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만난 집밥

입력 2011-03-11 09:31 수정 2013-03-25 19:30
사노라면 자의든 타의든 외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긴장을 하게 됩니다.
'오늘 내가 들를 이 밥집은 과연 식재료나 조리법이 바르고 청결할까?'
자문에 응답하는 메아리는 늘 '예측불허'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식성이 크게 까탈스럽지 않은데 밥집에 대한 불신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는 데는 하고많은 과거의 낭패스런 경험 때문입니다.

밥집의 선택권이 제게 주어진 경우에는 단골집으로 가니 수월하지만, 상대의 의중에 따라야 할 때나 낯선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될 때가 문제입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우선 김치 만이라도 제대로 담가진 것아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미심쩍어 하며 들어간 밥집에서 양호한 음식을 만나기도 하고, 밥집의 규모와 청결도에 홀려 들어간 경우 되려 실망하는 수도 많습니다.
그럴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반찬의 가짓수와 양을 확 줄이고, 음식의 질을 높이면 좀 좋을까 생각합니다. 매식에 실망하는 순간, 집밥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되고 정직한 옛음식이 다시 그리워집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요맘때쯤이면 묵은김치가 물립니다.
파릇한 봄나물이나 햇김치가 당기는 건 당연지사지요.
한데 봄날의 나른함에 기가 빠져 풋것들의 가벼운 맛도 금세 식상해질 때 생각나는 찬거리가 바로 우거지로 만든 음식입니다. 가을에 무청을 데쳐 말려둔 시래기 삶은 것도 좋고, 김치통에 굴러다니는 쳐진거리 배추김치를 씻어 우려낸 우거지도 좋습니다.
시래기나 우거지로 만드는 음식은 어느 지방에서나 즐기는 것이니 조리법이 대게 비슷하고 맛도 좋습니다. 하지만 삶은 시래기에 식용유 잔득 두르고 볶는 것엔 좀 거부감이 듭니다.

멸치육수나 생새우를 넣고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끓이는 법이 간편한데 간은 엷은 된장기나 간장으로 합니다. 아니면 냄비의 밑바닥에 시래기나 우거지를 넉넉히 깔고 고등어나 참붕어를 넣고 고춧가루 양념을 하여 뭉근한 불에 조리면 흐물흐물 간이 배인 우거지는 고기보다 더 맛나요.

제 유년기에 어머니는 쌀뜬물에 우거지를 담가 밥솥에 쪄서 참기름 한방울을 떨어뜨린 간장과 함께 상에 내놓으셨습니다. 이 조리법은 진주지방에서 즐기는 토속음식인데, 어머니는 맛이 담백하고 부드러운 우거지를 간장에 찍어 제 밥숫갈 위에 한사코 얹어주시곤 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이 어찌나 행복했던지 이즈음이면 꼭 한번씩 만들어보곤 합니다. 육식을 즐기는 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아 밥솥에 찐 우거지는 늘상 어머니와 제가 차지하는 여자들 찬거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습니다.

며칠 전, 친구들과 함께 모교 동창회관에서 먹었던 점심상이 인상적이어서 소개합니다.
예전엔 나물을 별로라 여겼었는데 나이가 드니 나물이 좋습니다.
그날 차려진 밥상엔 고사리나물(국산), 느타리버섯나물, 참취나물, 들깨순나물, 도라지나물, 깻잎김치, 묵은김치, 마늘간장조림, 달걀찜과 병어조림이었는데 어찌나 편안하고 맛이 있던지 옛날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그 밥상 같았습니다.

밥맛이 좋으면 소찬이라도 즐겨 식사를 할 수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윤기가 자르르 감도는 따끈한 밥을 커다란 목기(바루)에 주걱과 함께 담아내 한 테이블의 손님이 각자의 공기에 원하는 양 만큼 덜어 먹게 한 차림도 센스 있었지요.
 
순간 시중 한식집에서 차려내는 식단도 가짓 수를 줄인 나물에 김치와 찌개 하나를 더하면 누구나 편안하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표준 식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방법을 달리 한다면 멸치볶음이나 맛깔스런 젓갈 한 가지를 더해도 좋고 생선조림 대신 제육볶음이나 전과 야채겉절이를 올려도 좋겠지요.

식재료의 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임대료에 인건비마저 만만치 않아 원가와 식대의 갭이 줄어드니 식당업에 종사 하시는 분들의 고충이 크실 줄 압니다.
이런때일수록 우리집 만이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 된 식단과 경영법으로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바른 음식과 청결,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는 광고하지 않아도 고객이 먼저 알아보는 것이니까요.

겉 모양만 근사하고 내용은 부실한 밥상을 대하면 배신감과 함께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 논어 학이편)이라는 고전 명구가 떠오릅니다.

말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상냥하게 꾸미는 사람치고 仁(사람값, 사람구실, 사람다운)한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仁'의 의미는 단순히 어질다는 관념적이고 심리적인 상태로 다루어서는 안되며 仁이란 구체적인 인간관계 안에서 파악 되어져야 할 개인의 당위적인 도리를 이릅니다.(*이을호. 다산경학사상 연구. 을유문화사)
이런 시각으로 논어를 읽으면 仁(사람값, 사람구실, 사람다운)의 의미가 우리의 일상과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로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번지레한 말 앞세우는 사람 신뢰하기 어렵고, 겉 모양보다 식재료와 조리법이 바른 것이라야 제값을 발휘 한다는 사실, 외식경영자나 고객이 함께 자각하실 수 있다면, 한식문화는 절로 발전할 것이며 경영의 위기 또한 기회로 바뀌는 것 아닐까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229명 37%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396명 6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