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Inc. Steve Jobs is the CEO of the decade, according to the new issue of Fortune magazine. / via Fortune Magazine


2009년 11월 경제전문지 <포춘>은 세기의 CEO로 스티브 잡스를 지명했다. 3년 뒤 <포춘>은 잡스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다. 오늘 날 많은 젊은이가 스티브 잡스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 주니어 어치브먼트(Junior Achievement, 비영리 청소년 교육기관)는 2009년 12~17세의 청소년 1,0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기업가’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스티브 잡스가 전체의 35%로 1위를 차지했다. 스티브 잡스를 뽑은 사람들 중 61%는 그가 ‘우리 삶을 변화시켜서’,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서’, ‘차별화를 이뤘기 때문에’라고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잡스의 부와 명예를 선정 이유로 꼽은 사람은 4%에 불과했다. 이는 어른들과 달리 청소년들은 잡스가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를 존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잡스는 우리 사회에, 특히 10대 청소년의 마음속에 진정의 혁신의 의미를 심어주고 있는 셈이다.

 

창의력의 우열은 청소년기에 좌우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창의력’의 원천이다. 내게 성공을 위해 필요한 단 한 가지 조건을 묻는다면 단연 ‘생각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삶의 과정은 ‘판단’과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순발력이 필요한 순간적인 판단 그리고 미래의 큰 그림을 위한 장기적인 선택 모두 생각의 힘 우열에 따라 정확한 해답이 결정된다. 스티브 잡스의 창의력은 마치 절대 에너지 같은 궁극(窮極)의 ‘생각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창의력은 나이에 따라 무한으로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에서 청년시기의 지식 습득과 체험의 축적량이 평생 창의력의 보고(寶庫)가 된다. 잡스의 경우도 청소년에서 청년시기 삶의 과정들을 살펴보면 그의 창의력 원천을 밝혀낼 수 있다.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세계적 발명가인 빌 게이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토마스 에디슨의 10대와 20대를 살펴보면서 그들 경쟁력과 성공의 원천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청소년과 청년기의 많은 인재들이 자신의 인생 좌표를 다시 점검하고 올바른 발명가의 삶을 설계하며 길을 가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스티브 잡스, 캘리그래피에서 미래를 얻다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십대는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려 지내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생활이 너무 따분했다. 난 다루기 힘든 골칫거리로 변해갔다.” 잡스의 6학년 성적표에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적혀 있었다. “잡스는 뛰어난 독서가다. 하지만 독서를 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잡스는 공부에 의욕을 갖거나 목적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때로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잡스는 초등학생 시절 히스키트(Heathkit, 히스 컴퍼니가 판매하던 조립식 전자제품)라는 아마추어용 전자공학 키트를 접하면서 전자제품 작동원리를 깨달았다. “저는 히스키트를 조립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전자제품 내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 최고의 가치는 전자제품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겠죠. 집에 있는 전자제품들은 더 이상 제게 마법의 상자가 아니었습니다. TV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한번 만들어 볼까.’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잡스의 아버지는 토요일 아침이면 자동차 폐품처리장을 돌아다니며 폐기물을 분류했다. 그는 그곳에 아들 잡스를 데리고 가서 계산대에서 이루어지는 협상과 교섭과정을 지켜보게 했다. 잡스의 아버지는 캐비닛이나 울타리 같은 것을 만들 때에는 숨겨져 잘 안 보이는 뒤쪽도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일을 제대로 하는 걸 철칙으로 여기셨지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면서 말이에요.” 이 말은 후에 애플 PC를 설계할 때 본체 내부의 마감과 회로설계의 유려함에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자동차를 통해 잡스에게 처음으로 전자공학을 접하게 해주었다. “전자공학에 대해 심도 있게 이해했던 건 아니지만, 자동차를 비롯해 이것저것 고치다 보니 빈번하게 접하게 되었지요. 아버지는 내게 전자공학의 기초를 가르쳐 주셨고, 저는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그는 주말이면 홀티드 스페셜티즈(Halted Specialties)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이곳에서 그는 최신 반도체 칩에서 측정기까지 다양한 부품에 대한 가격과 시세를 알게 되었다.

