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예언( 2014년)- 진정한 가치(존재 이유)

입력 2011-10-19 08:29 수정 2014-07-30 01:48









반달이 유난히 빛나고, 말 형상의 구름이 달을 배경으로 마구 뛰는 새벽을 지나,
햇살이 말 구름을 뚫고 빠져 나와, 참나무 숲에 은빛을 뿌렸다. 아니다.
햇살은 개선장군처럼 지상을 점령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아침이었다.

아침을 맞은 참나무 숲은 생기와 기운으로 넘쳤고 청백 나비가 뽑은 운세는 맑고 고왔다.
<나비와 꽃이 갈등하는 운세. 시공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음양이 흐트러지고, 행복을 내세우지만 생존이 절박하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 자는 살고, 밖에서 물질을 찾는 자는 허깨비로 산다. 잔인한 달에 어린 꽃들이 지고 나비는 꿈의 날개가 꺾인다. 삼바 축제에 붉은 악마 16을 넘지 못해 4에서 멈추고, 흰개미가 흰나비를 찾아오고, 일벌과 흰불나방이 어색한 짝을 짓고, 말벌은 참나무 숲의 급격한 변화를 응시한다.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네모난 집이 자기 가치를 다시 찾기 시작하고, 선이 없는 태양 전기가 세상을 밝히고 무인 비행기가 배달을 한다. 10년 전에 심어진 병마의 바코드가 민심을 어지럽히고 자기 모순을 이기지 못해 졸하고, 곤충 세상에 나비의 생존이 위태롭고 한국은 중대한 기로에 선다. >  



청백나비는 점찍어 둔 접시꽃을 찾았다. 접시꽃은 희고 포근했지만 꿀은 적었다. 부족감을 느끼던 청백나비는 큰 바위의 얼룩무늬를 꽃으로 착각하고 바위에 앉았다. 철분 섞인 붉은 물이 솟구치는 바람에 날개를 적셔버렸다. 얼마나 흠뻑 젖었는지 날개를 움직일 수 없었다.




간단한 착각에 비해 고통은 너무나 컸고, 날개는 아팠고, 마음은 한심했다. 청백나비는 물방울을 만 번 쪼갠 분량의 작은 눈물을 흘리면서 깊은 참회를 했다.

‘그동안 경솔하여 고통을 반복했습니다. 힘센 말벌과 대립했고, 현실은 굽고 모진데 돌아갈 줄 몰랐고, 뒤로 나는 것은 낭비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죄, 나비답지 못했던 죄, 모두 참회합니다.’



참회의 순간은 길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는 말벌이 접근했다. 말벌의 언어는 짧고 강했다.
“뒤로 날던 나비, 그대로 있어라. 세상을 어지럽힌 너에게 독침을 놓겠다.”



장수말벌은 꽁지에 달린 침을 날름거리며 찌를 자세로 다가왔다. 침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청백나비는 눈을 감고 절박하게 날개에 힘을 주었다. 어찌된 일인지 바위에 붙었던 날개가 펴졌다. 자유의 몸이 된 청백나비는 겹눈이 시릴 정도로 빠르게 도망쳤지만, 말벌이 따라와 청백나비의 몸통을 물었다. 몸통을 빼내기 위해 뒤집기를 시도했으나 말벌의 힘에 눌려서 바로 서지 못했다. 공포감을 느낀 청백나비는 몸과 생각이 떨렸다.

‘이제 죽는구나.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꿀이나 실컷 먹을 것을 … 아니다. 후회하지 말자. 뒤로 나는 비행술을 개발한 내가 자랑스럽다. 아마도 죽음은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이겠지. 이왕 죽을 운명이라면 당당하게 죽자.’

청백나비는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의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기대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데 웬걸,



아무런 고통이 없었고 옆구리가 허전하여 감았던 눈을 떴다.
자신을 물었던 말벌이 금빛 매에게 쫓기는 장면을 보았다.
형상은 매였지만 곡선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금빛나비의 기상이었다.






청백은 직감적으로 금빛나비가 매로 변하여 자신을 구해주었다고 생각했다.
청백나비는 고민했다.
‘금빛 나비에게 달려가 고마움부터 표시하는 것이 옳은가?
  빠른 비행술을 빨리 개발하여 나비 세상을 진보시키는 것이 우선인가?’



고민의 순간은 길지 않았다. 빠른 비행술을 개발하는 것이 금빛 나비도 좋아할 것이고, 나비를 이롭게 하는 최고의 가치로 판단하고, 날개를 한번 훌훌 털고서 비상하려는데,
비행 연습을 지켜보던 지도자 정복나비가 다가왔다.

