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산뜻한 변신- 비늘김치

입력 2009-11-24 05:19 수정 2009-12-05 01:38
무 맛이 제일 좋을 때가 요즈음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엔 무나 생고구마를 깎아 간식으로 먹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앞마당의 텃밭에 무성히 자란 무청을 헤치고 윗 부분이 푸른 왜무 하나를 쑥 뽑아 이파리는 그 자리에서 떼어내버리고 뿌리에 묻은 흙을 대강 닦아내면 몸이 고운 무의 육질이 드러납니다.
매끈한 무의 겉껍질을 손톱으로 도려내고 물기 머금은 무의 속살을 한 입 베어 물면 그 매콤하면서도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라니요.

추운 겨울밤 <소공녀>의 세라가 민친여사에게 호된 곤욕을 치루는 대목을 읽고 있는 저에게 고구마와 무를 깎아 한 접시 건네시며 '아가, 이것 먹고 봐라' 하시던 어머니의 그 낭랑한 목소리가 어디선지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 때의 어머니는 젊디 젊은 삼십대 중반이셨으나 지금은 저작이 어려워 삶은 무가 아니면 드실 수가 없을 만큼 고령이 되셨으니 참 까마득한 세월의 저편에 묻어 두었던 얘기입니다.

무의 시원한 맛은 강아지도 알고 있나 봅니다.
제가 도마 위에서 무를 자르고 있으면 그 소리를 듣고 어디서 놀다가도 부리나케 달려와 제 옆으로 찰싹 붙어 앉거든요.
저도 무 맛을 봐야겠다는 것이겠지요.
무 한 토막을 잘라 녀석에게 던져주면 녀석은 그걸 냉큼 받아물고 제 방석 위로 달려가 아작아작 깨물어 삼키고는 금세 다시 제 쪽으로 달려 옵니다.
또 달라는 것이지요.
이러기를 서너 차례나 더해야 견공의 무 맛보기는 끝이 나데요.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하는 효소와 식이섬유가 풍부하게 함유된 무의 조리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김장무로 담근 김치가 주종이지요.
무로 담그는 김치 중 비늘김치는 그 중에서도 으뜸입니다.
비늘김치는 만들어진 모양이 생선의 비늘처럼 생겼다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같은 무김치라도 그냥 숭덩숭덩 썰어 양념에 버무린 것 보다는 무의 등에 어슷어슷 칼집을 내어 사이사이에 소를 넣어주면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지요.
산뜻하고 멋스럽기까지한 비늘김치는 조선시대의 어머님들이 무김치에 이렇듯 미려한 디자인 감각을 끌어들여 만들어내신 맛깔난 음식입니다.

동치미무나 그 보다 작은 초롱무를  이파리를 떼어내고 다듬어 씻은 다음 천일염수(물과 소금의 비율 10대 1)로 간을 합니다.
1시간쯤 지나서 무에 간이 약간 들면 무를 건져 반으로 가르고 무의 등쪽을 어슷어슷 2센티의 간격으로  깊게 칼집을 넣어 염수에 다시 담궈 1시간 정도 더 간을 합니다.
무청도 씻어 간을 하고 건져 물기를 빼둡니다.
무 속에 들어갈 소는 무채와 밤채 미나리채 쪽파채 석이버섯채를 준비합니다.
양념은 멸치액젓과 다진 새우젓 고춧가루 간마늘로 혼합 합니다.
소로 들어갈 부재료에 양념을 합니다.
주재료인 무에 양념장을 넣고 버무린 다음 무의 칼집 속에 소를 채워 넣어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은 후 무청을 펴서 덮고 꼭꼭 눌러 밀봉하여 시원한 곳에 사흘 정도 둔 다음 냉장고에 넣습니다.

비늘김치는 뜨끈한 국물이면 어느 것이나 잘 어울립니다.
바깥 날씨가 추운 날 진한 곰국에 밥 말아 비늘김치와 함께 드시면 그 아삭하고 시원한 맛에 반해 사느라 고단했던 마음들은 어느새 따뜻해지고 이 풍진 세상 또한 살아 볼만한 곳으로 바뀌게 되는 것 아닐까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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