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입력 2011-03-14 17:15 수정 2013-02-18 05:40







     

             
<허달재 화백의 매화도-롯데갤러리 제공>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였다는 소식이 북상 중입니다.
길고 혹독한 겨울을 지낸 터라 매화 소식은 오랜 벗이 찾아온다는 전언 만큼이나 반갑고 마음 설렙니다.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이 본래의 제 모습을 지켜내는 식물들이 있으니 이름하여 세한삼우(歲寒三友) 즉 소나무, 매화, 대나무이지요.
그 중에서도 매화는 俗塵에 휘둘리지 않고 극기와 인내로서 학문과 품격의 완성을 위해 끊임 없이 정진하는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꽃이라서 문인화의 畵題로 꼽힙니다.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이란 싯귀(매화는 매서운 추위와 고통을 이겨내고서야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에서도 매화의 곧은 절개와 기품이 잘 드러나 있지요.

조선 중기의 유학자 신흠은 '동천년노항장곡 매일생불매향'(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ㅡ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면서도 한결같은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이라며 한풍 속에서 피어나 은은한 향을 발하는 매화의 기개를 예찬했습니다. 백화가 요란하게 피어나는 춘삼월을 택하지 않고 굳이 북풍한설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를 볼 때, 우리는 매화가 사군자의 필두로 꼽히는 연유를 헤아리게 됩니다.

봄은 오고 있지만 세상은 무겁고 어두운 소식들로 가득합니다.
와중에 잠시 눈을 돌려 매화의 기품이 은은한 도심 속의 공간으로 발길을 옮겨 한 뜸 쉬어가시는 것도 지혜인 듯 합니다. 번다한 도심의 일상 속에서 스스로 마련하는 여백은 삶을 지치지 않게 하는 묘약이기도 하지요.

<롯데 겔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는 直軒 허달재 화백의 전시회( 2월 24일- 3월 20일)를 소개합니다.>

허달재 화백은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 선생의 손자입니다.
그는 여섯 살 때부터 조부에게 그림을 사사했습니다.
산수며 화조 등 한국화의 기본을 다지며 한국화의 맥을 잇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았습니다.
그림 공부에 앞서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 도리나 성품을 닦기 위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전시의 화두인 '心造畵 畵造心'(마음이 그림을 닮고 그림이 마음을 닮는다. 나아가 마음이 붉으면 매화도 붉고, 마음이 희면 매화도 희다)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는 靜에서 動으로 옛것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의지를 화폭에 투영해온 화가입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정신이 어우러지는 데에 촛점을 맞춰 그림 작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화가는. 의재와 남농으로 대변되는 남도 산수화의 맥을 당당히 이어오면서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정신이 통섭하는 남종화의 새로운 해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통의 계승이 자칫 고루한 옛것의 답습으로 치부돼 버리는 게 현실입니다.
전통이 생명력을 갖기 위해선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재해석의 노력이 따라야 하겠지요. 그의 그림은 과거의 문인화가 아니라 현대적 감각이 강하게 배어 있는 작품임을 관람하는 순간 바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홍차물을 들여 고풍스런 느낌을 자아내게 한 한지 위에 흐드러지게 핀 홍매를 그려넣기도 하고, 입자가 고운 강모래 같은 금박을 뿌려 도시적 감수성을 더하기도 합니다.
紅梅가 도시적인 이미지라면, 白梅는 흰색이 주는 안온하면서도 기품 있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자칫 고루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한국화를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어울리도록 고안된 병풍도 선보여 다양한 전통의 변용을 활달하게 드러내보이고 있습니다.

허화백의 매화도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그림 속에서 매화향이 솔솔 풍겨오는 듯 해 마음은 맑아지고 발걸음도 다시 가벼워집니다.
매화의 꽃떨기를 형상화 하면서 꽃술을 한 점 한 점 찍는 작업을 하느라 눈을 혹사한 터에 한동안 화가의 눈은 착시현상의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합니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전, 허달재 화백의 매화도로 마음의 휴식 얻으시면 어떨까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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