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행복의 공존지대를 찾자.

입력 2012-05-11 05:52 수정 2012-05-11 19:39


자기 조화(調和) - 평화와 행복의 공존지대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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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잘못을 용서할 수 없다면 우정은 결코 깊어질 수 없다. - 파스칼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는 자아에게!



마음의 여백이 부족하여 자주 부딪히는 괴로운 자아여! 부딪혀 괴로운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하려고 하면 얻는 것은 걱정이며 잃는 것은 평화와 행복이다. 하늘이 천하를 품는 것은 울타리를 치지 않고 크게 비워두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몸은 시공(時空)에 묶이더라도 마음은 천하를 품는 배짱을 갖자. 한 발 내딛으면 한 발의 길이만큼 나가고, 한발 물러서면 두 걸음이 후퇴하는 법. 갈 길이 멀다고 서두르지 말고 짐이 무겁다고 주저앉지 말자. 웃으면서 파괴하는 악마가 침투하기 전에 잠자는 나의 황제를 깨워 평화롭고 행복한 제국을 세우자.



따뜻한 가슴과 조화력이 부족하여 다툼이 잦은 자아여! 다툼이 잦은 것은 내가 문제를 만들고 문제를 풀지 않기 때문이다. 꽃들이 아름다운 것은 씨앗을 품고 밀어준 땅의 배려와 빛과 비를 내려준 하늘의 보살핌 때문이 아닌가? 세상에는 서로 다른 짝이 있는 법. 꽉 찬 땅이 있으면 텅 빈 하늘이 있고, 스스로 빛나는 태양이 있으면 빛을 받는 지구도 있다. 평화는 자기 의지로 고요함을 추구하지만 행복은 끝없이 받으려고만 한다. 채우려고 하면 비워지고 비우려고 하면 채워지는 법.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고 원망하지 말고 얄궂은 운명이라도 한숨 쉬지 말자. 고난과 역경도 즐기는 초인이 되어 피할 수 없으면 웃으면서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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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가 똥 덩어리에 앉아서 즐거운 식사를 했지. 똥파리가 다리를 비비고 꼬면서 매뉴얼대로 식사를 하는데, 똥이 피식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똥파리 너, 매번 식사비도 안 내고 무전도식(無錢盜食)하는데 너무 경우 없는 짓이다. 이제부터 똥 무더기별로 식사비를 내라.” 이에 똥파리가 굳은 얼굴로 화를 냈어. “배은망덕한 똥 놈아, 악취 나는 네 똥을 분해해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도와주는 나에게 식사비를 내라니. 무슨 계산법이 그러냐? 너의 똥 세계는 장례식을 치러주는 장례사가 장례비를 내느냐? 아무리 버려진 똥이지만 너무도 천박하다.” 똥파리가 똥과 다투는 장면을 지켜보던 나비가 짧게 말했지. “똥과 똥파리는 공동운명체다. 똥과 싸우지 마라. 똥과 싸우면 너도 똥이 된다.” - 저마다 자기 기준대로 생각하면 더불어 사는 조화를 잃는다는 우화다.



우리는 왜 쉽게 평정심을 잃는가?



인간은 본래 불안하고 세상은 갈수록 불확실하다. 서로 얽힌 경제망은 이해관계로 다투고, 3초 이내에 서로를 볼 수 있는 통신망은 서로를 비교하고 문화적 간섭을 한다. 온 세상이 역동적이지만 안으로 뜯어보면 자기만 살겠다는 발버둥이다. 조직을 지키려는 보호막과 성(城)이 높아질수록 제도권에서 밀려난 자의 좌절과 분노도 증가한다. 기득권은 하늘에도 울타리를 칠 기세고 반대편은 지금 밟고 있는 땅마저 전면 부정한다. 인간의 공격 본성이 살아나고 있다. 존재의 적(敵)을 찾는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 학교 폭력은 조기에 좌절을 느낀 소수 아이들의 저항과 분노에 다수가 혼란을 겪는 양상이다. 종교, 정치, 문화, 경쟁 업체 간 적을 찾는 게임은 이제 전쟁 이상의 수준이다. 정체성과 조직 경계의 울타리가 견고해질수록 그 경계선을 넘어 파괴하려는 반작용도 거세질 것이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평정심을 잃고 있다.



