 치달아 사경을 헤매는 지경까지 이르게 돼 버렸습니다. 그 모두가 무지와 무성의가 빚은 인재였지 싶으니 부끄럽고 죄스러울 뿐입니다. 5 개월이 지난 지금, 당수치와 간수치가 정상으로 돌아 왔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에 가느다란 희망을 걸어 봅니다. 알 수 없는 게 몸의 일이라 지금으로선 최선을 다하고 기다려 볼밖에요.
 
올 겨울은 지난해처럼 혹한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한이라 밖에 나서면 몸이 떨립니다.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농로 옆의 작은 개울에 청둥오리들이 무리를 지어 빠르게 유영을 합니다. 먹이를 구하려 물 속에 부리를 박고 물구나무를 서다가 이내 모래톱으로 올라 와 깃털의 물기를 털어냅니다. 생물시간에 배웠던 기억 하나, 새들은 자기 몸에 기름샘을 지니고 있어 틈틈이 기름을 바른댔어요. 하니 추위에 물 속을 헤집고 다녀도 물기가 깃털 속으로 스미지 않아 적정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고요. 생명의 이치처럼 오묘한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어머니, 사람의 일로 마음이 상하면 뚝길에 나가 지나가는 기차나 새, 구름, 숲을 바라봅니다. 그들에게 눈을 박고 있노라면, 화는 가라 앉고 마음은 다시 맑아집니다. 폭력을 끝내지 못하는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점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이 인간의 숙명이지만, 그걸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만도 없는 일, 또한 인간으로서의 의무 아니겠는지요. 

끝없이 훼손되어 가는 환경 중에서도 방금 본 청둥오리처럼 아직 남아 있는 태초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은 천국입니다.
어머니!
그리운 대상이 많음은 그래도 행복한 일일 테지요.
그리운 것들은 하나 같이 자연이거나 '옛'자가 붙습니다.
옛친구, 옛골목, 옛동네, 옛길, 옛사람, 옛이야기... .

제 책상 오른 편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윤동주 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놓여 있어요. 마음이 산란할 때마다 저는 <별 헤는 밤>을 펼쳐놓고 經書를 읽을 때처럼 우렁우렁 소리 내어 읽습니다. '문학은 생명을 보호하는 주문'이라는 김치수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는 순간이지요. 삶으로 얻은 상처가 문학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싯귀를 읊조리다 보면 어느 새 自淨작용이 일어나 마음은 다시  평온해집니다.

'양석 없어 어쩔꼬 부엉'/ '내일 모레 장이다 걱정 말고 있거라 부엉'
유년의 겨울밤, 아버지의 늦은 귀가를 함께 기다리던 시간에, 엄마가 제게 들려 주시던 암부엉이와 숫부엉이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부엉이는 부부간의 금슬이 좋고 먹이를 둥지 안에 가득 쌓아놓는 습성을 지닌 吉鳥라는 대목에 이르면, 정말 창 밖의 컴컴한 어둠 속에선 '부엉 부우엉', 부엉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지요.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을 추억하니 다시 목이 멥니다.

인내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게 하는 아버지의 주벽에 우리 가족은 늘 숨을 죽여야 했지요. 아버지의 주사는 어머니께 집중 되었고, 그걸 무조건 견디셔야 했던 게 어머니의 삶이었습니다. '그 험난한 세월을 어찌 살아 오셨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마치 제 살점이 떨어져 나간 듯 아프고 쓰라립니다. 어머니, 한데도 당신은 화를 복으로 갚는 세상을 사셨어요. 날이 새도록  이어지는 아버지의 폭력을 한 마디의 저항도 못한 채 견디셔야 했고, 그 와중에 다음 날 밥상을 번듯하게 차려 내셨으니까요. 
어머니 세상을 한 번 사셔야 하는데... .

용서, 분노와 원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증오심은 풀어야 할 매듭이지만 뉘우침과 변화가 없는 상대를 그냥 놓아주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요.
엄마, '어떻게 아버지를 용서하셨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가슴이 쓰리다 못해 먹먹해집니다. 아마도 누굴 집요하게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못하는 천성과 저희들을 지키시려는 의지 하나로 그 세월을 버텨내셨을 테고 아버지는 사람 잘 만나신 것이지요. 그 성깔 받아 주실 분이 이 세상 천지에 어머니 말고 또 계시려나요.

엄마, 그래도 저는 꿈꾸어 볼래요.
엄마와 눈 마주치며 외할머니와 진주 남강에 서린 어머니 여학교 시절의 그 꽃다운 얘기 나눌 시간이 다시 오리라는 것을.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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