“청백, 나비에게 속도는 어울리지 않는 가치다. 그동안 나비 세상이 추구했던 나비의 통합과 중립지대의 가치들이 모두 깨졌다. 네가 지도자를 돕지 않았기 때문이지. 하하 ~~ 이제 속도를 포기하고 지도자를 돕는 게 어때? 의미 있는 가치는 보상받는다.”




지도자 나비의 명령조의 말에 청백나비는 언짢은 투로 대답했다.
“빠른 나비가 되어, 나비들의 희망이 되는 것이 제가 찾고 싶은 가치입니다.”
“나비에게 속도는 없다. 정해진 실패로 향하는 너의 길을 말려서,
  나비 세상을 다시 살리고 싶다. 너의 재능을 이미 실패인 곳에
  투자하는 것이 안타깝다.”
“나비도 준비하고 노력하면 빨리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소.”



청백나비는 빠른 비행술 개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다. 오기가 생겼다. 날개의 힘으로 산으로 올라가 바람을 등지고 빠르게 하강하는 연습을 했다. 비행 연습은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시작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다. 연습으로 조금씩 빨라지던 날, 높게 솟구쳤다가 날개의 리듬을 잃고 밀밭으로 추락했다. 몸은 풀어졌지만 의식은 더 맑아졌다. 청백나비는 그 와중에도 키는 작지만 대공이 굵은 밀의 소리를 들었다.



“나비야, 속도라는 가치를 찾다가 실패했구나. 간절하게 가치를 찾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가치는 이루어진단다. 다만, 자신의 고유 가치를 지녀야
  대접을 받으며 산다.”
“무슨 뜻이지?”
“인간들이 토종 밀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토종 밀을 부활시켰지. 인간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죽었던 종자도 다시 살아난 셈이지.”
“그럼, 나비는 어떤 가치를 지녀야 인간들이 관심을 가질까?”
“나비가 빠르게 꽃을 수정한다면, 인간들이 나비에게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익충으로 재인식하고 키워줄 거야. 왜냐하면 전자파에 일벌들이 죽어가고 있어. 인간들은 벌 대신에 과실수의 꽃들을 빠른 속도로 수정(受精)해줄 곤충을 찾는 중이거든.”

“빠르게 꽃을 수정하는 나비가 있다면 그 나비는 인간들 농장에 갇혀 평생 일만 할 거야. 나비에게 인간에게 필요한 가치가 있다면,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나비에게 남는 것은 불행일거야. 나비가 앞으로도 자유로우려면 인간 이익과 무관한 가치, 이간이 이용할 수 없는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빠른 비행술이야.”

“나비는 꽃 때문에 존재한다. 나비가 찾을 가치는 꽃과 관련된 가치여야 해. 꽃들은 향기로 나비를 초대하는데 나비들이 속도에 빠져 꽃을 외면하면, 꽃도 나비도 죽어 갈 거야. 꽃들을 위해 빠른 비행술을 찾는다면 비법 하나를 알려주마.”

“웬, 비법?”

“날개의 힘만으로 빨리 날 수 없다. 빨리 날려면 하늘 기운을 받아야 한다.”
“하늘 기운?”
“하늘 기운은 세상을 움직이는 큰 에너지다. 생명체는 하늘이 정해 놓은 기운으로 살면서도, 자연 기운으로 산다고 착각하지. 하늘 기운은 너의 날개 짓 하나도 지켜보고 있다. 네가 꽃을 위한 날개 짓을 하면 기운을 주고, 네가 목적 없이 날면 산만한 기운을, 네가 엉뚱한 일을 하면 엉뚱한 기운을 준다. 보통 나비들은 평생 5,000여개의 꽃밖에 돌보지 못하지만, 하늘 기운을 받으면 5,000만 개의 꽃을 돌볼 수 있단다.”
“밀, 고맙다. 하늘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겠는데, 하늘 기운을 어떻게 얻지?”
“아직 하늘 기운을 찾는 방법은 모르지만, 하늘 기운을 느끼고 있단다.”



토종 밀은 하늘 기운을 찾는 방법은 모르지만, 하늘 기운을 믿는 진정성은 확고해 보였다.

청백나비는 밀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생기를 찾았다. 마음을 비웠고, 비행을 하면서 비행을 한다는 자체를 지워버렸다. 그러자 날개가 가벼워졌고 몸이 위로 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날개 기부(基部)의 어깨판 근육을 의식의 속도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에 맞서는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45도 각도로 숙이고, 몸통을 넓게 펴서 지상의 부력을 받고, 앞발을 둥글게 말아서 앞가슴 부분에서 공기가 소용돌이치게 하고, 배 끝을 안으로 살짝 접어서 뒤로 빠지는 공기의 흐름이 빨라지게 했다. 빨라지기 위해 수많은 반복 연습을 했다. 구상과 의지만큼 빨라졌다. 빠르게 날면서도 꽃이 보였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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