자기 기준대로 살면 대인관계에 부딪힘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나는 ‘나’라는 마음속의 울타리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찾고 지켜야 하지만, 외부 행동마저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기중심으로 살면 서로는 서로에게 꽃이 아니라 가시가 된다. 현대인은 이러 저러한 일로 평정심을 잃고 다툰다. 무심한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또 상대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 살다보면 자기기준과 자기기대와 반대로 가는 일이 많다. 이것을 하려고 하면 저것이 부족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하면 꼭 마(魔)가 따른다. 현재라는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가는데, 이미 나에게 와버린 고통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 평화는 사라지고 고통만 가중된다.



마음의 평정심을 잃는 것은 마음속에서 야수(野獸)들이 날뛰고 있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하는 여우는 불안을 만들고, 알량한 자존심의 늑대는 싸움을 일삼고, 자기만 생각하고 저돌적인 멧돼지는 편을 갈라서 파괴를 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좀비는 평화와 평온을 깨고, 아집과 집착의 곰들은 하나를 얻고자 둘을 잃게 하며, 노력하지 않고 행운을 얻으려는 하이에나는 자기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불운을 탓한다. 마음의 야수들은 자기중심의 만행으로 마음의 평화를 짓밟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다가 조화를 잃고, 고통과 고난의 장벽이 생기면 주저앉게 한다. 마음의 야수들을 다스리려면 서로 맞추면서 살려는 조화와 하기 싫은 일도 하려는 적극성이필요하다.



평정심을 잃고 불행에 빠지는 것은 해야 할 일을 주저하고 미루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이라면 바로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면 멈추는 것이 신상에 편하다. 일을 이루고 보람을 얻으려면 불평과 불만의 공간을 반납하고, 만족과 감사의 공간에 행복과 평화를 채워야 한다.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하고, 일어서려면 바닥을 밀어야 한다. 내면의 속삭임을 듣고 행동해야 실수가 적고, 지혜와 덕성이 만나야 유익하고 온유하며, 일과 휴식이 만나야 지구력을 발휘한다. 고통을 의식하는 내가 다 감당하려고 하지 마라. 또 다른 영적인 ‘나’를 통해 나를 알아주고 위로하여 고통을 분담하자.

평정심을 찾는 마음의 기술 - 즐김, 버림, 수용, 축하



인간은 몸, 마음, 영혼으로 결합된 삼국지다. 하나라도 부실하면 온전하지 못하다. 서로는 엇물려서 동시에 연동한다. 몸은 마음과 영혼의 근거지이면서 몸은 마음과 영혼으로 움직이며, 마음은 몸에 주거하면서 영혼을 보좌하고, 영혼은 몸 주변에서 머물면서 몸과 마음에 생기와 향기를 준다. 몸, 마음, 영혼의 3각 체제가 안정을 추구하려면 명예는 영혼에게, 공은 몸에게, 책임은 마음에게 짐을 지워야 한다. 인간 생체 시스템을 제대로 읽기 전에는 어려운 이야기 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몸과 영혼의 접점에서 활동하는 마음이다. 평정심을 찾는 4가지 기술을 살펴보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은 미국의 심장 전문 의사 로버트 엘리엇(Robert S. Eliet)의 저서 <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 -마음의 짐을 덜고 건강한 삶을 사는 법>에서 나온 명언으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삶의 고통을 줄이고, 적극적으로 살라는 인생 처방전이다. 유한자인 인간에게 흐르는 시간, 선택할 수 없는 대상과의 만남, 이미 벌어진 고통, 기대와 반대로 가는 사건들, 밥벌이를 위한 고통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을 피하려고 하면 더 괴롭고, 비겁해지고, 추해진다. 살면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만나면 피하지 말고 미련 없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누가 부당한 시비를 걸면 상대 우위의 자신감으로 용서하고, 어두운 일들이 생기면 발전을 위한 시련으로 받아들이자. 어떤 고통도 다 지나간다. 시간을 이기는 고통은 없다. 의지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기꺼이 즐기자.



