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문학관에서 김훈 선생님을 만나다

입력 2011-11-27 11:46 수정 2013-10-01 03:43






   <김훈 선생님의 강연. 해산토굴 뜨락에서 만난  김훈 선생님과 한승원 선생님- 천관문학관 제공>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헤어나기 힘들 때, 인간은 어딘가에 기대어 위안을 얻으려 합니다.
이럴 때, 저는 문학작품을 읽습니다.  
뜬구름 잡는 관념이나 허황한 이념의 세계를 그린 작품보다 삶의 구체성에 근거한 시나 소설을 택합니다. 거기엔 인간 군상들이 엮어내는 온갖 음모와 부조리의 난맥상들이 켜켜이 쌓인 양파껍질 벗겨지듯 모습을 드러냅니다.

물고 물리고, 밟고 밟히는 인간 세상의 스토리가 펼쳐지다가도 종국에는 갈등이나 대립이 아닌,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거나 불화의 해법을 독자에게 묻습니다.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 이건 바로 내 얘기네.'라 공감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위안도 얻습니다. 문학은 상상력의 세계를 통해 악의로 가득찬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呪文입니다.

다가온 추위로 몸이 움츠려 들고 밤이 깊어지니 책읽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입니다.
독서도 학습도 결국은 달아나려는 제 마음 붙들기일 것입니다.
많은 책을 읽거나 높은 학문을 한다 한들, 자신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엔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타인의 결핍이나 고통을 줄이는 데에 나는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를 자문할 수 있어야 책 읽은 값을 다하는 것이지요. 인재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센 者가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크든 작든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은 '내 새끼 내 가족'만을 챙기는 私利의 아성을 깨고 나와 사회화 되어야 하고, 그 사회는 다시  인간화 되어야만 우리의 미래는 열릴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 장흥의 천관문학관에서 열린 김훈 선생님과 함께 하는 문학 강연회에 다녀왔습니다.
광화문을 중심축으로 한, 국토의 정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정남진 장흥의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지난 해 여름, 오랫동안 사숙해 온 미백 이청준 선생님의 묘소와 문학자리를 추모하기 위해 찾은 데에 이은 것입니다.

장흥은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이대흠, 김영남 등 한국 문단에 비중 있는 작가들을 배출한 고장입니다. 전국의 지자체 중 유일하게 문학 특구로 지정됐습니다. 절기상으론 이미 초겨울인데도 그곳은 잔잔하고 따뜻했습니다. 다만 행사 첫날의 바람은, 건물 입구에 비치된 브로마이드를 모조리 넘어뜨릴 정도로 세찼고, '우-우' 밤새도록 불어대는 바람 소리는 여객의 잠길 훼방꾼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문학관 뒤로 난 산책길을 나설 때까지도 바람은 잦아들지 않았으나 문학투어를 시작할 무렵엔 언제 그랬더냐 싶게 포근한 햇살이 내리 쬐었지요.
건물 뒤로 난 천관산 골짜기는 심산의 계곡을 방불케 할 정도로 水量이 넉넉하고 폭도 넓어 문학인을 위한 세미나나 소모임에 더 없이 좋은 시설과 자연환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김훈 선생님의 강연>

김훈 선생님께선 '삶'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홀로 있을 때 가득한 충만감을 느낀다. 창조적인 인간존재의 존엄을 느끼는 시간이다.
세상과 사람 들여다 보기를 기진할 정도로 계속 하였지만 그쪽으로부터 들려 오는 직접적인 응답은 없었다. 인간의 날은 그렇게 허약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깔린 악의 구조, 폭력의 구조, 억압의 구조 위에서 겨우겨우 지탱해가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존엄을 증명할 의무가 작가에겐 있다.

11월에만 가능한 산악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강원도 산촌의 노인들을 만났다.
제도권의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지만 그분들은 세상의 이치를 훤히 꿰고 있었다. 놀랍고 아름다웠다.
 책에선 자료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책 보다는 몸으로 세상과 부딪칠 때, 나는 내 살아 있는 생명의 육체감으로 가득 찬다.
자전거를 통해 얻는 삶의 직접성에서 살아 있는 몸의 중요성과 육체성을 느낀다.

수능 시험을 치루는 날 아침, 일산의 한 고등학교 교문 앞에 가보았다.
후배들이 나와 수험장에 들어가는 선배들을 위해 컵라면을 끓여주고 행가레를 치며 웃고 있었다.
지옥문 앞에서도 애들은 아름다웠다.

