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품성과 행동이 내일의 희망입니다

입력 2011-05-24 05:20 수정 2012-05-22 04:01
품성이 곧고 행동이 바른 지도자에겐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 즉 감화력(influence)이 있습니다. 감화력은 학력과 무관하지 않지만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학력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의 인품이나 지나온 삶, 곧 품성이나 언행이 좌우합니다. 전권을 쥔 오너라 할지라도 독단을 일삼고 언행마저 거칠다면 직원들은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지시나 명령 일변도의 관계는 오래 갈 수 없으니까요. 역으로 품성이 따뜻하고 기업가 정신까지 갖춘 리더라면, 직원들은 그를 섬기며 업무에도 열정을 갖고 몰입하게 될 것입니다. 노사 관계가 선순환하면 협력은 떼논 당상이요, 조직은 날로 성장하는 것이지요. 
 
지식과 행동 사이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게 지도자의 나아갈 바지만 실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끝없는 인간의 욕심이 판단을 흐리게 하는 때문입니다.
유사이래 권력층과 이를 추종하는 세력들의 끝없는 탐욕과 교만이 사회 통합과 공정한 사회의 건설을 지연시켜 왔고 앞으로도 되풀이 될 것입니다.
프랑스혁명, 동학혁명, 419 의거, 518 민주화 항쟁 등 모두가 부정과 약육강식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중의 봉기였지만 결국 또다시 부패에 얽매이는 사회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승복하고 다시 항거하고......
그래서 혹자는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개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한 해 전에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훈기를 느끼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순례객들이 요즘 길상사를 찾습니다. 그중에는 수녀도 기독교인도 일반인도 함께 있으니 불자들 만의 순례길은 아닙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재미나고 돈 버는 얘기에만 눈과 귀를 여는 세상에,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버리라며 '무소유'를 說하다 떠나신 스님의 발자취를 찾는 이들이 많음은 신기한 일입니다. 이는 현재의 삶이 고단하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드러내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왜 스님을 기리는 행렬이 줄을 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종교간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당신의 자유로운 정신과 지행이 일치하는 삶이 존경스러워서일 것입니다. 스님의 맑은 영혼이 담긴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위로 받기 위한 사람들의 간절한 걸음인 것이지요. 추모의 행렬로 보아 스님을 기리는 열기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으며 앞으로도 쉬 식지 않을 것임을 예단할 수 있습니다.

계통이 서 있는 집안에선 가족들이 어른의 헛기침 소리를 예사롭게 듣지 않았습니다.
굳이 훈육을 위한 말씀이나 나무람이 없어도 어른이 계시다는 그 존재감 만으로 가족들은 행동을 삼가고 말을 조심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어른의 독실한 삶 자체가 집안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은 말이나 지식은 헛개비에 불과합니다. 말과 실천이 유리된 지도자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서양 철학사를 살펴보면 학문적 이론을 논변하는 데는 탁월했지만, 자신의 삶은 매우 바르지 못한 철학자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근세 경험론의 창시자인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이 그렇고, <에밀>의 저자로 유명한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가 그러한 인물입니다.
캠브리지에서 법학을 공부한 베이컨은 변호사 검찰총장 등 법조계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많은 권력을 누리다 뇌물사건에도 연루되어 관직을 박탈 당하고 투옥되는 등 매우 불명예스런 세도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회계약론>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고백론> 등 많은 저술을 남긴 장자크 루소도 그의 아이 다섯을 모두 고아원에 맡길 정도로 자신의 학문적 성취에 반하는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가 쓴 교육론 <에밀>은 당대 어머니들이 육아의 바이블로 삼을 만큼 역작으로 인정 받았지만 정작 자신의 자녀들을 고아원에 의탁해야 했던 루소는 실로 아이러니일 수밖에 없는 사상가였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을 통합 비판하여 독일의 관념론을 태동하게 한 임마누엘 칸트는 학문적인 업적도 탁월했지만 생애 또한 예술이었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도 학자로서의 정돈된 삶의 본을 보였습니다.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어김 없이 근교를 산보하는 칸트의 모습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시간을 헤아렸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가사를 돌보아주는 가정부와 함께 살았는데 검소한 생활로 많지 않은 대학교수의 급여를 꾸준히 저축하여 상당한 액수의 통장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학문 탐구를 위해 순교자적인 삶을 살다간 철학자로 네델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를 꼽을 수 있습니다. 렌즈알을 갈면서 궁핍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최고의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에 평생을 몰두하였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철학교수 제의도 사절하면서까지 자신의 학문적 자유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신 중심 사회였던 당시에, 전통적인 인격신의 존재를 부인하였습니다. 온갖 불이익과 파문의 위협에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진리 탐구에 정진하여 대역저 <에티카>를 완성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내일 비록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리라'는 명언으로 알려진 철학자입니다.

보편적인 사람의 도리, 나아가 治者의 윤리라고도 할 수 있는 유교 경전의 대부분이 지도자다운 품성을 함양하는 방도를 상황 상황에 맞게 피력한 내용들입니다. 과거에도 필요했고 현재도 미래에도 변함없이 중요한 지도자의 道를 구체적으로 기술해놓은 것이지요.
끊임없이 행동과 품성을 닦는 수행을 하면, 종국에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괴리가 없어지는 시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자유의 경지)가 온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文才를 뻐기기만 한 글은 설득력이 없고, 실천이 따르지 않은 지식인의 달변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실행력과 높은 품격을 갖춘 지도자 만이 다른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고 조직의 변화도 가능하게 합니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둥글게 한 것은 무쇠로 만든 정이 아니고, 오랜 시간에 걸친 바닷물의 부드러운 씻김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불합리한 사회 제도를 급격하게 변화시키겠다는 정치인들의 속 들여다보이는 공약 보다 시민의 바른 품성과 실행력으로 이루어가는 사회 변화는 오래 갑니다. SNS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즈음입니다. 시민 간의 소통과 의식화로 다져지는 사회 정의는 쉬 잦아들지도 않습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후쿠시마현의 지진 쓰나미를 겪는 일본인들의 질서의식과 단장의 아픔을 속으로 삼키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세계인들을 크게 감동시킨 바 있습니다.
지도자든 직원이든 시민이든 자신의 품성을 함양함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힘입니다.
정치행정도 기업도 조직도 리더의 독단 만으로 몰아붙이는 경영은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목표 달성은 리더와 구성원들의 합심과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하기에 바른 품성과 행동은 리더십의 요체요, 내일을 열어가는 희망입니다.

역사의 아픔을 소리 없이 삭이고 있는 오월이 가고 있습니다.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저마다의 재능과 아름다운 품성을 지닌 새내기 인재들이 속속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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