버릴 것은 버려라. 우리가 하루에 사용하는 언어의 80%가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대상을 놓고 불평한다고 한다. <누가 어떻고, 00 리스트에 누구누구가 있고, 이 제도는 부자를 위한 것이라며∙∙∙∙∙. 저 사람은 왜 저런데∙∙∙∙. 등> 무의미하고, 내가 조치할 수 없는 일을 놓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우리가 무의미한 불평을 하는 것은 자기는 항상 옳다는 착각과 피해의식 때문이다. 불평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조각가는 자기가 구상한 형상만 남기고 버릴 것은 버리듯, 행복하려면 평화를 만드는 고요함, 행복을 만드는 꿈과 행동만 남기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품을 것은 품자. 인생은 선과 악, 기대와 실망, 불행과 행복을 엮어서 만드는 모자이크다. 서로 살려면 포용하고 감싸는 기술이 필요하다. 포용은 해코지도 용서하는 정신의 여백이며 불완전한 인간을 서로 감싸는 큰 보자기다.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이해하여 내 마음에 맞지 않아도 보듬어 주고, 내게 벅찬 것을 놓아주어 내가 설 넉넉한 공간을 찾자. 불현듯 아리고 서러웠던 지난날들이 생각나더라도 과거를 현재의 성숙한 관점으로 자학하지 말고, 불확실한 미래가 가슴을 압박하더라도 담대하게 잘 될 것이라고 믿자. 상대의 눈으로 나를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마음 공간을 크게 넓혀서 행복의 친구들(건강, 자랑, 보람, 쾌감 , 즐거움)을 초대하고, 다툼의 좀비들과 만나야 할 상황이라면 더 나가지 않고 멈추자.



축하할 것은 축하하자.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말은 농경문화의 폐쇄적 생각이 만든 패패의 언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고, 앞서 나가는 사람이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은 도토리 키를 재는 작은 공간으로 추락한다. 서로 엇물린 세상에서 앞선 자의 덕을 보고 있으면서도 무조건 비판하고 불평하는 것은 퇴보다. 때로는 성공한 자들의 잔치판에서 박수를 치고, 성공한 이들의 방법을 배울 필요는 있다.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동료가 먼저 앞서가면 축복하고, 그의 장점을 배우려고 한다. 남과 비교해서 내가 우월할 때만 행복을 느낀다면 항상 불행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은 재주꾼과 인재가 넘치는데 좁은 마음으로 시기하면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상을 마음 편하게 살려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축하하고 다가가서 배워야 한다.



