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질병은 감기처럼 온다.

입력 2011-05-26 15:37 수정 2011-07-28 17:09









생각 진화8. 마음의 중심








어느 수행자가 예언자를 찾아가 ‘저의 미래를 알려주세요.’라고 청하자, 예언가는 쌀 한줌을 상위에 뿌려놓고 ‘아주 좋아. 너무 좋아.’라고 했다. 이에 수행자가 ‘어떻게 좋습니까?’ 라고 되묻자, 예언자는 ‘자기 미래는 자기 마음에 있기에 자기가 보는 것입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는 우화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각에 잡히게 하는 것은 교육도 환경도 아니다. 바로 ‘나’다. 내가 내 마음을 만들고, 마음의 지배를 받고 행동한다. 불행의 늪에 빠져 있어도 마음이 행복하면 행복하다. 행복과 불행의 분기점(分岐點) 또한 자기 마음이 만든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지만, 마음이 아니라고 하면, 마음이 불자(不字) - 불안, 불만, 불평, 불확실, 불완전-와 동맹을 맺으면 되던 일도 멈추어 섰다. 열심히 일을 해도 마음이 부정적이면 행복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행복은 행복을 투자하여 새로운 행복을 버는 선불제인데, 잠재된 불행의식이 마음의 질병을 만들면 행복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불행을 넘어 행복으로 가기 위해 나는 수련도 했지만,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고, 내 마음은 많이도 앓았고, 마음의 열병을 통해서 내 마음의 병은 내가 만들었고, 내가 마음 위에 존재하는 영혼으로 치유해야만 낫는 병임을 알게 되었다. 영혼의 청진기로 불행의 원인을 진단하고, 마음이 아프고 병이 드는 이유를 살펴보았다.



자아를 가해하고 괴롭히는 자기 억압.

억압이란 억지로 누르는 행위다. 외부(제도와 법)에서 나에게 가해지는 억압은 자유를 제한하고, 존재감을 초라하게 하며, 의지와 잠재력마저 앗아간다. 외부 억압이 반복되면 자기가 자기를 억압하게 된다. 자기억압은 욕망을 제어하고, 겸손하고 배려하는 사회인을 만들지만, 자기 마음과 행동 영역을 제한하고 도전의식을 죽인다. 착한 사람일수록 자기억압을 한다. 자기 억압은 누가 말려 줄 사람도 없고 치유도 어렵다. 누구도 나보고 불행하고 슬퍼하라고 하지 않는데도, 자기가 자기를 억압하고, 비틀면서 불행을 만든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자기 마음에 달려 있고 자기 마음이 만든 결과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도 다 자기 마음이 만든 것이다. 자기 억압의 철창에 갇히면 자신감과 자부심을 잃고, 행동이 위축되고, 근거 없는 죄의식에 시달리면서 영성을 잃는다. 자기 억압에서 해방되려면 자기를 억압하는 기분 나쁜 일을 성숙을 위한 시련으로 인식하고, 자기 기준으로 만든 가책(苛責)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세상을 관조하는 영혼으로 신을 찾고, 밝은 세상을 내다보아야 한다. 세상은 내가 스스로 억압하지 않으면 누구도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



암을 키우는 스트레스.(악마의 교주)

스트레스는 마음 질병의 대표자다. 스트레스를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지만 스트레스는 추하고 심각한 부작용을 만든다. 스트레스는 반복 업무로 인한 매너리즘, 막연한 근심과 걱정, 반복적인 불쾌감, 부당 대우와 무시당함에서 생겨나, 영혼을 갉아먹고, 행동 리듬을 깨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술과 담배를 찾게 하고, 자학(自虐)과 우울증을 만들고, 공격할 수 없는 대상에게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앙갚음을 한다. 중증 스트레스는 증오와 분노로 발전하여 몸을 상하게 하고, 암 세포를 키우고, 나중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스트레스를 이기려면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매사를 밝게 보며, 상대의 얄미운 짓도 한 차원 위에서 어여쁘게 받아주고, 기대에 미흡한 일은 진행형으로 인식하고, 믿음의 시스템 속에 자기를 놓아야 한다. 마음이 밝고 강하면 스트레스를 먹고사는 암세포는 굶어 죽는다.



