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해지면 죽는다

입력 2011-10-11 09:14 수정 2011-10-11 09:14
아라비안나이트는 다른 말로 ‘천일야화’다. 페르시아 설화들을 모은 것인데 180여편의 주요 이야기와 108편의 짧은 이야기로 이뤄져있다. 그런데 이들 이야기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스토리가 하나 있다. 아내에게 당한 배신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새것 강박증이 극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샤푸리 야르왕은 세상 모든 신부감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결혼하자마자 첫날밤 후 아내를 죽인다. 이걸 매일 계속 하는거다.

이때 세헤라자데라는 여자가 자청해서 신부가 되었는데 밤마다 재미있는 얘길 들려줘서 왕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라도 죽이질 못하는거다. 이렇게 얘기한지 1001일 밤 만에 왕은 생각을 바꿔 그녀와 여생을 함께하기로 한다. 그녀가 했다는 얘기들을 모은게 아라비안나이트가 되는 거다. 사실 이 이야기는 콘텐츠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나 스토리텔링에 대한 얘길 하는 사람들도 흥미로운 화두로 얘길 꺼내지만, 지루해지면 죽는다는 메시지는 새로움 강박이자 신상품이나 새것에 대한 갈증이 큰 마케팅 얘기에도 제격이다. 아라비안나이트의 그녀만큼 우리가 덜 절박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지루해지면 죽는다는 것은 매한가지다.

몇초만 가만히 있어도 지루함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초미세 지루함(micro boredom)은 기업에겐 제품개발의 기회 중 하나로 인식된다. 우리는 새로운 자극이나 잠시잠깐의 몰입을 계속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득하니 오래 뭔가를 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영화를 보더라도 가만히 끝까지 지켜보기 보다 빨리감기하면서 돌려보는게 익숙하고 편하다. 음악도 앨범 하나를 듣는 일은 없고 자신이 좋아하는 곡만 따로 듣거나, 그 노래마저도 좋아하는 부분만 따로 듣는다. 점점더 짧은 시간에만 집중하는 것은 우리가 신경쓰고 보고 접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늘 조급하고 계속 새로운 것을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우린 늘 새로운 것을 접하며 소비하며 살아왔고 그게 이미 익숙하고 당연해졌다. 그러니 어떤 비즈니스 영역에서건 사람들이 가진 새것에 대한 강박증, 초미세 지루함을 해소할 접근들도 계속 쏟아내야겠다.

스마트폰은 우릴 더 새로움에 대한 강박에 빠지게 해주고 있다. 그 이전보다 더 많은 새로운 정보와 새로운 도구, 새로운 관계를 소비하고 있다보니 우리가 지루함에 빠질 시간을 더 짧게 단축시켜주고 있다. 화장실에 가서도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보고 쓰고 누군가에게 얘길 해야할 정도로 잠시도 가만있는걸 못참게 만들어놨다. 만약 휴대폰을 끈다고 생각해보라. 손에 잡고 있던 스마트폰을 그냥 내려놓고 있다고 생각해보란 말이다. 컴퓨터는 커녕 인터넷이 연결되지도 않은 한적한 외딴 곳에 혼자 있다고 생각해보라. 여유를 즐기기 앞서 불안감부터 느낀다. 새로운 정보를 접하지 못하고, 누군가와 연결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마치 금단현상처럼 나오기도 한다.

초미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고, 그들은 가장 매력적인 마케팅 기회를 안겨주는 셈이다. 마케팅과 비즈니스, 문화와 콘텐츠 산업에서 점점더 소비자는 초미세 지루함마저도 불편하게 느낄만큼 지루함에 인색해지고 있고, 그걸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비즈니스에서의 숙제이자 기회다.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www.digitalcreator.co.kr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에서 연구와 저술, 컨설팅, 강연/워크샵 등 지식정보 기반형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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