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은 모델과 입은 모델/신차발표회

입력 2002-07-12 08:53 수정 2002-07-12 08:53
//세상 참 빠르게 변합니다. `이제는 제발 좀 달라졌으면` 하는 건 꼼짝도 안하는 반면 어떤 것들은 눈깜짝할 사이 확 바뀌곤 합니다. 최근 TV드라마 곳곳에서 걸핏하면 외제차가 나오는 것도 그런 변화중 한가지로 느껴집니다.




//KBS는 현재 2TV 월화드라마 `거침없는 사랑`에서 외제차를 한 회에 몇 차례씩 보여줍니다. 이전 작품인 `햇빛사냥`에도 외제차를 등장시켰지요. 물론 다른 방송 드라마에서도 외제차는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햇빛사냥`의 경우 극중에서 "외제차는 수리비가 많이 든다"는 둥 `변명같지 않은 변명`을 했지만 실제론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서 계속 자동차를 비춤으로써 간접광고임을 충분히 알게 했습니다.




예전같으면 공영방송에서 이런다는 게 국민정서상 있을 수 없었을 것같은데 그냥 지나치는 걸 보면 "많이 달라졌네" 싶습니다. 적극적 홍보 덕인지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 탓인 지 거리에도 외제차가 엄청나게 늘었구요.




실제 올해 외제차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83%이상 증가한 1만5천대이상이 되리라고 합니다.반면 현대·기아·대우·쌍용·르노삼성차 등 자동차 5사의 지난달 판매량은 지난해 6월보다 10.4%나 줄었다고 들립니다.




//시장 개방시대에 외제차가 늘어나는데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차를 더욱 `튼튼하고` `기능적이고` `아름답게` 만들어야지요. 값이 더 비싸도 사고 싶도록 말입니다. 그러자면 자동차 자체는 물론 기업이미지 홍보 등 마케팅에 대해서도 한층 더 신경써야겠구요.




//자동차를 홍보하는 방법엔 신문 방송 잡지 등 이른바 매스컴을 통한 직접광고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TV드라마나 영화 속에 배치시키는 간접광고도 있고, 음악회 등 문화예술 행사를 후원하거나, 시승기 등을 통해 장점을 알리는 방식도 있지요




새차가 나올 때 하는 신차발표회도 그중 하나지요. 어느 자동차회사나 새차는 오랜 기간과 엄청난 투자 끝에 내놓는 만큼 어떻게 해서라도 보다 널리 알리려 애를 씁니다. 신차발표회 사진이 신문마다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것도 그런 까닭이지요.




//오랫동안 신차발표회 사진을 볼 때마다 이상한 느낌을 가졌었습니다. 자동차를 보여준다면서 왜 계절에 관계없이 온몸을 다 드러내다시피 한 드레스나 우주복 모양의 초미니원피스를 입은 모델이 포즈도 야릇한 채로 서있는 지 영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눈길을 끌기 위해 예쁘고 늘씬한 여자모델을 내세우는 정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근사한 여자가 지나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설문에 많은 남성이 "특별한 볼 일이 없는 한 일단 한번 따라가 본다"고 답하고, 가벼운 접촉사고 중 일부는 운전중 예쁜 여자에게 한눈을 팔다가 일어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고 하니까요.




그렇더라도 이제쯤 자동차의 주고객은 남자고, 남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자면 여자의 벗은 몸매를 화끈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바꿔볼 때가 된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자동차는 남성`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묘한` 뉴앙스를 강조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한번쯤 의문을 가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 싶었구요.




//이런 와중에 최근 신문에 난 르노삼성자동차의 `SM3` 신차발표회 사진은 새로웠습니다. 무릎을 살짝 덮는 샤넬라인의 짙은색 투피스 차림 두 모델이 팔을 약간 걷어올린 세련된 커리어우먼 차림으로 차 양쪽에 서 있는 것이었거든요.




`SM3`는 1천5백cc급 준중형차입니다. 당연히 마케팅 대상도 기존의 `SM5`보다는 젊은층이겠지요. 여성운전자도 겨냥했으리라 여겨집니다. 단정한 투피스 차림의 모델은 열심히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가는 커리어우먼 자가운전자의 이미지를 `확` 풍겼습니다.




적어도 여성인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마 `SM3`의 주타깃인 젊은 남성들도 괜스레 벗은 모델보다는 능력있는 프로우먼의 이미지를 주는 깔끔한 투피스 차림의 모델에 더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요??




모든 기업이, 모든 조직이 고급화 차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차별화의 첫번째 전제조건인 발상을 바꾸는 일엔 영 둔감하거나 애써 무시하는 것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월드컵대회 이후 `히딩크식 경영`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났지만 정작 히딩크식 경영의 요체를 들여다 보면 `기초 체력 강화` `지연과 학연 파괴` `불필요한 위계질서 타파` 등 지극히 기본적이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문제는 고급화 차별화가 중요하다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다 알지만 정작 어떤 일을 할 때는 책임이나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존의 방법`을 따른다는 겁니다.




신차발표회 한가지를 놓고 얘기를 너무 비약시키는 것 아니냐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변화나 발상의 전환이란 바로 이처럼 오래 계속돼온 작은 일에서부터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뭔가 달라지려면 위기상황이 아닌 보통 때 모든 기존의 것에 대해 한번쯤 의심해보고, 개선할 게 없을까 궁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이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일단 해놓은 것이니,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 괜스레 바꿔봤자 `긁어 부스럼 만들기`라고 생각하는 한 달라질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물론 `SM3`가 잘 팔릴 지는 차의 성능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규모의 다른 차에 비해 얼마나 튼튼하고 기능적이며 안락한가가 성패를 좌우하겠지요. 시승해본 사람에 따르면 `SM5`의 내장이 다른차보다 떨어진다는 걸 의식했는지, 준중형차 고객인 젊은층의 취향을 반영했는지 인테리어가 상당히 아기자기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평가는 무엇보다 튼튼함과 승차감 등에 있는 것이니까 두고 봐야 할 겁니다.




그렇더라도 SM3 신차발표회 사진은 `르노삼성`이라는 회사에 대한 이미지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믿습니다.최소한 여성들에게는요. 무섭게 바뀌는 여성의 의식변화에 대한 세심한 관찰 없이 구태의연한 방식을 답습하는 회사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될 수 있으리라고도 봅니다만......




//절차가 다소 번거롭지만 `칼럼회원`에 가입하셔서 여러분의 생각을 알려 주십시오. `칼럼니스트와 함께`가 보다 활발한 의견교환이 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에 없는 얘기들을 쓰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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