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7.17)- 행복은 ‘참나’를 찾는 일.

입력 2014-07-16 19:30 수정 2014-07-17 15:26


오늘의 행복(7.17)- 행복은 ‘참나’를 찾는 일.





에고(자기집착)는 참된 내가 아니다. 에고(미성숙 자아)에 빠지면 욕망에 쫓겨 자기만 생각하고 감정을 부리고 단순 생각으로 손해라는 것도 알면서도 무리수를 두고 이미 진 시합을 한다. 에고(껍질)는 욕심과 자존심이 결탁하여 생존에 불리한 짓들 - 화, 분노, 변덕, 폭력, 시비 등- 을 한다. 에고의 성(城)에 누가 침투하여 간섭하고 개입하면 자존심이 바로 아파하고 상처를 입는다.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은 권리도 있지만 자존심이 예민하게 작동하면 몸의 꼴도 우스워지고 결국 마음도 좁고 추해진다. 에고는 겉으로는 의식과 결탁하여 실리를 쫒지만 그 실리가 자기중심이며 본성을 잊으면 생존에 불리한 감정, 기분 나쁜 기억, 지나친 고집을 선택하여 100% 손해가 되는 짓을 한다. 삶을 살려면 욕심으로 몸을 끌고 가고 마음을 산만하게 흩뜨리는 에고를 죽이고 ‘참나’를 찾자. '참나'를 찾아서 에고를 다스리자.

 

‘참나’를 찾자. ‘참나’는 잠들지 않고 항상 각성 상태로 있다. (에고는 낮에는 타자와 싸우느라 피로와 고통을 벌기에 밤에는 자면서 쉬어야 한다.) ‘참나’는 양심과 사단(四端)과 벗하여 동요가 없다. 상대를 측은하게 생각하기에 불필요하게 다투지 않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어 흔들리지 않고, 겸손으로 예를 취하기에 사랑을 받고, 악한 것을 내치는 정의로움이 있다. 구름처럼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중심을 지킨다. ‘참나’는 선택하는 게 아니라 본래의 양심(도덕)을 찾는 것이다. ‘참나’는 정신적으로 죽지 않지만 ‘참나’도 몸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바둑은 두 집을 지어놓아야 살 수 있듯 ‘참나’도 양심과 생존이라는 두 개의 기반에서 존속한다.  생존이 어려운 상태의 ‘참나’는 뿌리 없는 나무다. <이 게 무엇인가?> 그 근본을 헤아리고 생각하게 하는 존재 의문으로 '참나'를 찾자.  

 

자존감보다 생존을 선택. 몸은 유리그릇처럼 한 번 깨지면 원상복구가 안 된다. 마음의 에고인 자존감은 상처를 받더라도 치유하고 회복할 기회가 있지만 몸은 깨지면 끝이기에 몸의 생존이 우선되어야 한다. 인류가 정신적 자존감으로 진보한 면도 있지만 자존감이 생존영역을 좁히고 목숨마저 잃게 한다. 생존이 물리적 안전장치라면, 자존감은 정신적 안전장치다. 생존을 잃으면 그 어떤 행복도 없다. 생존과 자존감이 충돌하면 일단 생존의 편을 들자. 에고의 덩어리인 자존감 때문에 생존을 어렵게 하는 일을 줄이자. 몸의 생존으로 기반을 다지고, 잠들지 않는 ‘참나’로 영혼의 중심을 지키며, 생존을 위한 최고의 선택으로 안전하면서 행복한 인생의 열매를 얻자.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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