행복의 교란자인 근심 (악마의 신도)

지나온 날을 뒤돌아보면, 쓸데없는 근심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이 잘못되어, 당장 괴롭고 힘이 들어서,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를 놓고 근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근심은 마음이 만든다. 막연한 불안감, 상상과 추측으로 미리 근심하고, 예상되는 상황을 이길 자신감이 없어서 근심을 한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일 때문에 근심을 한다는 것이다. 근심은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이점도 있지만, 대다수의 근심은 나의 에너지를 뺏어먹는 뱀파이어다. 작은 물방이 큰 물방울에 흡수당하듯, 사소한 근심도 그냥두면 큰 근심으로 발전한다. 한번 근심이 찾아오면, 현재의 고달픔과 과거의 상처가 마구 섞여서 마음을 누르고 행동을 주저하게 한다. 인생은 이 꼴 저 꼴 다보는 고해(苦海), 인생은 근심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근심이 많으면 행복은 없다. 근심거리의 95%는 시간이 가면 해결된다. 진짜 근심은 5% 이내라고 한다. 근심이라는 잡초는 빠르게 자라나 평화지대를 덮고, 영혼의 햇살을 막고, 영혼이 먹고 자랄 에너지를 빼앗는다. 잡초를 없애려면 뿌리까지 뽑아야 하듯이, 근심을 없애려면 기도와 신념으로 근심 자체를 녹여야 한다. 기도의 힘은 검증이 되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근심을 줄이는 길은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잘 되고 있다.’라고 자기암시를 하는 것이다.



싸움을 일삼는 예민한 반응 병(악마의 협조자)

누가 필자에게,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작은 일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기준도 원칙도 없는 일에, 속이 좁은 두뇌의 판단으로 버럭 화를 내고, 다투느라 많은 일을 그르쳤기 때문이다. 인간은 손해를 보거나 자존심이 상하면 예민하게 반응한다. 열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듯, 누가 도전하면 높고 도도한 자기기준은 일순간에 중심을 잃고 낮은 수준의 대응을 한다. 적절한 반응은 교감과 공존을 추구하지만, 민감한 반응은 여유를 잃고, 자기를 가시처럼 깔깔하게 만들어 스스로 매력을 잃는다. 가치관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이해하고 참고, 버티는 인고(忍苦)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성급한 반응은 실수하기 쉽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싸움을 만든다. 설사 상대의 행동이 명확하게 잘못되었고, 똥 같은 놈이라 하더라도 바로 반응하면 자기 품위를 잃고 상대에게 진다. 예민한 반응은 악마가 접근하는 통로를 제공하고 행복의 길목을 차단한다. 예민한 반응을 피하는 길은, 어떤 자극이 생기면, 최소한 3초간 생각하고, 한 박자 쉬었다가 행동하는 안전거리를 두어야 한다.‘지금 나의 마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라고 자기를 다스려야 한다.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執着) 병(악마의 신하)

필자의 삶을 압축해서 표현하면, 집착으로 하나를 얻고 백(百)가지를 잃은 인생이다. 인간은(성자는 제외) 중요한 일을 추진하거나, 일이 뜻대로 안 풀리면 집착한다. 낮은 농도의 액체는 높은 농도의 액체에게 로 끌려가듯(개구리를 소금가마에 넣으면 개구리 미라가 되듯), 하나만 생각하고 집착하면 통찰하는 자의 밥이 된다. 집착은 자기 뜻대로 하려는 아집으로, 미련과 무모함이라는 퇴적물을 쌓아, 내면의 눈을 감게 하고, 행동의 유연성을 깨며, 에너지를 앗아간다. 성공에 대한 집착은 여유를 앗아가고, 편해지려는 집착은 사람을 잃고, 부유해지려는 집착은 두려움을 만들고, 허상에 집착하면 남들이 다 아니라고 하는데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고, 우선적인 일들도 많은데 시간과 기회비용을 잃는다. 집착은 자기 에고(ego)라는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행복을 잃는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것만 얻으면 행복할까?’라고 자문하고, 일의 최종 상태를 생각하여 스스로 조율하는 것이다.



