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7.24)- 정신의 언어 - 욕심, 양심, 통찰

입력 2014-07-24 00:00 수정 2014-07-24 01:50
오늘의 행복(7.24)- 정신의 언어 - 욕심, 양심, 통찰





의식과 무의식의 농축인 정신은 욕심, 양심, 통찰이라는 내부 언어로 말한다.   욕심(慾心)은 자기밖에 모르는 정신. 욕심(慾心)은 지나치게 탐냄이라고 표현하고 에고의 대리인이라고 읽는다. 욕심은 행동의 뿌리, 동기부여의 엔진이지만 지나치면 정신을 탁하게 하고 추태를 부린다. 욕심은 2진법으로 끊임없이 조합되며 상승한다. 그동안 조직의 상층부는 유능한 자가 아니라 욕심이 강한 자가 승자가 되어 지배를 하였다.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욕심 세력이 상층부를 차지하고 북한의 지배구조처럼 아래를 누르기 때문. 제어된 욕심은 그래도 정신이 되지만 널브러진 욕심은 탐욕으로 발전한다. 권력의 무대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싸우는 형국이지만, 권력의 본질은 이익과 상층부 지배를 위한 욕심이기에 평화는 없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욕심을 줄이고 투명한 양심회복 운동을 하자.   양심(良心)은 함께 사는 정신. 양심은 도적적인 도리와 선과 악을 깨달아 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정신의 핵이라고 표현하고 인류가 존속하려면 시급히 찾아야할 덕목이라고 읽는다. 산업화 이후로 인류에게 양심은 거추장스런 외투였다. 20세기부터 인류는 양심의 끈을 놓으면서 세계대전을 벌렸고 테러로 불특정 다수를 학살했고 물질의 쾌감에 빠져 모든 생명체의 적(敵)이 되었다. 아시아의 등불은 한국에서 시작을 한다고 했고, 인간의 존엄성은 양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양식은 몸을 키우고 양심은 정신을 키운다. 우리가 양심을 찾으면 우주가 질서를 찾는다. 자기몰입으로 마음속의 양심을 찾고, 대상 몰입으로 함께 사는 정신을 찾자.   통찰(洞察)은 에고와 양심을 동시에 보는 통일 정신. 정신은 통찰에 이르러야 아(我)와 비아(非我), 의식과 무의식, 각성과 감각, 현상계와 절대계가 한 덩어리가 된다. 통찰은 선과 악, 정신과 마음의 경계선이 사라지고 언어가 의미를 잃는다. 오로지 지혜와 행동만이 남는다. 전체를 헤아리는 통찰은 양심불량 단계를 그냥 뛰어넘어 선의 경지로 나가게 한다. 방법을 위해 목적이 종사하고 휴머니즘을 위해 생각의 파편들이 조합된다. 통찰의 경지에 이르면 모순과 정상이 동시에 보이고, 마음은 특정한 방향으로 농축되어 정신이 되며, 욕심은 해체되어 양심으로 변화하고, 본래의 ‘나’는 용기와 자신을 얻어서 세상 밖으로 나간다. 욕심이 양심으로 변할 때까지, 양심은 통찰의 위력을 얻을 때까지 정진하자.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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