평화와 행복의 조화를 찾는 길



평화와 행복의 관계는 평지와 야산의 관계처럼 서로 엇물려 있지만 성격이 다르다. 평화가 고요함이라면 행복은 역동적이며, 평화는 자기 만족감으로 찾는 내면의 안정이라면, 행복은 비교 우위에서 오는 우월감이다. 평화는 버려서 얻는 자족감이라면, 행복은 채워서 얻는 풍만감이다. 평화만 찾으면 행복의 빛이 죽고, 행복만 얻고자 하면 평화는 없다. 열린 세상에서 우월감을 유지하기란 삶은 씨앗이 싹이 트는 것을 기다리는 꼴이며, 서로 잘 난 세상에서 나만의 울타리를 지키기란 뿌리를 자르고 열매를 기다리는 격이며, 복잡한 세상에서 평화와 행복을 동시에 챙기려면 현재의 즐거움, 구분하지 않는 마음, 운명적 수용, 조화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현재의 즐거움을 찾자. 마음의 평화와 행복은 의식이 감지하고 누리는 현재에 있다. 흘러가는 현재는 멈추지 않고 저축할 수도 없다. 인생은 현재의 연속이다. 과거는 현재의 뿌리지만 현재에 합류할 수 없고, 미래는 현재의 결과지만 미리 단정할 수 없다. 현실이 어렵고 괴롭다고 평화를 깨는 것은 솥이 작다고 솥을 깨는 짓이며, 현실이 불행하다고 불평하는 것은 밥이 설익었다고 물을 붓고 다시 끓이다가 밥을 태우는 격이다. 불편한 현재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은 평화롭고 이미 온 행복이 도망가지 않고,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면 평화와 행복은 하나로 존재한다.



나를 기준으로 구분하지 마라.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것은 저래서 좋다' 더불어 사는 공간인 세상은 갈등도 많고 갈등을 피할 수도 없다. 나의 생각이 안 바뀌는 것처럼 상대의 생각도 굳어 있다. 나의 잣대로 상대를 대하면 갈등이 생겨 일 자체가 고통스럽고 삶의 리듬을 잃는다. 갈등을 줄이고 일을 즐겁게 하려면, 마음의 눈을 뜨는 개안(開眼) 수술로 세상을 밝게 보고, 상대를 동반자로 인식하여 상대에게 맞추어 주고, 상대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면서 '저 친구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아서 좋다'라고 수용해야 한다. 자기를 긍정하고 사랑하며 괴로운 일도 즐거운 놀이로 생각하면 서서히 몸과 마음이 평화와 행복 쪽으로 동시에 이동한다.



어쩔 수 없다면 운명으로 받아들이자. 인생은 향기로운 꽃길 10 리를 보기 위해 가시밭길 천리를 걸어가는 과정이다. 현재의 나의 일이 돌아갈 수 없는 다리라면 운명으로 생각하고 즐기자. 인생은 아름다운 고행이다. 방이 추우면 춥다고 불평하지 않고 아궁이에 불부터 지피고, 아파도 해야 할 일들, 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일, 어쩔 수 없는 고통이라면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받아들여도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기꺼이 맞이하자. 거기에 평화와 행복이 있다.



자기긍정과 배짱을 갖자. 우리가 쉽게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은 행복에 대한 기대감마저 쉽게 버리기 때문이다. 인생은 고통과 탈로 이어가는 릴레이 게임이다. 고난은 행복의 예고편이며, 불행을 장애물이 아니라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자기긍정과 배짱이 필요하다. 고난은 이유 없이 오지도 않고, 고난을 이긴 만큼 강해진다. 고난과 장애물 없이 오는 행복은 없다. 고난에 스스로 막혀 낙담하거나 방황하지 마라. 고난의 암벽에 희망의 자일을 걸고 즐겁게 오르자. 3 년의 기쁨을 위해 3초를 참고, 아직도 마음속에서 날뛰는 패배의식의 야수들을 크고 장대한 거인의 마음으로 물리치자.



서로 사는 조화를 선택하자. 숲에는 나무와 새, 돌과 잡초, 모기와 파리, 지네와 독사가 더불어 사는 이유는 서로가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걱정과 장애, 고난과 걸림돌은 마음이 넘치는 것을 막아준다. 잡초를 죽이겠다고 제초제를 사용하면 곡물도 약해지듯, 싫다고 멀리하면 순수함도 죽는다. 세상이 썩었다고 분노의 물결이 타오르면 순수함도 함께 오염이 된다. 근친교배로 대를 있는 생명체는 갈수록 약해지다가 종족이 사라지듯, 같은 생각을 지닌 무리들은 진보가 없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이것과 저것을 섞어서 조화를 이루는 인간이 평화롭게 진보한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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