마음의 평화를 깨는 자존심(악마의 심부름꾼)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자존심을 (버리지 말고) 유보하라!’ 영업을 처음 배울 때 매니저에게 들었던 말이다. 처음에는 자존심을 유보하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세상과 부딪히면서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자존심은 자기를 지키려는 마음이며, 자신의 인격과 품위를 고고하게 만드는 1인 종교다. 자존심은 영혼을 밝히는 불꽃으로 마음의 어둠과 찌꺼기를 태우고, 자신을 깨끗하고 고결하게 지탱하지만, 지나친 자존심은 살 속으로 파고드는 티눈처럼 마음으로 파고들어 마음에 화상을 입히고, 행동을 위축시켜 외톨이로 만들며, 대인관계를 엉망으로 만든다. 병든 자존심이 복리(複利)로 불어나면 마음의 평화가 깨지고 행복을 쫓아낸다. 지나친 자존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상대의 시비를 한 수 위의 자신감으로 대응하고, 미래 지존(至尊)이 되어 평정한다는 큰 생각을 품어야 한다.



마음의 병이여! 당신은 엔진을 꺼트리는 이물질이며, 가치를 상실한 뭉그러진 칫솔입니다. 육신은 멀쩡해도 마음에 병으로 몸까지 방황하며 아파했습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아픔에는 아픈 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아픈 만큼 아파하자.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픔으로 아픔을 잊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난동을 부린다면 함께 난동을 피우리다. 당신은 멍석을 펴면 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음 세포에 암이 생기면, 내면을 투시하여 마음의 항암 치료를 하고, 그래도 치유가 어렵다면 행동으로 치유하고, 마음의 병이 깊어 칼을 댈 수 없다면 영혼을 초대하여 마지막 수술을 하리다. 그래도 못 고칠 병이라면 운명으로 받아들이자.



이중적 마음이여! 당신은 마음의 병보다 무서운 소리 없는 병이며, 마음은 아니라고 하면서 입과 표정은 ‘예’ 하는 못난이입니다. 정면으로 맞서다가 근심과 걱정을 버는 것이 두려워서 생기는 마음의 소화불량입니다. 물은 중심이 아래에 있기에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낮은 마음으로 하나의 마음을 향하자. 이제, 이중적 마음에 잡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이중적 마음을 판도라 상자에 넣자. 그래도 삐져나와 담쟁이넝쿨처럼 불행의 벽을 기어오른다면 부정으로 부정을 치유하고, 근심으로 걱정을 수술하자. 치유도 수술도 할 수 없는 이중병이라면 비움의 광야로 나가 무아(無我)를 노래하자.



마음의 부활이여! 당신은 헛됨을 아는 깨우침이며, 죽은 단백질에 피가 흐르게 하는 기운입니다. 마음을 부활시키는 스위치는 내가 쥐고 있으면서 큰 힘에 기대느라 행동을 잃었습니다. 마음의 부활은 병든 마음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뛰어넘어 새로워지는 절차임을 알게 하소서! 이제, 나고 죽는 과정을 알려고 하지 않으리라. 미움과 오만을 참회하고, 한 점 먼지보다 작은 권위로 시건방진 고집을 피운 날들을 부끄러워하자. 당신이 불현듯 왔다가 가신다면 겸손의 등불을 들고 나가 배웅을 하고 돌아와 그 등불 아래서 일기를 쓰리라. - 마음 때문에 몸도 아팠습니다. 강한 마음의 부활이 어렵다면 마음을 비워서 온전한 행복을 찾으리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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