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억압의 말뚝을 뽑자.

입력 2011-06-23 13:50 수정 2011-08-04 15:21










습관 진화 2. 자아.  - 걸림 없는 마음의 자유를 누리자.














위 수술을 받고 자신감을 잃고 나를 억압하며 웅크리고 지낼 때, <연금술>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연필 같은 사람’ 이야기를 읽었다. 연필 같은 사람은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연필에서 중요한 것은 외피가 아니라 심(心)이다. 마음속의 소리를 들어라.’는 문장에 영감을 받았다. 연필의 외피는 육체를 의미하고, 심은 정신과 영혼을 의미했다. 연필의 심에서 색깔이 나오듯, 마음에서 행동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몸은 부실했지만 마음을 고쳐 잡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자유 세상으로 편입된 나는 가장(家長)이라는 굴레 속에 밥벌이를 해야 했고, 조직은 돈과 권위로 나를 눌렀다. 일의 생산성과 질서유지를 위한 조직의 억압을 인정하면서도 몸은 펑크 난 바퀴처럼 구르지 못했고, 마음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생존을 위해 이중적 존재가 되어갔다. 글씨를 쓸 수 없는 부러진 연필심처럼 정체성과 주관이 부러져서 오랜 기간 행동 장애를 보였다. 2 편의 매 이야기가 억압의 마법에 빠진 나를 돌아보게 했고 억압의 마법에서 빠져 나오는 지혜를 주었다.



첫 번째 매는 몽골 산악에서 사냥을 하는 매의 이야기다. 주인 어깨 위에 타고 가다가 사냥감을 만나면 그대로 날아가 사냥을 하고, 먹이를 물고 주인에게 돌아오는 장면을 보고 감탄을 했는데, 매의 온순함과 영리함 뒤에는 잔인한 억압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어린 매를 길들이는 훈련을 보면, 어린 매에게 줄을 묶어서 날려 보내면 매는 줄의 길이만큼 날아가다가, 비행을 멈추게 되고 질질 끌려오는 과정을 반복하고, 훈련이 끝나면 눈을 가리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굶긴다. 동일한 훈련 과정이 반복되면 주인만 봐도 질리게 만든다. 사냥 매가 말을 듣는 것은 순응(順應)이 아니라 주인에게 당한 공포가 무서워 그냥 살기 위해 사냥을 하고, 돌아와 먹이를 바친다. 매가 억압에 길들여지면 줄을 풀어주어도 (날쌘 매로 성장해서도) 도망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



두 번째 매는 포수에게 잡혀와 닭들과 함께 성장한 어린 매의 이야기다. 매는 닭 먹이를 먹으면서 몸은 성장했지만 닭장에서 길들여지면서 날개는 퇴화되고 발톱은 무디어지고 눈빛을 잃었어. 그렇게 닭들과 어울려 지내던 어느 날, 창공에서 날쌘 매가 닭장을 뚫고 들어와 닭을 낚아채어 날아가 버렸다. 닭장 속에서 자란 매는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방금 닭을 낚아 채간 매가 자신과 닮았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도 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 나는 원래 매였구나!’ 라는 각성과 함께 눈이 빛났고, 발톱과 날개에 힘이 솟았다. 몇 차례의 날개 짓 끝에 매는 닭장을 박차고 나가 창공의 자유를 얻었다.



우리는 억압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냥매이거나, 뒤늦게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유를 누리는 매일 수 있다. 발전을 위한 자기 억압과 질서유지를 위한 사회적 억압은 불가피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묶인 억압과 체면과 권위 때문에 당하는 억압이라면 벗어나야 한다.



사냥 매가 억압에 길들여지면 본성을 잃듯, 인간도 억압에 길들여지면 자아를 잃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심성(야성)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수많은 길들임의 수업을 받는다. 어려서부터 교육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얼차려와 체벌을 받고, 정도와 합리라는 이름으로 잔소리와 바가지를 긁히고, 사회는 서로 살기(기존 질서 고수) 위해서 예절과 질서를 강요하고, 조직은 생산성 논리로 인간을 길들인다. 우리는 잔소리가 반복되고, 조직의 통제규범과 권위라는 횡포에 시달리면 저항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거나, 억압을 즐기는 의식적 노예가 된다. 외부의 억압은 지속되지 않는데, 당장 손해 보는 것이 두렵고, 따돌림과 왕따가 싫어서 본심을 감추고 따르는 척 한다. 인간은 자아를 지닌 자유로운 존재지만 억압의 사슬에 걸리면 자기를 잃는다.



닭장을 탈출하여 창공을 찾은 매의 이야기는 자아를 찾을 때 진정한 자기 존재가 된다는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아직도 세상의 힘과 규제가 개인의 자아를 가두는 것도 있지만, 자아를 가두고 밀폐시키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억압받지 않을 자유의 존재다. 행복을 찾고, 만들고 누릴 책임과 사명이 나에게 있는데, 무지와 어둠에 쌓이면 스스로 억압한다. 소아적이고 극단적인 생각, 기분 나쁜 기억, 자기가 보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인줄 아는 독선은 스스로 자기를 억압한다. 자기 억압에 갇히면 자아는 사라지고 어둠과 불행에 빠진다.



