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혁명을 위한 마음의 법칙(2) - 마음은 보는 만큼 보인다.

입력 2012-07-14 12:00 수정 2012-07-14 13:04








현상과 사물의 본질을 보고자 하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이 된다. 높이 나는 새가 되려다가 현실을 모르는 우스운 존재가 되고, 앞만 보고 쉬지 않고 달려가다가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무쏘가 되고, 나 홀로 차별화를 추구하다가 외로운 섬에 갇히기도 한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중심에 빠지면 성장이 멈춘다. 재테크 열풍이 거품을 키워서 더 가난하게 하고, 동영상이 허상에 빠지게 하며, 도구의 편리함이 육체를 병들게 한다. 철학 없는 정치, 유전자도 없는 짝퉁 문화, 인기영합 경제정책이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본질도 모르면서 말초적인 감각에 잡혀서 이익과 편리함을 추구하면 자기를 잃고 고통의 늪에 빠진다. 저마다의 통찰이 필요한 세상이다.





4. 마음의 양자역학 - 마음은 보는 만큼 보인다. (통찰)

물질문명은 발전했지만 마음의 세상은 아직도 어둠에 빠져서 모르는 것이 많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르고, 상대 마음은 더욱 모르고, 초 단위로 변동하는 주식의 종가(終價)도 모르고, 누가 승리자가 될지를 모른다. 5분 뒤도 모르면서도 잘난 체 하고 남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인간은 최초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지 그 진리도 모르면서도 미래와 행복을 논하고 우주를 이야기 한다. 본질을 모르는 상태의 주장과 언어는 다 농담이다. 미래를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한 물리학이 있다. 1975년 미국의 핵물리학자인 「프리초프 카프라」는 ‘물리학의 도(道)’라는 물리학과 철학을 접목시킨 책을 통하여, 최종 관찰을 하기 전에는 어떤 결과도 단정 짓지 못한다는 양자역학을 발표했다.



양자역학은 고양이 실험으로 설명한다.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고, 독약이 든 약병을 상자 꼭대기에 단다. 양자(전자) 운동에 의해 독약 병을 깨뜨려 고양이를 죽일 확률은 50 대 50이다. 관찰자가 관찰을 하기 전까지는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혼재된 상태의 허깨비로 존재한다. 관찰자의 관찰이 행해져야 비로소 살아있는 고양인지? 아니면 죽은 고양인지? 가 결정된다.> 극단적인 고양이 실험은 불확실 시대에 미리 예측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리학과 철학의 만남인 양자역학을 마음의 세계에 적용하면, 마음은 물질을 지닌 파동이기에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밝은 마음과 어두운 마음은 50 대 50으로 존재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마음 때문에 생긴다. 마음을 통찰하지 못하면 불필요하게 걱정하고 다투며 끌려간다. 내 마음을 알고 마음의 전체를 보는 통찰의 힘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통찰의 힘을 키우려면 인간의 근원부터 생각하자. 

우리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를 모르고 그냥 살아 온 대로 사는 경향이 있다. 양자역학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인간은 왜 자기 의지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할까? => 자기 유전자를 자기가 만들지 않고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고 마음먹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데, 자기 마음을 자기가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 자기 마음의 유전자를 자기가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내가 만들고 통제하지 못하면 마음마저 허깨비로 존재한다. 생생한 고양이도 독약이 든 병 속에 집어넣고 실험의 대상이 되면 삵과 죽음이 혼재하는 허깨비로 존재하듯, 삶의 주체가 아니고 통제의 대상이 되면 정체는 매몰된다. 유전자의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유전자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으려면 내 마음을 내가 창조하는 신인류가 되어야 한다.



전체를 보는 마음의 눈을 키우자.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 논리에 끌려가면 동굴에 갇힌다. 계곡에 빠지면 산이 보이지 않듯, 나에게 빠지면 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질에는 자아를 투사(透寫)할 수 없기에 자기 의지로 소유하고 주도할 수 없지만, 마음은 의지로 만들 수 있기에 내가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다. 모방적인 마음과 경험을 따라가는 미온적인 마음은 전체를 장악하지 못한다. 산 전체를 보려면 산 정상으로 가야하듯, 자기 강점을 살려서 흔쾌하게 살려면 마음에 유전자를 이식해야 한다. 자아 유전자를 심어서 나를 나답게 하고, 강한 마음의 유전자를 이식하여 고난을 뚫고 가고, 탈바꿈의 유전자를 배양하여 고통도 행복으로 바꾸어야 한다. 마음은 선택해서 길들이고 키우기 나름이다. 거동불능의 고통이 아니라면 고통은 패배의식의 잔상일 뿐이다. 현재의 고민과 고통은 껍데기 의식의 작품이다. 확실한 현재를 활동하고, 강한 마음으로 고통을 무시하고 실체로 존재해야 한다.



마음을 눈을 키우려면 걱정을 버려라.

영원한 걱정은 없다. 시간을 이기는 걱정도 없다. 스스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면 해를 보지 못한다. 스스로 근심과 걱정에 빠지면 작고 우울한 세상에 갇히게 된다. 빛을 쬐려면 그늘에서 양지로 나가야 하듯, 자유를 찾으려면 근심과 걱정의 장벽을 깨고 나가야 한다. 불행과 고통은 실체도 없으면서 마음에 붙어서 악착같이 괴롭히는 허깨비들이다. 걱정거리가 고통으로 연결되는 것은 3%도 안 된다고 한다. 지금 고통을 느낀다면 그 이유를 백지에 적어보자. <지나간 서러움과 아픈 추억, 상사와의 갈등과 직장 불안, 실수로 손해 본 일, 사고로 인한 몸의 부자유, 물질의 궁핍, 남에게 입은 상처 등> 고통의 이유는 수 만 가지가 넘을 것이다. 고통을 이유로 나열한 대다수의 일들은 스스로 마음이 만든 불행이거나 생활의 불편 요소일 뿐이다.



통찰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힘이다.

현상과 사물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부족하면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문제로 고민하며 자기 에너지를 자기가 착취한다. 통찰은 삶과 죽음이 하나이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 탈바꿈 과정임을 알게 한다. 통찰하지 못하면 서로 연결된 세상을 모르고 자기중심으로 행동하고, 소유와 권리로 행복을 찾다가 사람을 잃는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통찰이 생기면 허상 속의 환상, 꿈속의 꿈에 빠지지 않는다. 통찰의 눈을 키우려면, ‘삶은 고통이다. 세상에 그냥 생기는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주도하지 않으면 당한다.’는 것을 깨닫고 지속적인 정신수련, 자기대화를 통한 마음의 원칙 정하기, 아닌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의지, 해야 할 것을 해버리는 마음과 행동의 내공 쌓기, 걱정과 고민을 버릴 수 있는 내면의 수양을 해야 한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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