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의 자아를 위하여!

입력 2011-11-04 08:47 수정 2011-11-04 08:47





사는 게 힘이 들어도 썩지 않는 소금으로 살려는 자아여!
정의의 심장이 멈춘 사회는 죽은 사회가 아니겠는가?
아닌 곳을 기웃거리지 말고, 옳지 않은 일로 양심을 아프게 하지 마라.
정의는 함께 살기 위한 합의된 상식, 나는 신호등의 질서를 따르는 보행자.
힘은 들어도 양심 속에 빛나는 정의의 길을 따라 걷는 게 어떻겠소.

정의의 사도(師徒)를 꿈꾸는 자아여,
정의는 반드시 이기며, 일과 행복은 정의와 함께 성장하는 게 아니냐?
나의 육안에 내가 속지 말고, 내면이 부끄러운 불의를 참지 마라.
정의는 함께 즐겁기 위한 서로의 양보, 나는 오른 만큼 오르는 등반가.
생체 시스템 속에 저장된 정의의 나침반을 따라 안전하게 오르는 게 어떻소.

세상 정의의 일부로 행동하고 싶은 자아여,
인간이 도구가 아니라 목적으로 대접받을 때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겠느냐?
안일한 불의의 길을 걷지 말고, 험난한 정의의 길에 희생의 뼈를 묻지도 마라.
정의는 진보를 위한 규약, 우리는 요동치는 파도를 헤쳐 나가는 항해사.
항해 지도와 항법 장치가 안내하는 대로 큰 세상을 항해하는 게 어떻소.
............



정의(正義)는 바르고 의로운 행동이다. 정의는 노력 이상을 바라지 않는 정신, 자기 일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분수,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행동이다. 사회의 정의는 욕심을 제어하는 안전장치, 그의 것을 그에게 주는 사회시스템, 사회가 썩는 것을 예방하는 소금이며, 눈앞의 이익보다 대의를 생각하는 자세, 서로 살려는 정신과 행동의 규약이다. 정의가 없는 곳에는 어떤 행복도, 어떤 풍요도 오래가지 못한다. 서로 아귀다툼만 있을 뿐이다. 개인의 행복은 스스로 바르고 정의로운 양심에서 피는 꽃이며, 가정의 행복은 구성원이 모두 건강하고 서로 아끼는 애틋한 마음에 열리는 과실이다.



정의(正義)의 정의(定意)는 간결하지만 그동안 세상은 힘이 지배했고, 다수의 생각, 다수의 정서, 힘의 우위를 점령한 세력이 정의로 둔갑했다. 승자가 정의까지 독식했다. 옳고 그름을 판정하고 정의를 세우는 언론, 학계, 입법과 사법 기관이 기득권의 칼을 잡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 정의를 세우면서 본질은 묻혔고, 참과 거짓의 식별이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제 다툼과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정의에 관심을 갖고, 정의가 살아 있는 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



요즈음 자본주의 4.0, 정의(正義)와 공정(公正)한 사회가 화두다. 그동안 어둡고 불공정한 면이 많다는 반성의 목소리이면서, 사회에 정의가 없으면 서로가 행복할 수 없다는 각성 때문이다. 진흙을 만진 손으로 반찬을 만들면 제대로 맛을 내는 반찬이 될 수 없다. 이제 약자의 손해를 경쟁에 뒤진 자연현상이 아니라 분배의 모순과 정의의 문제로 재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정의는 잘 지켜지는 않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도 약육강식의 원리를 바뀌지 않는다. 개인이 정의를 실천하려면 절제와 자기관리, 희생과 고행이 따라야 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려면 윗물이 맑고, 엄격하고 일관성 있는 룰과 함께 가는 동반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행복은 행운과 요령이 아니라 정의에 기초해야 한다. 행운은 행운일 뿐이며 요령은 일시적이다. 개인의 행복은 가치관과 인식의 문제이기에 양심과 정의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세상은 서로 엇물려 있고 더불어 사는 공간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는 정의가 없다면 서로 불행하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서로 행복하려면 정의가 살아 있어야 한다. 정의는 서로의 행복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정의의 룰을 지키자. 행복은 자기만족을 위한 1인 게임이면서, 상대와 교감해야 느끼는 게임이다. 홀로 무인도에 산다면, 홀로 생존하더라도 홀로 행복할 수 없다. 개인 병실에서 홀로 치료 받는 환자보다 단체 병실에서 환자끼리 대화하고 격려할 때 완치가 빠르다고 한다. 인간은 병이 들어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증거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혼자 만들 수는 있지만, 혼자 멋지게 누리지 못한다. 억만금을 쥐고도 외로우면 불행한 것이다.



행복의 게임에는 정확한 룰이 필요하다. 사회가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고, 경쟁하되 반칙을 하면 페널티를 부여하고, 서로가 존중하여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아야 한다. 한 마디로 행복의 게임에는 정확한 룰로 진행되는 정의가 있어야 한다. 행목게임에 정의가 있을 때 자기 능력만큼의 행복 사다리를 오르며, 서로가 보호되고 시간이 갈수록 모두가 행복하게 한다. 정의가 있는 행복, 서로 공생하는 행복 세상이 되려면, 개인은 바르고 정의로운 양심으로 서로의 행복을 존중하고 서로 아껴야 하며, 조직은 정의의 바탕 위에서 룰대로 흘러가야 다수가 행복하며, 사회는 약자의 아픔을 사회의 모순으로 인식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불의(不義)를 용납하지 말자. 옳지 않은 방법으로 힘을 키우고,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득세하면 장미 공원도 쓰레기장으로 변한다. 서로 살기 위해서 불의를 감지하는 안테나를 세우고, 불의는 반드시 부메랑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인은 의롭지 못한 일들을 참회하고 멈추고, 소수의 탐욕 때문에 다수가 행복을 잃는 나쁜 구조는 정의의 이름으로 개선해야 한다. 작은 불의가 쌓여서 모순의 강풍이 불기 전에 정의의 맥박을 살리자.



- 감사합니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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