닭장에 갇혔던 매가 자아를 찾고 창공을 찾아가듯, 자기 억압에서 벗어나려면 나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감 주입으로 나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존재이유와 사명감을 발견하고, 삶에 따르는 고통을 발전을 위한 시련으로 인식하고, 큰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한다. 잡초를 제거해야 곡식이 잘 자라듯, 나를 억압하는 근심과 걱정을 털어내야 가슴 속에 잠자는 자아의 거인을 깨울 수 있다.

나는 자아(自我)입니다. 자아는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요체, 이 세상에 하나뿐인 실체이면서, 나의 진짜 얼굴입니다. 자아는 나와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견해를 펴는 사유의 주체이면서, 변함없이 나의 생각을 생산하는 의식의 기지입니다. 회사의 자아는 회사의 이념과 오너의 마인더이며, 국가의 자아는 국가 이념과 국시(國是), 그리고 국민들의 정신이다. 나의 진짜 참모습으로 살지 못하면 허깨비 존재로 남에게 봉사만 하다가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직의 질서와 타인의 시선에 매몰되어 자아를 잃었고, 내가 사라진 자리에 고통과 두려움, 혼란과 분노가 치고 들어와 나를 초라하게 했다. 나는 나의 자아만큼 존재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크게 키우지 못했습니다. 이제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 참자아를 다듬고, 완성하리다. 나를 믿고 행동하는 자아, 나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자아, 유익한 가치와 행복을 생산하는 자아, 환경과 타인의 의지에 흔들리지 않는 자아를 찾고 지키리라.



당신은 비자아입니다. 비자아는 나이면서 내가 아닙니다. 비자아는 남이 나를 만든 허깨비 틀이며, 억압(抑壓)에 파괴된 허상의 나다. 억압은 겉으로는 질서를 말하면서 안으로는 자아를 파괴한다. 세상에는 서로 살기 위한 억압도 있지만, 억압은 심해(深海)의 수압처럼 자유로운 생각을 누르고, 납작해진 돼지머리처럼 상대의 자존심과 정서를 비참하게 누른다. 억압은 유령처럼 떠돌며 간섭하고 통제하면서 찌그러진 깡통처럼 자아의 원형을 파괴하고, 가위눌림처럼 의식은 있는데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아를 찾기 위해 나와 남이 만든 억압의 말뚝을 뽑아내고, 억압으로 비틀어진 정신 세포에 자신감을 주입하여 앞으로 나가자. 스스로 만든 억압에 자아를 잃은 우리들이여,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다. 억압의 화살이 자유와 영혼의 심장을 노리기 전에 진정한 나를 찾자.



자기통제여! 당신은 자아를 찾고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면서, 억압의 사촌입니다. 자기 통제를 못하면 자아는 욕망의 뱃살로 채워지고, 사소함을 먹어치우는 소화력이 부족하면 자아는 불필요한 고민에 빠진다. 나무가 작은 줄기를 버리면서 성장하듯, 능력을 초과하는 욕심을 버려서 자아를 성숙시키리라. 물 위를 걷는 소금쟁이처럼 여건을 갖추고 도전하고, 자기억압으로 소모했던 에너지를 자기 통제의 회로로 옮기자. 상처로 상처를 치유하듯, 나를 억압하는 사람을 통해 일을 이루고, 어두운 자아의 동굴에 빛을 투사하여 독성이 강한 아집의 곰팡이를 죽이자. 자기통제로 자아를 키우고 싶은 우리들이여, 남이 나를 통제하기 전에 내가 나를 다스려 모난 나를 정비하고, 정신의 품위를 다시 찾자.



자유여! 당신은 자아가 찾고 싶은 최종 상태이며, 너무 세게 잡으면 죽고, 너무 가볍게 잡으면 날아가는 새입니다. 자유의 한계를 알면서도 소유의 풍선불기를 계속 했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거울 보면서 실망하고 남을 흉보면서 자유의 울타리를 더 좁혔습니다. 자기 억압의 덫을 제거하고, 자기 통제의 힘으로 세련되고, 걸림 없는 자아를 갖게 하소서! 어미 나무 밑을 벗어나야 살 수 있는 도토리처럼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기를 찾는 구도자가 되리라. 내면의 에너지가 원하는 길로 나가 자유를 찾고 싶은 자아여, 빛이라고 다 직진하는 것은 아니다. 물을 만난 빛은 굴절하면서도 앞으로 나가듯,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구속의 코뚜레라면 수용하자.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가상통화의 미래, 어떻게 생각하세요?

  • 현대판 튤립 투기이며 화폐로 인정받지 못할 것 745명 60%
  • 결제·지급 수단으로 인정받아 은행 대체할 것 506명 40%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