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와 메밀의 향연이 펼쳐지는 학원농장

입력 2009-01-07 02:30 수정 2014-05-06 23:04







 지난 세밑에 내린 눈이, 삼십여 만 평의 드넓은 보리밭에 아직 희끗희끗 남아 있는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에 위치한 학원(鶴苑) 농장에 다녀왔습니다.
'학원'(鶴苑)이라는  농장은 선동리 일대가 두루미가 많이 찾아드는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고창은 시인 미당의 출생지이기도 하거니와 고인돌, 모양성 같은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며 갖가지 산물들이 풍성한 곳입니다.
 고창의 옛 이름인 모양현(牟陽縣)의 '모'는 보리를 뜻하는 바 보리가 잘 자라는 마을 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맥'(麥)은 보리 이삭을 가리키며, 모(牟)는 보리의 뿌리 줄기 이삭 전체를 의미 합니다.
이렇듯 고창이라는 고을 자체가 원래 보리농사와 연이 깊은 고을입니다.

칼날 같이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에, 호남평야 끝자락의 드넓은 구릉에 펼쳐진 초록의 생명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두고 온 世事는 저만치 달아나고 정신은 온전히 푸르렀던 내 청춘의 그날에 딱 멈추는군요.

배동바지 출렁이는 보리밭 둑길에서 캤던 쑥이며 자운영, 쑥부쟁이 달래, 냉이 같은 봄나물들, 마을 동무들과 어울려 보리 피리 만들어
'필릴리 필릴리' 불어보던 추억이 파노라마되어 아른거립니다.

여학교 시절 봄소풍 때면 어김 없이 지나던 보리밭 둑길에서 보았던 보리 이삭들의 일렁거림과 봄하늘에 힘차게  날아오르며 노래하던 종달새의 지저귐,..  
보리밥, 보리개떡, 보리미수가루, 기근의 세월을 지나오며 먹었던 음식들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논둑 위에 깔렸던 잔디들도 푸른 빛을 잃어버리고, 그 맑고 높던 하늘도 검푸른 구름을 지니어 찌푸리고 있는데, 너 보리만은 차가운 대기 속에서 솔잎 끝과 같은 새파란 머리를 들고,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솟아오르고만 있었다.
이제 모든 화초는 地心 속의 따스함을 찾아서 다 잠자고 있을 때, 너 보리만은 억센 팔들을 내뻗치고 새말간 얼굴로 생명의 보금자리를 깊이 뿌리박고 자라 왔다.'

수필가 한흑구 님은 겨울 들판에 파란 싹을 내밀고 있는 보리를 보고 이렇게 표현 했었지요.

학원농장은 전 국무총리 진의종 씨와 부인 이학(자수연구가)여사가 1960년대 초, 십여만 평의 미개발 야산의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설립 되었습니다. 그 댁의 장남인 진영호 씨는 1992년까지 금호 실업에서 20여 년 간 재직하다 이사 직을 마지막으로 스트레스의 연속일 뿐인 조직 생활을 정리하고 귀향하여, 선친의 가업을 물려 받아 농부인생 2막을 열었습니다.

"직장에서야 내가 더 많이 가지면 남이 그 만큼  덜 갖게 되는 경쟁의 연속이지만, 농촌에서는 다 같이 힘을 합하면 나도 배 부르고 남도 배 부를 수 있어요. ", 서울을 떠나면서 밝힌 진영호 대표의  新歸居來辭 속에 이미 성공의 인자는 발아되고 있었지 싶습니다.

붉은 황토밭을 개간하기 시작한 귀농 초기에는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애써 지은 비닐 하우스가 태풍에 주저앉아 버리기도 했고, 힘들게 가꾼 농산물의 출하량이 조절되지 않아 가격 폭락에 상심한 적도 수차례였습니다. 손수 지은 비닐 막사에서 홀로 기거하며 2년 동안 거친 농사 일을 계속하자,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 말 것이라던 주변(관계 당국)의 시선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농촌에 정착할 사람으로 인정해 주기 시작하더랍니다.