잡스는 고등학교 2~3학년 동안 지적으로도 꽃을 피웠다. 전자공학에 광적으로 빠져있는 부분과, 문학과 창작에 몰두하는 부분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음악을 많이 듣기 시작했고 과학이나 기술 분야는 물론이고 그 밖의 책들도 더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셰익스피어와 플라톤 등을 읽었는데, 특히 <리어왕>이 좋았어요.”

잡스가 선택한 대학은 포틀랜드의 리드 대학교였다. 이곳은 작은 규모의 인문대학으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및 개성을 인정하는 자유로운 학교로 유명했다. 그는 대학교에 입학한 후 영성과 깨달음에 대한 다양한 책들에 깊이 심취하기 시작했다. 동양 종교, 특히 선불교에 대한 관심이 컸다. 생각이 자유롭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마음 깊이 담아 둔 의문점의 해답을 찾고 있었던 잡스에게 선불교의 매력은 대단했다. 선불교는 수행자가 스스로 종교에 입문하는 방식이었고, 다른 안내자가 필요치 않았다. 선(禪)은 직관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면서,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의 폐해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애플의 CEO 활동기에 그의 사고 방식은 단순한 미니멀리즘 미학과 강렬한 집중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데, 그것은 청년기 선에 심취한 영향 때문이었다.

어느 날 그는 캠퍼스를 거닐다가 화려한 서체로 가득한 포스터 한 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캘리그래피(calligraphy, 글씨나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 좁게는 ‘서예’를 이르고 넓게는 활자 이외의 모든 ‘서체’를 말한다) 강의를 알리는 포스터였다. 잡스는 즉시 그 강좌를 신청했는데, 이것은 나중에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을 만큼 중요한 결정이 되었다.

“캘리그래피로 뭔가 쓸모 있는 것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당시의 경험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캘리그래피 기술을 적극 활용했으니 매킨토시는 그 기술을 적용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셈이죠. 만약 그 때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이처럼 다양하고 독특한 서체를 개발해 내지 못했을 겁니다.”

만약 매킨토시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애플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플이 없으면 전 세계 소비자들이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구경할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캘리그래피 이야기를 통해 잡스가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는지 또한 업무적, 개인적인 삶에서 어떻게 혁신을 창조해 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잡스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랐다.

1974년 봄 베트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잡스는 리드 대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신문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비디오 게임업체 아타리(Atari)의 구인광고를 보고 별다른 기대 없이 회사를 찾아갔으나 즉시 채용되었다. 당시 그는 대학에서 중퇴한 열여덟 젊은이로 허름한 옷차림에 완전히 히피 행색이었다. 그래서 밤에만 근무하고 다른 직원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를 채용했다. 어느 날 인사부장을 찾아가 힌두교 스승을 만나러 인도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 때 아타리사는 독일에서 출시한 게임에서 문제가 있었고 잡스가 인도에 가는 길에 독일에 들러 문제를 해결하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스티브 잡스는 인도 순례 경험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인도에 갔을 때보다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훨씬 더 커다란 문화적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지력을 사용하지 않아요. 그 대신 직관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직관력은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보다 수준이 훨씬 높습니다. 제가 보기에 직관에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으며 지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일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부분의 청년 시기 동안 잡스는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데 열중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 멋진 무언가를 창출하는 것,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역사의 흐름과 인간 의식의 흐름 속에 되돌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대학 때 잡스가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었던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잡스는 그 결정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따로 떨어져 있던 경험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아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잡스가 신이 아닌 이상 자신의 미래를 선명하게 알 수 없다. 당시 행위와 실천이 그의 말대로 나중에 어떤 퍼즐의 조각이 될지도 몰랐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인생의 퍼즐’ 즉 다양한 경험의 조각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이 원하는 입체적인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청소년 및 청년시기 삶을 따라 가다보면 애플의 핵심 경쟁력인 ‘직관(intuition), 집중(focus), 단순(simplicity)’의 비밀과 근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전 세계 기업들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창의적 경제를 구축하려고 애쓰는 이 시대에, 스티브 잡스야 말로 독창성과 상상력, 지속 가능한 혁신의 궁극적 아이콘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21세기에 가치를 창출하는 최선의 방법은 기술과 창의성을 연결하는 것임을 알았다.