남의 재난에 가차없이 뛰어드는 소방관은 거룩하다.
그들은 화재현장에 뛰어들어 맨 먼저 사람을 업고 나오고, 다음으론 가스통을 짊어지고 나온다.

수식어가 없는 주어와 동사만으로 글을 쓰고 싶다.
말이 너무 오염 되어 있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특히 그러해서 이 단어를 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을 키우며 산다. 하지만 한꺼번에 바꾸기는 어렵다. 조금씩 바꿔 갈 수밖에 없다.

작업이 되는 날은 연필로 원고지 10매 정도를 쓸 수 있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은 날엔 강가에 나가 하루 종일 논다. 망원경 다섯 개를 배낭에 넣고 강가에 나가서 먼 숲이나 마을, 새들, 노을, 먼 강물을 들여다 보면 하루가 저문다. 멍원경 다섯 개는 용도가 다 제가끔이다. 멀고 넓은 풍경을 보는 것과 좁은 풍경을 가까이 당겨서 보는 것이 있다. 나는 사물이나 풍경의 구체성과 몸으로 느끼는 사물의 질감과 더불어 살아간다. 여러 마을과 숲과 들판과 계절의 풍경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그것이 잘 익었다 싶으면 글로 옮겨 적는다.

나는 아산 현충사에 걸려 있는 이순신의 칼을 보고 <칼의 노래>를 썼고, 악기박물관의 가야금을 보고 <현의 노래>를 썼고, 절두산 성당의 절벽을 보고나서 <흑산>을 썼다.
암이 한 다섯 개쯤 생겼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건강검진을 신청해놓고 일주일을 기다리는 동안 <강산무진>을 썼다.

검진 결과 암은 없었으나 담배를 끊으라는 의사의 말에 당장 끊었다.
담배 생각에 절면, 공원에 나가 담배 피우는 사내의 뒤를 따라가며 연기를 맡기도 하였고, 그도 아닐 땐 티셔츠를 손으로 쥐어 뜯기도 했다.
그러다 찢은 셔츠가 세 벌이다. 

글 보다 중요한 것은 놀이다. 글과 놀이는 모두 몸으로 하는 것들이다. 음악이나 그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세라는 자리가 있다면, 나는  책이 없고 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나 가수가 되고싶다. 내가 좋아하는 한대수처럼.
 
<천관 문학관에서 제공한 음식>

* 곰탕(夕食)
장흥은 한우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잘 우려낸 사골국물에 아롱사태를 푹 고아 만든 곰탕은 서울의 식당에서 먹던 급조된 맛이 아니었습니다. 은은한 국물은 구수하나 느끼하지 않았고 웃기로 들어 있는 아롱사태의 식감은 쫄깃하고 맛났습니다. 가끔은 육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딸린 찬으로 나온 갑오징어 회무침 또한 일미였어요. 육질이 부드러운 갑오징어에 무채를 혼합하여 새콤하게 무친 것이었는데 단맛이 도드라지지 않고 신맛 또한 은근했지요. 조리과정을 물을 기회는 없었지만 아마 막걸리식초를 사용하였으리란 짐작이 갔습니다.

*키조개죽(朝食)
장흥의 특산물 중 키조개와 표고버섯을 뺄 수 없습니다.
키조개의 관자와 자연산 생굴, 표고버섯과 당근을 다져 넣고 끓인 해물 영양죽은 아침식사로 아주 훌륭했습니다. 전복죽에 뒤지지 않는다 싶었지요.
삭힌 고추와 무의 맛이 잘 어우러진 동치미와 무나물, 시금치나물이 찬으로 나왔습니다.

*장어탕(中食)
갯장어를 삶아 거른 육수에 된장을 슴슴하게 풀고 배추우거지를 넣어 끓인 장어탕은 전혀 비리지 않았습니다. 장어탕이라는 설명이 없었다면 우거지탕으로 여길만큼 담백하여 투어를 하느라 고단힌 여독을 말끔히 씻어주었습니다. 묵은지와 깍두기도 수준급이었지요.

문학투어로  한승원 선생의 작업실인 해산토굴, 정남진의 전망대, 이승우 선생의 가슴앓이 섬, 그리고 이청준 문학의 작품 무대인 회진포구와 득량만, 소등섬을 돌아보았습니다.
 
11월 19일과 20일은 매우 반짝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길눈 어두운 나그네를 행사장까지 안내해주신 화순투데이의 장민구 사장님, 자리를 마련해주신 이대흠 관장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오며 그 자리에서 만난 문학 동호인 여러분의 향기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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