귀농 2년 후에는 자녀 교육 문제로 서울에서 생활하던 부인도 내려와 함께 농장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닐하우스에서는 카네이션과 장미 백합 등 화훼를 재배했고 남은 농지에는 보리와 콩을 대량으로 경작하였는데 90년대 말부터 보리 농원으로 이름이 알려지자 콩을 메밀로 대체하여 청보리와 메밀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경관농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11월 초에 파종한 보리는 잔디 만큼 자라나 생장을 멈추는 동절기를 거쳐 3월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4월 말부터 5월초면 그 푸르름이 절정에 이르는데 이 때 청보리 축제가 열립니다.
이 기간이 되면 전국에서 모여드는 관광객이 수십만에 이른다 합니다.

6월 초부터 시작되는 보리 수확이 끝나면, 7월 말경에 메밀 파종에 들어가 80일의 생육 기간이 지난 10월 중순에 수확하게 되는데 9월 한 달은 또 한 차례의 메밀꽃 축제가 펼쳐집니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메밀은 전국 생산량의 70프로 이상을 상회 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메밀 주산지인 강원도를  앞지르는 생산량입니다. 생농원에서 생산된 메밀의 대부분은 강원도로 보내져 가공되고 있습니다.
 
보리축제가  열리는 지난 2000년 5월, 마침 고교 졸업 30주년을 기념하는 홈커밍데이 행사가 광주의 모교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진영호 대표께서( 부인이 저희와 고교 동기 동창)  카네이션 꽃다발을 트럭에 한가득 싣고 오셔서 모교 은사님들과 200여 명의 친구들에게 손수 나눠 주시던 모습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도 그 많은 친구들을 학원농장에 초대해서 농장 여기저기를 안내해 주시기도 했었지요.
 
2004년 말, 이 농장 일대가 국가에서 관장하는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되어 학원농장 인근 200여 만 평의 농지가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각종 혜택을 보게 되었다는군요.

전국에서 최초로 경관농업특구로 지정 되자 주변의 농가들도 잇따라 보리를 재배하게 되어 지역사회의 소득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농촌은 단순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곳을 넘어 우리 삶의 터전이되어야 한다'.는 것이 진영호 대표의 경영철학입니다. 삶의 근원에 목마른 도시인들에게 아름다운 농촌 경관과 질 좋은 먹을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잃어버린 고향의 꿈도 되찾게 하고, 농업의 성장도 꾀하는 自利利他의 善한 비지니스를 창출해 내고 있습니다.

나날이 발전해 가는 학원농장을 둘러보니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 오는 길인데도, 가슴 한 켠에서 괴어 오르는  아쉬움 또한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 해 몇 년씩을 고시원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도시의 우울한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그 푸른 보리처럼 청청해야 할 청년들의 축 늘어진 어깨를 볼 때마다 이제는 취업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구하는 농부는 땀 흘린 만큼 결실로 돌아온다는 땅의 순리에 눈을 돌리는 젊은이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의 시로 우리와 친숙한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1873-1963)도 농장에서 농사를 짓느라 검게 그을은 얼굴의 농부시인이었습니다.

'농촌에 길이 있다.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 말에 귀 기울이는 개척자적인 도시의 젊은이들이 속속 귀농하여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자신의 꿈도 이루어내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보리밥>
오늘 메뉴는 백미에 보리를 평소보다 조금 많이 넣으셔서 밥을 짓고 나물 한 두가지를 곁들여 고추장과 참기름 두르고 비빔밥 해드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맑은 콩나물 국도 곁들이시면 금상첨화겠지요.
<강된장 찌개>
보리밥과 또 잘 어울리는 게 된장 입니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버섯, 호박, 양파, 청양고추, 대파..)와 해물이나 쇠고기 반 컵으로 강된장 찌개 끓이시고 봄동 겉절이 만들어 비벼드셔도 좋습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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