 

빌 게이츠, 도서관에서 세상을 배우다

어렸을 적 빌 게이츠(1955~)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책을 좋아했다. 특히 공상과학 소설에 집중했다. 게이츠는 부모님과 함께 자주 도서관을 찾았다. 어찌나 많은 책을 읽던지 읽은 책을 반납하지 않으면 도서관에서 책을 더 빌릴 수 없을 정도였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도 생겼다. 심지어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게이츠가 책읽기에 그처럼 열을 올렸던 가장 큰 이유는 왕성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단순히 몇 가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이런 호기심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뒤 ‘생각하는 주간’이라는 ‘씽크 위크(Think Week)’의 전통을 만들었다.

게이츠는 학교 공부 외에도 자신이 세상과 부딪히는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가 물건을 서로 주고받는 교환의 세계를 처음 경험한 것은 자신이 직접 땅콩을 팔아본 일을 통해서였다. 컵스카우트 단원이었을 때, 그가 속한 분대는 휴일이면 땅콩을 팔아 필요한 활동비를 마련했다. 게이츠는 이미 그 때부터 물건 하나를 팔기위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체험했다. 또 사람들의 구매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지, 제품에 맞는 적합한 시장을 찾는 것이 사업의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자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십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왕성한 게이츠의 호기심은 이제와는 다른 새로운 활동으로 이끌었다. 훗날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가 된 친구 폴 앨런과 고등학교 컴퓨터실에서 살다시피 지냈다. 게이츠와 앨런은 고등학교 시절 그들 인생 최초의 사업에 도전했다. 도로 교통상황 정보를 제공하는 트래프오데이터(Traf-O-Data)라는 장비를 만들고 그것을 팔기 위해 회사까지 차린 것이다. 게이츠는 수도 없이 예행연습을 거친 뒤, 시애틀 시청 공무원을 집으로 불러 제품 시연회를 가졌다. 그러나 그날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게이츠는 ‘모든 성공은 초기에 몇 차례 잘못된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게이츠와 앨런은 줄곧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곧 열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가 오면 컴퓨터에 사용할 소프트웨어가 필수품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게이츠는 개인용 컴퓨터를 제작하는 MITS사에 전화를 걸어 자신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팔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회사는 즉각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바야흐로 ‘마이크로소프트호’라는 거대한 배를 탄 게이츠와 앨런의 대망의 탐험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토마스 에디슨, 상상력이 발명의 원천이 되다

에디슨(1847~1931)의 집안은 늘 빈곤했다. 에디슨이 태어난 해부터 유년기를 보내는 동안 집안 형편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져 그의 형들이 신문이나 과일을 팔아 부모님을 도와야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주의력은 산만한 데다 툭하면 공상에 빠지기 일쑤이고, 수업 중에는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졸고, 숙제는 해오지 않으면서 노트에 낙서만 하는 에디슨을 저능아로 몰아 붙였다. 에디슨에 대한 이런 평가에 부모는 격분한 나머지 학교를 찾아가 격렬히 항의하고 퇴학 절차를 밟았다. 학교를 다닌 지 겨우 3개월 만에 에디슨은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로부터 글쓰기와 산수 같은 기초 지식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에디슨은 학습 능력이 매우 뛰어나 소학교 전 과정을 시작한지 채 1년도 못 되어 모두 끝마쳤다.

