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는 언제부터인가 2-3년에 한 번씩은 읽다보니 벌써 3-4번쯤 읽었다. 처음에 김구선생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읽을수록 아버지가 얼굴을 맞대고 아들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지 못한 것을 글로 써서 그런지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과 솔직한 인간다움이 곳곳에서 느껴지기는 자서전으로 자꾸만 읽게 되었다.



강북삼성병원에는 김구선생이 서거한 역사의 현장인 <경교장>이 복원되어있다. 경교장은 원래는 일제강점기 광산업으로 큰 부를 축척한 최창학이 죽첨장(竹添莊)이라는 이름으로 1938년 건립한 건물로 그 당시에는 최고의 자재와 위용을 자랑했다고 하는 장소인데 이것이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환국하자 최창학이 김구선생의 집으로 제공하였고 그러면서 경교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임시정부의 활동공간 및 김구 주석과 임정요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경교장은 그 후 1949년 김구가 서거한 후 중화민국 대사관저 월남대사관등으로 사용되다가 1967년 병원시설로 사용되었는데 2010년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건축 당시의 설계도면과 임시 정부 거주 당시의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내부를 원형대로 복원하는 방식으로 시작이 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전시실은 지상 2층과 지하가 있었는데 지상 1층에는 영상을 보여주는 장소와 응접실과 귀빈식당이 있었다. 2층에는 환국 후 국내 정당대표들과의 회담 및 국무위원회가 개최되었던 곳이 있다. 그리고 집무실이 있는데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서거한 장소로 당시의 총탄 자국이 있다고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하에는 다양한 전시유물이 있었는데 백범일지 초간과 서명본도 있었다.



김구선생이 썼던 <나의 소원>중의 일부인 이 글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글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참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의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 (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치었고 왜인을 죽이고 감옥에서 죽을 뻔하기도 했던 선생이지만 그가 소원했던 것은 바로 문화와 교육의 힘으로 좋은 우리나라를 만들고 싶어했다. 이 같은 선생의 뜻이 곳곳의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장소였고 또 하나 서울은 참 이야기가 많은 도시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나오는데 김구선생의 이 글귀가 자꾸 눈을 끌었다.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