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예언( 2018년) - 천지개벽 - 새로운 용트림

입력 2011-11-29 13:10 수정 2011-11-29 13:18


나비 2018년. - 천지개벽 - 새로운 용트림







태양을 떠난 햇살은 자기 공간을 찾아서 직진했고, 직진을 방해하는 공간에는 그림자를 풀었다. 햇살은 자신의 영역 확보를 위해 허공, 지상, 물속까지 파고들었고, 보이지 않는 바람과도 긴밀한 협조를 했다.



비릿한 밤꽃 냄새가 바람타고 퍼져나가 암수의 기운들을 불뚝거리게 하던 날이었다. 청백나비가 내림받은 하루의 운세 또한 용암물이 끓듯 했다.

<새로운 시작. 음양의 조화 세상이 도래했으나 양기운의 마지막 난동, 싸움은 싸움으로 이어지고, 혼란에 혼란이 겹치고, 악은 악으로 뭉친다. 구원을 찾는 자들의 세계 영혼포럼이 서울서 열리고, 평창의 겨울 축제는 세계인에게 꿈과 감동을 준다. 서해 바다 퇴적물 융기하고, 동해는 석유와 액체가스를 선물한다. 신을 찾는 자 바다의 모래알보다 많지만, 영혼의 빛이 없는 자는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새로운 판에 형체 없이 녹고, 맑은 영혼들이 새로운 판을 접수한다. 기호화된 돈과 주민번호가 사라지고, 서로를 살리려는 영혼들이 세상을 이끈다.>



청백나비가 지도자가 되었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운세에 기대를 걸고, 새로운 나비 세상을 위해 행복을 이야기하고, 만나는 나비들에게 행복에 겨운 겹눈 짓을 보냈지만, 지겹고 추한 싸움은 그칠 줄 몰랐다. 참나무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청백 나비는 낮게 날면서 지상을 살폈다. 나비와 일벌은 꽃을 찾았고, 작은 곤충들은 날고, 기고, 먹고, 먹히면서 살았고 말벌은 곤충들을 사냥했다. 아름다운 지상(地上)에 강자의 포식과 약자의 배고픔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청백의 맑은 기운도 통하지 않았고, 싸움 기운을 이기지 못했다. 나비들에게 행복의 기운을 전도할 언어가 없었다. 청백나비는 ‘변화’라는 화두를 잡고 일이 막힐 때마다 취하던 습관대로 명상에 빠졌다.



‘왜 생명체는 깨우침 하나로 변하지 않는 걸까? 길들여진 습관이 무거워서일까? 쉽게 변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설계가 되었기 때문인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잡고 있기 때문인가? 변해야 산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존 관계를 정리할 수 없는 의리 때문인가? 아니면, 생명체가 변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일인가?’



청백나비는 명상을 끝냈지만, 날개 짓 하나도 힘들어 하자, 금빛 나비가 찾아가 위로했다.

“청, 한번 기억된 잔상들은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변화를 시키려면 조건 없이, 진정으로 위하는 열정이 필요하다. 지도자는 멀리 전체를 보는 눈으로 어둠도 밝게 해석하고, 웬만한 일에는 상처입지 않는 강한 영혼을 가져야 한다. 꽃을 찾기에 급급했던 나비들이 영혼의 나비로 탈바꿈하려면 지도자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나비 세상을 바꾸려면 지도자에게 강단(剛斷)과 사랑의 기운이 넘쳐야 한다.”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일은 뭔가요?”

“지도자라는 계급의식을 버려라. 지도자는 계급이 아니라 역할이며, 군림이 아니라 희생과 봉사하는 존재다. 지도자가 희생적 중심을 지켜야 나비가 산다. 곧 나비끼리의 싸움, 나비와 말벌의 싸움, 나비와 흰불나방의 싸움 등 세상 탈바꿈을 위해 많은 싸움을 보게 된다. 단단히 각오해라.”

“스승님, 싸움 기운을 미리 제거할 수는 없나요?”

