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입력 2011-06-18 10:33 수정 2013-03-10 06:17
이앙기로 옮겨 심은 벼모종에 물과 햇볕이 공급되니 가녀린 포기에 힘이 생겼습니다.
작열하는 햇볕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작물에겐 더없이 좋은 에너지입니다.
마파람에 일렁이는 무논 옆의 숲속에선 머지않아 이곳을 떠날 뻐꾸기가 막바지 목청을 높힙니다.
'뻐꾹 뻐뻐꾹 뻐꾹'

'내 사랑은 뻐꾸기 되어 하루 종일 울어예
지나간 그날 찾아 나의 임은 뻐꾸기가 되었네
뻐꾸기는 슬프다 나의 마음 울리네
아 해지도록 뻐꾸기 울음'

내 젊은날 자주 흥얼거리던 노랫말이 떠오르네요.

뻐꾸기의 생태는 슬픔과 거리가 멀지만, 울음소리가 처연해 사람들의 귀에 슬프게 들릴 뿐입니다.

지도층의 부정과 비리로 나라 안은 들끓고 있는데, 말이 없는 자연의 질서는 어김이 없습니다.
혹독한 추위로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은 어느새 다가와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해주다 갔고, 녹음 무성한 여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세상일이 어지럽고 사람에 대한 염증이 심해지면 저는 숲속에 듭니다. 숲은 현실의 중압이 빠져나가는 자유로운 공간인 때문이지요.
풀숲 바위에 앉아 나무에 눈을 박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한참을 그러고 앉아 있으면 뒤숭숭한 마음은 가라 앉습니다. '고난은 하나의 긴 순간이다.' 어찌보면 현실도피 같지만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엔, 그 일과 거리를 두고 객관화 해버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분노도 슬픔도 다 지나가는 것이니까요. 
 
근자 영국의 왕립 원예학회가 주최하는 'Chelsea Flower Show 2011'에서 한국의 황지해( 광주 환경미술가 그룹' 뮴’대표) 씨가 출품한< 해우소 가는 길>이 영예의 1등을 차지했습니다.
'해우소 가는 길’(뒷간 정원)은 부제인 '마음을 비우다’에서도 알 수 있듯 생명의 환원과 비움이라는 한국적 철학을 담은 작품입니다. 검은색 대나무인 오죽과 돌담에 둘러쌓인 뒷간 가는 길에 수수꽃다리'(라일락), 흰민들레, 뱀딸기, 인삼 등 토종 약용식물을 심어 선인들의 민간요법과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한 작품인데 행사 전부터 각국의 원예 전문가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합니다.

환경심리학이라 하나요.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양식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해우소 가는 길>의 사례를 보더라도 자연은 번뇌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가 김훈 선생님은 3백 년이 넘은 건축물인 순천 선암사의 해우소를 빼어나게 아름다운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라 극찬했습니다. 폐쇄적 공간인 수세식 화장실에 비해 사방이 탁 트여 바람이 시원하게 통하고 환해 배설의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낙원이라는군요.
'대.소변을 미련 없이 버리듯 번뇌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자'라 쓰인 화장실의 게시문을 보면서  '이럴 수만, 이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대소변을 누듯 망집의 욕망도 훌훌 몸 밖으로 내던질 수 있다면.'이라면서.

보리타작을 한 지가 한참 지났습니다.
까칠한 보리를 도정하면 매끄러운 보리쌀로 변하지요.
지난날의 구차하고 눅눅한 보릿고개 이야기를 새삼 들먹일 일은 없지만, 호구를 걱정하지 않게끔 살게 된 것엔 이유 없이 감사할 일입니다.

노란 햇보리쌀을 평소 보다 훨씬 많이 넣고 보리밥을 지었습니다.
옛날 보리밥은 보리쌀을 먼저 삶아낸 다음 쌀은 넣는 시늉만 하고 무쇠솥에 불을 때서 밥을 지었지요. 지금은 기능성 밥솥이 많이 나와있어  보리쌀과 쌀을 함께섞어 바로 밥을 지어도 밥알이 잘 퍼져 먹기에 거북하지 않습니다. 반 시간 정도 불렸다 하면 딱 좋지요.

보리밥과 잘 어울리는 반찬은 무얼까요?
얼른 생각난 게 열무김치네요. 젓갈을 쓰지 않고 청양고추(청 .홍 모두 좋아요)와 생수 마늘과 생강 밥을 넣고 믹서에 드르륵 갈아 소금으로 간을 맞춰 실온에서 하루 반 숙성을 시킵니다. 찹쌀 풀물이나 밀가루 풀물을 따로 끓일 필요가 없어요. 열무김치엔 약간 거친 조리법이 어울리거든요.

멸치육수에 애호박과 감자 풋고추 양파 감자를 썰어넣고 된장을 풀어 바특하게 강된장을 끓입니다.
텃밭에서 갓 따온 풋고추에 생된장도 곁들입니다.

동물성을 한 가지 더하면 좋겠지요.
냄비의 바닥에 감자와 양파를 도톰하게 썰어 깔고 토막낸 생고등어를 얹고 양념장을 끼얹어 조립니다. 자반 고등어를 구워서 올려도 맛나요.
밥새우와 마늘종을 간장 양념으로 만든 마늘종볶음과 머위들깨즙나물이나 새우젓으로 간한 호박나물을 더하시면 딱입니다.

 후식으로 잘 익은 수박 두어 조각 드시면, '그래도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해' .
그렇지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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