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예언( 2011년) - 정의와 자유의 언어

입력 2011-10-06 06:22 수정 2011-10-06 06:22









동쪽 하늘엔 낮을 피하지 못한 반달이 살찐 칼처럼 걸려있었고, 서쪽 하늘엔 낮은 자세의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남쪽 하늘엔 맑게 텅 빈 공간이 여유롭고, 북쪽 공간은 짙은 안개가 햇살에 쫓겨 가며 허허롭고, 지상은 큰비 오기 직전의 아침이었다. 



참나무 숲에 3일 밤, 4일 낮 동안 큰비가 내렸다.



큰 비가 그치자, 날개가 젖지 않는 나비부터 살아나 평정된 공간을 날았다. 청백나비도 참나무 숲 중앙으로 날다가 나비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고 낯설지 않은 진동 소리를 들었다. 나비들의 페르몬 언어를 정립한 교수 나비의 연설 소리였다.

“나비들이여, 우리는 대홍수를 이기면서 숲속의 강자가 되었다. 나비들의 위대함이 드러났다. 우리의 적은 말벌도 흰불나방도 아니라 나비가 약한 존재라는 열등의식이다. 이제 발전을 앞세워 자유를 억압하고, 풍요를 이유로 공짜 언어를 버리고 꽃들을 위해 넓은 세상으로 나가자. 우리의 과거 꽃밭이었던 만주 벌판도 동쪽 대나무 섬도 나비의 영역으로 만들자. 그리하여 정의가 살아 있고 모든 꽃들을 자유롭게 하자. 나비 종족의 자유와 정의를 위한 통일된 원칙을 전한다.”



오색나비가 호흡을 고르고 열변을 이어갔다.

“나비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1) 꽃을 찾아가되 꿀을 소유하지 않으며, 2) 신중한 비행으로 행동의 자유를 누리되 공짜를 바라지 말고, 3) 서로 인정하고 도와서 함께 사는 정의를 세우며, 4 피할 수 없으면 맞서지 말고 즐기며, 5) 멀리 있는 꽃들, 그리고 ….”



오색나비는 너무 긴 자유 원칙 때문인지 아니면 감정을 이기지 못한 탓인지 여섯 번째 원칙은 끝말을 잇지 못했다. 청백나비는 오색나비의 멈춘 연설을 이었다.

“자유와 정의는 강령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온다. 자유와 정의는 언어가 아니라 행동원칙이다. 강령과 획일적 사고는 자유의 적이다. 나비들의 자유는 아직 이르다. 나비의 자유를 제한하는 거미줄과 독을 품은 꽃들이 많기 때문이다. 생존도 버거운 나비에게 자유보다는 선악을 초월하는 마음의 자유부터 찾아야 한다.”

“청, 당신은 얼마 전까지 행동의 자유의 찾았던 자유 신봉자였다.
  그러던 당신이 왜 갑자기 자유를 ….”



오색나비는 흥분한 탓인지 말끝이 갈라졌고 갈라진 틈으로 청백 나비가 반격했다.
“곤충 세상을 돌아보니 자유는 없었다. 서로 먹으려고 몸부림 치고, 먹는 문제도 벅찬 나비들에게 자유는 없어.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자유를 위해 나비를 선동하지 마.”

청백의 날이 선 말에, 날이 선 오색이 말이 이어졌다.
“모르면 침묵해. 나비는 자유와 정의를 향한 꿈으로 살아왔어,
나비에게 자유와 정의의 꿈이 없었다면 나비는 날아다니는 낙엽에 불가했다.
당신이 찾은 부력 비행으로 나비들을 자유롭고 강하게 할 수 있을 텐데…"
“부력 비행은 공간 이동의 자유는 주겠지만,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자유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고통을 뛰어 넘어 고통마저 즐길 때 자유로운 거야.”
“고통을 즐긴다고? 언어의 장난이야!”
“….”



청백 나비는 오색나비의 말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말벌의 날개 소리가 가까운 거리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청백나비는 금방이라도 말벌이 다가와 자신을 분해할 것만 같아서 날개가 아플 정도로 도망을 쳤다.





청백나비가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금빛나비였다. 


"악마 같은 말벌이 따라와서 피하는 중입니다.”
「 고통도 즐기라고 하더니… 원래 말은 쉬운 거야. 말벌이 따라오면 도망치지 말고
자연스럽게 대응해.」
“말벌에게 대응하면 바로 죽을 텐데요.”
「집착하면 말과 이론은 모두 허구다. 살려면 욕심을 배신하라. 급할수록 더 천천히 날고, 여유는 없기에 만들고, 아플수록 아픔을 즐기고, 네가 아는 정보와 반대로 해라.」
“말벌이 왔어요. 말벌을 처치해 주세요.”

청백나비는 애절하게 요청했지만 금빛나비는 사라졌다.
청백나비는 ‘반대로 하라’는 금빛 나비의 마지막 말이 떠올라 배를 하늘을 향하도록 드러내고 뒤로 비행했다. 배영 비행 때문인지 따라오던 말벌이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갔다. 청백나비는 위기를 모면했지만 날개 근육에 경련이 생겨 서서히 추락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청백나비에게 오색나비가 말했다.











“거꾸로 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질서의 파괴다. 말벌에게 쫓기지 않으려면 부력으로 빠른 비행술을 개발해라. 빠른 비행을 찾아야 나비 종족이 산다.”
“나비는 아직도 나불나불 거리는 비행인데 … 어떻게 빠르게 날죠?”
청백나비가 따지는 투로 묻자,

“나비는 애벌레 시절에는 기어가는 곤충이었는데 지금 날지 않느냐?
자유를 향한 믿음이 있으면 넌, 새보다 빠르게 날 수 있어. 그리고 … ”
오색의 말은 방법이 아니라 원론 같아서 말을 끊고 독촉했다.
“제가 듣고 싶은 것은, 빠르게 나는 방법입니다.”
청백의 말엔 짜증이 섞여 있었다.

“나에게 방법을 묻지 마라. 방법은 궁한 나비가 찾는 거야.”
“방법은 제가 찾겠어요.”
“나비는 살기 위해 빠르게 날아야 한다. 믿음을 가져라!”
“믿음?”
“믿음이란 일이 내 뜻대로 될 것이라는 확신, 사랑하는 나비가 나만 
  바라본다는 편안한 생각, 잡념을 버리게 하는 기운이다.”
“어떻게 하면 믿음이 생기나요?”
“글쎄, 준비와 노력, …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려고 해야 한다.”

오색나비는 실천 방안을 다 말하지 않았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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