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요즘 뭐 먹고 사냐?

입력 2001-07-13 10:55 수정 2001-07-13 10:55
경기가 나쁘다고 야단들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좋다는 `삼성`마저 감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마당이니 분위기가 좋을리 없습니다. 올해 하반기만 되면 다 좋아질 거라던 재정경제부 장관의 호언장담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런가 하면 다들 죽겠다고 아우성인데도 백화점이나 호텔 식당은 발 디딜 틈 없이 초만원인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요??




장마비는 오락가락하고, 제가 속한 언론계는 연일 비리의 온상으로 지탄받고....


우울하고 서글픈 가운데 둘러보니 황지우 시인의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라는 시집이 눈에 뜨이더군요.




황지우라는 시인은 1952년생 용띠입니다. 본명은 황재우구요. 다소(?) 뚱뚱한 편입니다. 물론 얼굴도 둥글넙적하지요. 지금은 시인이자 예술평론가, 조각가로 이름도 웬만큼 날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라는 직함도 갖고 있지만 운동권 출신이어서 오랫동안 백수나 다름없는 가운데 고생했습니다.




첫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이후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등의 시집을 내놓았는데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지요. 실력 있고 재주 많은 사람들이 보통 그렇듯 황시인도 투덜거리는 듯 잘난 체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시가 탁월한데......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엔 이런 시가 있습니다.


`聖 찰리 채플린`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지요.




「영화 끝장면에서 우리의 "무죄한 희생자"


찰리 채플린이 길가에서 신발끈을 다시 묶으면서, 그리고


특유의 슬픈 얼굴로 씩 웃으면서 애인에게


"그렇지만 죽는다고는 말하지 마!" 하고 말할 때


너는 또 소갈머리 없이 울었지




내 거지 근성때문인지도 몰라


나는 너의 그 말 한마디에 굶주려 있었단 말야;


"너, 요즘 뭐 먹고 사냐?"고 물어주는 거


聖者는 거지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너도 살어야 헐 것 아니냐


어떻게든 살아 있어라」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는 대공황시대의 인간소외를 다룬 작품입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돼가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지요. 평범한 개인이 갑작스런 변화 앞에서 당황하는 건 지금과 아주 흡사합니다.




저도 거지 근성이 있는 걸까요. "너, 요즘 뭐 먹고 사냐?"라는 말 한마디에 굶주려 있었다는 대목에서 콧등이 시큰해지는 걸 보면.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너, 차비 있냐?"고 물어주는 사람이 더없이 고맙던 시절을 오래 겪었습니다. 그런 때문인지 지금도 저는 주머니에 차비가 있는지 꼭 챙기고, 저녁 회식후 후배들과 헤어질 때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너, 차비 있냐?"고 묻곤 합니다.




"너, 요즘 뭐 먹고 사냐?" "밥은 먹었냐?" "너, 차비 있냐?"


예전엔 참 많은 사람들이 서로 물어주던 말이었지요. 상대방도 물어주기를 바라면서....요즘엔 다들 먹고 살 만해져서인지, 아니면 제 살기에 너무 급급한 탓인지 이런 말, 별로 안하는 것같습니다. 오히려 오랜만에 누군가 만나면 애써 이런 질문을 피하는 듯 보입니다.




자기 문제에 골몰하면 주위를 돌아볼 여유같은 건 생기기 어려운 듯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너무 더딘 듯하고, 노력만큼 보상은 주어지지 않는 것같고, 둘러보면 다른사람들은 모두 잘나가는 것같고....




그래서 답답하고 안타까울수록 "나는!" "나는?" "나는..."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심호흡을 하고 전후좌우를 살펴 보면서 자신보다 조금 더 답답해 보이는 사람에게 "너, 요즘 뭐 먹고 사냐?" 물어주는 여유를 갖는 것도 이 힘겨운 현실의 강을 건너는 한 방법이 아닐른지요????




신발끈 질끈 다시 동여매고, 세상을 향해 빙긋 한번 미소짓고 말입니다.어떻게든 살아 봐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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