“지금의 싸움은 신들의 대리전쟁이다. 불을 불로 끌 수 없듯, 신들의 싸움을 나비가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나비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기운으로 싸움을 줄이는 것이다. 한 나비가 사랑의 에너지를 보내면 누군가는 그 에너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로 전파가 된다. 꿀에 빠진 나비들이 사랑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네가 직접 나서야 한다.”

“네.”



정두 나비가 노랑나비의 대표자가 되었다. 정두 나비는 말벌에 대한 나쁜 기억 때문에 불안하게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꽃이 꽃으로 보이지 않았고 말벌만 눈에 잡혔다. 그것도 말벌이 노란 날개에 붉은 줄이 있는 나비를 발로 누르고 집게 턱으로 분해하는 것을 보았다. 바르르 떨면서 죽어가는 나비를 더 이상 으로 볼 수 없어 겹눈을 감았다. 몸통은 마비되고 생각은 뛰었다. 정두 나비는 삐딱한 페르몬 언어를 발사했다. 경사진 언어였지만 강하게 멀리 퍼져나갔다.






“ 말벌이 나비를 먹고 있다. 횡포에 침묵하면 함께 죽는다. 나비들의 단결된 힘, 생존의 절박함, 모순에 대한 분노로 말벌을 쫓아내고 나비세상을 지키자.”



호랑나비가 정두 나비의 선동 언어를 해독하고 반박했다.
“말벌은 나비 애벌레를 먹는 기생벌을 죽이는 고마운 존재다. 말벌이 없다면 많은 나비들이 태어나지 못했다. 말벌은 참나무 숲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이지 않았다. 말벌과 싸우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짓이다.”



“말벌이 참나무 숲에 있는 것은 나비를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탐욕스런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고, 지금 말벌은 나비들을 분해하고 있다. 나비들이 죽어 가는데 무슨 과거 은혜냐?”

“나비가 말벌과 싸우는 것은 큰 불행이다. 나비들은 말벌의 보호 속에서 생존했고, 앞으로도 새들의 테러까지 막아 줄 것이다. 굳이 싸우겠다면 흰불나방과 싸워라. 흰불나방이 사라지면 말벌이 참나무 숲에 사는 명분을 잃을 테니까.”

“호랑나비야, 말벌은 적이고, 흰불나방은 나비들의 형제다. 너의 낡은 생각은 나비들의 발전을 막는 테러다. 당신은 나비를 위해서 사라져야 할 존재다.”
“노랑아, 당신이야말로 진보를 빙자하여 평화를 깨는 악마다.”



호랑나비의 진노 소리에 정두 나비는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했다. 나비끼리의 싸움은 반복되었고 나비 날개의 인분 가루가 떨어질 정도로 과격했다. 정두 나비는 기어코 말벌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정두 나비는 말벌과의 2차 싸움을 선동하는 페르몬 언어를 발사했다.

“나비들아, 이제 말벌과 싸울 기회가 왔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나비들은 말벌의 지배를 받는다. 날개 달린 나비라면 모두 동참하여 말벌을 몰아내자. 나비의 정의로운 분노는 승리한다. 함께 나서서 승리를 확인하자.”



정두 나비의 페르몬 언어를 해독한 청백나비가 날아왔다.
“정두나비, 난, 날개를 펴기도 전에 말벌에게 날개를 짓밟혀 봄 시절을 날지 못하고 땅을 기면서 살았던 나비다. 말벌을 악마처럼 무서워하면서도 증오했고 몇 번이고 싸우려고 했다. 나도 영혼의 겹눈을 뜨지 못했다면 지금도 말벌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말벌은 나를 강하게 했고, 영혼의 눈을 갖게 해주었다. 싸움으로 나비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없다. 이제 사랑으로 가야한다.”

“지도자, 정의로운 싸움을 방해하지 말고 침묵해라.”

“정두나비야, 싸움으로 해결될 일이라면, 빠른 비행술까지 개발한 내가 했을 거야. 이제 싸우면 모두 죽는다. 전자파가 나비들의 비행까지 혼란을 줄 것이다. 싸우면 안 돼!”