에디슨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으나 틀에 박힌 학교 교육과 청각 장애 때문에 학교 공부를 싫어하여 저능아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이것을 보상받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 그리고 청각 장애는 훗날 그의 활동과 직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가 많은 발명품을 만들게 된 동기가 되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자연과학자들>이라는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그 책은 산수를 싫어하는 에디슨을 위해 과학이라도 흥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 고른 책이었다. 에디슨은 그 책을 읽으면서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바꾸는 과학자들을 존경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발명가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특히 <자연·실험철학 개론>은 에디슨이 나중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모스 신호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다. 에디슨은 이 책에 적힌 내용대로 어머니가 마련해준 지하실에서 실험을 시작했다. 청년기에는 1급 통신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에디슨은 과학 기술에 관한 아이디어가 불쑥 떠오르면 꼼꼼하게 메모를 해놓았다. 이 습관은 평생 동안 계속 되어 순식간에 떠오르는 아이디어 때문에 메모는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청년기에는 처음으로 특허를 취득했다. 전신과 같은 원리를 이용하여 즉석에서 찬성과 반대의 표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전기투표기록기였다.

에디슨이 발명을 하는 과정은 일관되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귀찮거나 무익하다고 생각하는 실험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그 속에서 결론을 얻었다. 이 최초의 발명을 계기로 에디슨은 전신기사가 아닌 발명가로 살아갈 것을 결심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호기심으로 최고의 과학자가 되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저 남보다 조금 더 호기심이 강했을 뿐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일컬어지는 아인슈타인(1879~1955)은 말년에 자신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청소년기에 규율과 절대복종을 요구하며 암송과 주입식 교육을 하는 학교를 싫어했다. 블록으로 복잡한 빌딩을 쌓아 올리거나 판지로 14층짜리 건물을 만드는 등 혼자서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놀이를 좋아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에 진학한 후 과학, 철학의 선구자나 개척자들의 책을 열심히 공부했다. 중세의 물리학에서 시작하여 갈릴레이와 뉴턴의 물리학으로 차츰 그 분야를 넓혀 나갔다. 나아가 하인리히 헤르츠, 제임스 맥스웰, 앙리 푸앵카레 등 쟁쟁한 근대 학자들의 책을 섭렵하면서 대학의 강의는 무시하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공부를 해나갔다.

1900년 21세의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국립공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간절하게 염원하던 스위스 시민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취직할 곳이 없었다. 이후 친구의 소개로 베른의 특허국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출원된 발명특허 신청 서류를 살펴보고 애매한 점을 바로 잡아 보완하는 일을 했다.

아인슈타인은 조용히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원했다. 특허국은 그가 처음으로 얻은 안정된 환경이었다. 그는 베른에서 지냈던 5년 동안 20세기 물리학의 기초를 구축하는 세 개의 이론을 내놓았다. 1905년에 물리학사에 길이 남을 특수상대성 이론, 광양자 가설, 브라운 운동 이론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창조 경제 시대에는 더 많은 잡스가 필요하다.
역사를 살펴보면 혁신은 언제나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등장했다. 경영컨설팅 기업 부즈 앤 컴퍼니는 2009년에 발표한 한 보고서에서 그 사례를 들고 있다. “ TV, 복사기, 전기면도기, 라디오 등의 제품은 모두 대공황 시절에 개발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성공을 거둔 인물은 모두 커다란 위기를 겪으면서 과감한 도전을 통해 가치 창조의 기회를 만들어 냈다.

2010년 1월 24일 <뉴욕타임즈>의 명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의미 깊은 공개서한을 보냈다. 매번 ‘그런 제품이 팔리겠느냐’는 사회적 통념을 멋지게 후려치는 비즈니스계의 악동, 스티브 잡스를 더 많이 발굴해 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우리는 미래 사회를 위해 수백만 명의 아이들을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로 키워야 합니다. 단순히 머리만 똑똑한 천재가 아니라 혁신과 기업가 정신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나아가 프리드먼은 정부가 나서서 더 많은 잡스를 발굴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좁은 창고와 사무실에서 땀을 흘리며 애쓰는 젊은이들은 IT, 과학,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의 혁신을 이끌어 갈 새로운 주역이다. 프리드먼이 주장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스티브 잡스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당대의 최고 발명가이자 혁신가들의 삶을 관찰하고 배워야 한다. “용기를 내 영혼의 목소리를 따라라. 여러분은 이미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스티브 잡스)

강경태 한국CEO연구소장
한국적인 그리고 한국의 CEO 문화와 트렌드를 연구하는 한국CEO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영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CEO 커뮤니티인 다음카페 IamCEO의 대표시삽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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