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로 데려온 봄

입력 2011-02-21 07:37 수정 2012-01-07 05:46
아직은 김장김치가 그런대로 제맛을 지니고 있어 햇김치가 크게 당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봄이 다가오니 상큼한 햇김치와 봄나물이 생각납니다.
남녘에선 벌써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대지의 강인한 지기와 봄볕을 흠씬 머금은 푸성귀는 아니더라도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시설에서 재배된 얼갈이 열무 풋마늘을 섞어 햇김치를 담갔습니다. 젓갈은 쓰지 않고 청양고추 설익은 것을 마늘 생강 밥과 함께 믹서기에 갈아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실온에서 이틀간 익히니 아주 딱입니다.
칼칼한 풋고추와 밥을 갈아 담그는 열무김치는 전라도 고흥지방의 향토음식인데 홍고추에 익숙해진 미각이 '아, 이맛 톡 쏘네'라며 아주 산뜻하게 반응합니다. 

참취는 데쳐 간장에 무치고 양념하지 않은 돼지고기 목살을 굽고 물미역과 곰취와 풋마늘로 쌈채를 준비하여 올리니 밥상에서 봄내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여기에 데친 물오징어 한 접시를 새콤달콤한 초고추장과 함께 곁들이니 두루 어우러지는 상차림입니다. 멸치육수에 된장을 풀고 깨끗이 손질한 냉이와 조개살을 넣고 끓인 냉이국이 몸과 마음에 쌓인 겨울의 눅눅했던 기운을 털어냅니다.

20일이 말날인데다 날씨도 좋아 간장 담그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정월 볕 좋은 날에 간장을 담그면 염도도 낯출 수 있고 (17보메) 간장의 빛깔도 맑기 때문입니다.
흰빛이 도는 곰팡이가 난 잘 띄운 메주를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려두고 소금물을 풀어 서울지방은 대게 17보메의 염도 (남도지방은 19-20보메)로 소금물을 풀어 하룻저녁이 지난 후에 가는 베보자기를 소쿠리에 깔고 소금물을 거릅니다.

겉면이 번들거리지 않는 숨쉬는 전통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마른 행주로 닦은 후에 숯이나 솔가지 혹은 신문지에 불을 붙여 뚜껑을 닫고 타도록 기다려 잡균을 제거하는 소독을 합니다.
소독이 끝나면 항아리를 맑은 물에 헹구어 다시 햇볕을 쪼여 물기를 제거하고 준비된 메주를 항아리에 어긋나게 담습니다. 그리고 걸러낸 소금물을 가득 붓고, 참숯과 마른 홍고추를 띄우고 메주가 소금물에 잘 잠기도록 대나무가지를 항아리 주둥이에 어슷하게 끼워넣습니다.
가는 면보자기를 두른 뒤에 뚜껑을 닿고 하루가 지나거든 매일같이 뚜껑을 열어 햇볕을 보이고 항아리의 겉면에 먼지가 끼지 않게 자주 마른 행주질을 하여 청결하게 관리합니다.

그러기를 60-70일이 지나면 간장이 우러나 4월 하순이나 5월초에 메주를 떠서 된장을 가르게 됩니다. 간장은 달이지 않는 게 좋지만 혹 우기에 변질될 것이 염려되면 은근한 불에 달여서 식힌 후에 항아리에 붓고 볕을 보여 잘 관리합니다.
가른 햇된장은 메주가루와 소금을 넣고 잘 치대서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고 햇볕보기를 계속하여 숙성시킵니다.

소금물을 따로 풀지 않고 묵은 간장물에 메주를 넣고 담가 만든 간장을 접장이라 하는데 이는 맛도 빛깔도 매우 깊고 진합니다.
햇수로 1년 정도에 이르는 것을 햇간장, 3-4년 묵은 간장을 중간장, 5년 정도 묵은 간장을 진장 혹은 진간장이라 합니다.

겨울에 말린 꿩이나 닭고기 소고기 또는 생선을 항아리 밑에 넣고 그 위에 메주를 얹어 간장을 담가  항아리째 땅속에 묻고 1년에서 3년 동안 숙성시켜 만든 간장을 어육장이라 하는데 그리 긴 세월을 기다리고 공을 들여서 만들어지는 우리의 전통간장은 그 맛이 깊고 오묘하여 어디에 내놔도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음식맛은 장맛'이라는 말이 있듯 규모 있는 살림을 위해선 번거롭더라도 간장을 담그는 전통을 이어나가시면 이 아니 좋을 일입니까.

봄볕이 완연해지니 정말 살것 같습니다.
봄은 소생이고 신생입니다.
논어의 陽貨篇에 '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라 했지요.
사람의 성품이나 기질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으로 인하여 서로 멀어진다는 것이지요.
내게 주어진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각자에게 주어진 숙제입니다.

봄은 무엇을 새롭게 바꾸고 시작해보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한때일 뿐, 영원한 것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하여 산다면, 삶은 그래도 진부하지 않고 바라볼만한 게 더 많은 여정이 아니겠는지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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