“지도자, 싸움은 정해진 순리다. 말벌의 오만을 우리가 응징한다.”



청백 나비는 더 말리지 못했다. 정두 나비를 따르는 노랑나비, 흰불나방까지 합세했고 그들은 이미 분노의 사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정두 나비는 불로 말벌 집을 태워버리는 화공火攻전을 구상하고 말벌 집 주변을 살폈다. 벌집 주변에는 지푸라기와 낙엽 등 화공 재료가 널려 있어 불씨만 옮기면 말벌 집을 태우는 것은 간단하게 보였다. 계곡 아래 쓰레기장에서 보았던 불씨를 기억해냈다. 지푸라기에 불을 붙여 빠른 비행으로 날아가, 말벌 집에 불씨를 옮기려 했지만, 매번 불씨는 바람에 꺼졌다. 곱지 않은 마음을 바람도 아는 듯 나비가 불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급해진 정두 나비는 햇살이 날개에 닿으면 열로 전환되는 현상을 기억해 내고 빛을 열로 바꾸어 공격하는 ‘빛을 이용한 열 발산 전투 방법’을 구상했다. 생각은 좋았으나 방법 찾기는 어렵고 먼 길이었다. 만질 수도 먹을 수도 없는 빛을 쪼이며 생각을 쪼개고 모았다. 참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해를 바라보자, 앞다리로 전해오는 뜨거운 전율을 느꼈다. 앞다리를 들어 해와 일직선을 만들자, 파동 치는 빛의 입자가 쏠리듯 몰려와 앞다리의 해면 조직사이로 저장되었다. 앞다리에 빛이 저장되자, 겹눈은 화끈거렸고 짜릿한 전기가 흘렀다. 시간을 지체하면 몸이 분해될 것 같았다. 정두나비는 앞다리를 고정하고 말벌의 집으로 날아갔다. 앞다리를 말벌 집을 향하여 흔들자, 저장된 빛들이 벌집으로 직진했고, 벌집에 빛이 부딪히자 열로 바뀌었다.



말벌 집이 불탔다. 불꽃은 처음에는 나비의 겹눈보다 작더니, 바람한번 불고 나자 겹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바람한번 더 불자 산 전체가 불로 보였다. 말벌 집에 불이 붙었지만 말벌들은 희생당하지 않았다. 말벌 집에 불이 붙기 전에 남쪽 평지로 도망을 쳤기 때문이다. 벌집을 태운 불씨는 참나무 숲으로 옮겨 붙어 산불이 되었다. 참나무 숲이 불타버렸고 불에 탄 꽃들은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렸다. 다행히 비가 내려 숲의 절반만 타버렸지만, 맑았던 청계천에 검은 물이 흐르고, 나비도 말벌도 살기 어려운 불모지로 변했다. 말벌과의 싸움에서 실패한 정두 나비는 자기 대신 희생해줄 대상을 찾았다. 희생의 대상은 지도자 나비였다. 정두 나비는 조잡한 언어로 공격을 했다.

“나비들아, 말벌과의 싸움이 실패로 끝난 것은 지도자 청백나비가 말벌과 내통했기 때문이다. 나비들의 진보를 방해하는 지도자 나비를 죽이자.”



정두 나비의 선동에 성난 나비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말벌과 내통한 청백 나비를 죽여라.> 라고 앙칼진 쇠 소리를 내면서 청백 나비를 덮쳤고, 발로 짓눌렀다. 나비는 조각조각 분해되었다. 성난 나비들이 숲으로 돌아간 뒤에 실제로 분해된 것은 청백나비가 아니라 금빛 나비였다. 금빛 나비가 청백나비를 대신하여 죽어준 것이다. 청백 나비는 날개 하나 다치지 않고 건재했다. 청백의 생각은 비장했고 복잡하게 엉켰다.

‘나의 스승, 금빛 나비가 대신 죽었다. 이것이 금빛 나비가 말한 희생인가? 사랑인가?’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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