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주전부리

입력 2010-12-02 11:18 수정 2012-11-10 03:15
가을걷이가 끝난 초겨울의 황량한 들판엔 겨울채소와 보리순 만이 푸른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네요.
10월 상달은 시향제가 모셔지기도하고 한 해의 농사를 마친 감사의 마음으로 말날이나 길일을 택하여 그 댁의 안주인이 城主神에게 고사를 지내던 달이기도 합니다.
이때에 쓰이는 떡은 팥시루떡이었는데 쌀가루에 무채나 호박을 넣고 팥고물을 두르고 켜를 두툼하게 앉혀 시루 그득히 쪄낸 떡이었습니다.

떡시루는 대청마루와 장독, 대문, 부엌, 외양간 등으로 옮겨지며 고사를 지내고나면, 마을 친지들과 고루 나누어 먹었습니다. 선대 어머님들의 살뜰한 살림 솜씨가 그리워지는 이즈음, 아련히 떠오르는 주전부리가 있으니 그게 바로 무시루떡과 물호박떡입니다.

밤은 길어지고 기온은 점차 내려가니 따끈한 차 한잔이 생각나고, 출출함을 채워 줄 주전부리를 절로 찾게 되는 것이지요. 초등학교 시절, 저희 집안에 제사가 없던 터라 아이들이 시향제나 고사떡을 학교로 가져와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 날이면 그게 그렇게 부럽고 좋아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친구 한테 얻어 먹은  무시루떡과 물호박떡의 맛은 지금도 정확히 기억해 낼 만큼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딱히 간식거리가 귀하던 시절, 떡은 단연 최고의 주전부리였습니다.

어머니가 간식으로 만들어주시는 차지고 쫀득해서 맛난 찰시루떡이나 쑥인절미 그리고 찹쌀모찌에선 찾을 수 없는 고향의 맛이 그 떡에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친이 모두 공직에 계셨기에 저희 가족은 늘 이곳 저곳을 떠도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여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대소간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씨족공동체에 대한 부러움은 어린 마음에도 사무친 것이라서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동삼과도 안 바꾼다는 가을무를 도톰하게 채를 썰어 채에 내린 쌀가루에 섞고 훌훌 털어 가루를 준비합니다. 팥은 하룻저녁 불렸다가 부르르 끓어오르면 그 물은 버리고 다시 새물을 넉넉히 붓고 잘 무를 때까지 푹 삶아 팥알이 거의 익으면 물을 따라내고 약불에 뜸을 들입니다. 삶아진 팥을 바로 소쿠리에 건져  남아 있는 물기를 뺍니다. 이때 물과 불조절을 잘 하셔야 팥이 타지 않고 맛이 있게 삶아집니다. 팥이 좀 무르다 싶으면 중국식팬을 달구어 팥을 넣고 속히 나무주걱으로 덖어 수분을 날려버린 다음 넓은 옹자배기나 양푼에 담아 펴서 식힙니다. 통팥고물 보다는 나무절구에 넣고 공이로 몇 번 찧어서 팥알이 대강 으깨지면 잘 된 고물입니다.

무는 맵지 않고 단맛이 나는 것으로 준비하여 채를 썹니다.
무채에 소금이나 설탕으로 절이는 분도 계시는데 간을 하면 탈수현상이 생겨 무가 질겨지고 쉬 익지도 않으니 그대로 사용하시는 게 좋고, 설탕도 넣지 않는 게 무 본래의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굳이 단맛을 원하시거든 완성된 떡에 조청이나 꿀을 찍어 드세요.

떡가루는 멥쌀을 하루저녁 물에 불려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다음 소금을 넣고 방앗간에 가서 가루로 빻아 옵니다. 쌀가루에 물을 조금 두르고 손으로 덩이가 지지 않게 고루 비벼 어레미에 내립니다. 무채를 쌀가루에 넣고 훌훌 털어 고루 섞습니다.
시루나 찜기에 시루밑이나 물에 축인 베보자기를 깔고 팥고물을 넉넉하게 두른 다음 준비 된 떡가루를 한 켜 놓는데 다른 떡보다 두텁게 하셔요. 이런 식으로 팥고물과 떡가루를 켜켜로 반복하여 떡을 안쳐 맨 위에 다시 물에 적신 베보자기를 얹고, 김이 오르는 솥에 시루를 반듯하게 놓고 시루번을 붙여 떡을 푹 찝니다. 된 김이 오르면 젓가락으로 찔러보아 쌀가루가 묻어 나오지 않나 확인한 후에 불을 끄고 뜸을 들입니다.

물호박떡은 불린 멥쌀을 빻아 소금과 설탕물로 내린 가루에 손질 된 호박(나비 2센티 두께 1센티 길이 4센티 정도로 썰은 늙은 호박을 채반에 펴서 잠시 물기를 말린)을 넣고 팥고물을 얹어 쪄낸 시루떡입니다. 만드는 법은 무시루떡과 같고, 팥고물을 더 부드럽게 하려면 팥을 타서 거피를 하면 좋은데 좀 번거롭습니다. 다만 손질 된 호박에 고운소금 약간과 설탕을 넣고 버무린 다음 쌀가루와 섞어 떡가루를 만드는 것이 다릅니다. 물호박떡은 너무 질지 않게 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떡이 질 경우엔 주걱으로 떠서 팥고물을 고루 묻혀 합에 담아 내시면 되고, 물호박떡이나 무시루떡 모두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되어 노인들이 드시기에도 좋습니다.
떡과 어울리는 차는 모과차 유자차 생강차 대추차 두루 좋겠고, 시원한 동치미나 나박물김치를 곁들이셔도 좋겠지요.

아직은 날씨가 따뜻해 겨울이 실감나지 않지만 점차 햇볕은 온기를 잃어가고 대지엔 매서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칠 것입니다. 개미나 꿀벌처럼 월동준비 잘 해서 건강하고 따뜻한 겨울 나셔야겠지요. 김장 넉넉히 해두면, 하절에도 김치 담그시느라 종종걸음 칠 일이 없어 일 년이 편안합니다. 멥쌀로는 가래떡이나 절편, 찹쌀로는 인절미 넉넉히 장만하여 냉동해두고 드시면 가족들 간식으로도 좋거니와 쌀소비 촉진에도 일조하게 되니 쌀농사 하시는 농부님들께도 득이 되는 일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온화해지는 것 같습니다. 밤 시간이 길어지니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알게 되고, 잊고 지내던 친구나 친지를 떠올려 연락을 하기도 하고, 아슴한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을 반추해보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니까요.

이 겨울, 내 마음 속에 고즈넉한 공간 하나 만들어봅니다. 그 공간에 머무르면서 내가 고쳐야 할 악습은 무엇인가. 내 기억에서 지워야 할 것들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지속적으로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그것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오늘 해야 할 과제들은 빠짐 없이 하였는가에 대해 점검해봅니다. 그래야만 춥고 긴 겨울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겠다싶기 때문입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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