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입력 2002-06-18 08:31 수정 2002-06-18 08:31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원래 제목은 `The Short Time`인데 국내에서 이상한 뜻으로 통한다고 해서 심의를 내주지 않는 바람에 수입사에서 궁리 끝에 붙인 이름이라더군요.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정년을 1년 정도 남긴 LA경찰국 소속 형사 한사람이 누군가 검사용 소변을 바꿔놓는 바람에 5개월밖에 살수 없는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위험한 사건 현장은 피하고 어쩔수 없이 나갈 경우 안전한 먼발치에 서있는 등 몸조심을 하던 그는 자신이 정년을 못채우고 죽을 경우 연금도 제대로 못받을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 어떻게든 순직(殉職)하려 작정합니다.




병명을 아는 친구에게 모른체 해달라고 부탁한 그는 다음날부터 가장 위험한 사건현장을 골라 나갑니다. 인질극 현장에서 범인 앞에 다가서고, 방탄조끼도 벗은채 악당들을 추격하지요. `제발 좀 죽여달라`는 겁니다.




경찰이 이렇게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나오자 악당들이 오히려 당황합니다. 결국 주인공은 죽기는커녕 공을 세우고 훈장을 받습니다. 한달 뒤 검사결과가 잘못됐다는 게 밝혀지고.... 이 영화가 개봉된 뒤 꽤 오랫동안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갑작스레 이 영화를 떠올린 건 `2002 한일 월드컵대회`의 경기를 보면서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덤비는 사람(팀)의 힘을 새삼 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팀을 보면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라는 각오의 힘이 무한대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폴란드전과 미국전도 그랬지만 포르투칼전은 그같은 사실을 더더욱 극명하게 드러냈지요.




우리가 어떻게든 이기려 처음부터 총력을 다한 데 비해 포르투칼은 전반 내내 이기기보다 비겨서 함께 16강전에 나가려는 듯 수비에 급급한 모습이었습니다. 0대0 스코어가 계속되자 공격수인 파울레타를 빼기까지 했지요. 우리에게 한골을 먹은 다음 급해지자 열심히 뛰었지만 상황은 이미 끝났던 것이지요.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뛴 우리와 비기기 작전을 편 포르투칼과의 싸움은 어쩌면 처음부터 승패가 결정돼 있었던 건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길려고 해야 비기기라도 한다`는 히딩크감독의 말은 어떤 경우라도 진리겠지요.




//세네갈과 스웨덴의 경기도 비슷했습니다. 분명히 실력은 스웨덴이 한수 위인 것같았는데도 신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뛴 세네갈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4백60달러에 불과한 세네갈이 2만달러가 넘는 프랑스와 스웨덴을 물리친 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선수와 감독 생활 내내 별 볼 일 없었다는 프랑스 출신 세네갈 감독의 인간승리는 이번 월드컵대회의 가장 큰 성과중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팀이 포르투칼에게 이기는 걸 본 뒤 "어쩌면 이러다 우리와 일본이 결승에서 맞붙을 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폴란드와 싸울 당시 포르투칼팀의 실력은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적이 아니다 싶었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알수 없다`는 심정입니다. 우리팀이 16강 진출로 느슨해져 있지만 않다면 말입니다.




//또 한가지, 비기거나 설사 져도 다음경기를 기약할 수 있던 16강 진출전과 달리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결판을 내야 하는 16강전을 관전하면서 저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싸움의 치열함에 순간순간 몸을 떨게 됩니다.




//연장전 끝에 이긴 세네갈이 이긴 스웨덴 세네갈전에 이어 16일밤 승부차기로 결판이 난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경기는 이긴자와 진 자의 인생이 어떻게 갈라질 수 있는가, 그것이 얼마나 순간의 일인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게 했습니다.




후반 종료 직전 아일랜드가 동점골을 넣었을 때 저는 운명의 신이 아일랜드를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연장전 후반에서 지친 스페인선수들이 뛰지 않고 승부차기로 끌고 가려는 태도를 보였을 때까지도 결과는 알 수 없다 싶었지요.




스페인 선수가 마지막 한 개를 실축하면 승부차기를 다시 해야 하는 극한상황까지 갔지만 게임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한팀은 우승고지를 향해 8강에 진출하고, 실력차가 거의 없는 또 한팀은 패배의 쓰라림을 안고 돌아가야 하게 됐지요.




//저는 이 경기를 본 뒤 한동안 멍했습니다. "기왕 질 거면 기운 빼지 말고 그냥 지지"라는 마음과 "그래도 어디 그런가,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맞지"라는 마음이 오락가락하기도 했구요. 어쨌거나 "아,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렇지" 싶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어느 순간까진 엎치락뒤치락할 수 있지만 끝내는 결판이 나고, 그것도 한순간 어이없는 일로 승패가 갈린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중대한 순간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하는 물음이 생겼습니다.




스페인과 아일랜드의 경기는 >는 걸 보여줬습니다. 물론 침착성과 배짱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오랜 훈련에 따른 자신감에서 생기는 것이겠지요.




저는 월드컵대회 중계를 보면서 `축구경기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세상살이의 진리를 잊지 말아야지` 라는 각오를 다져 봅니다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 지 궁금합니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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