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니까 행복하다. -

입력 2011-03-08 18:34 수정 2011-03-26 06:34
 위로 12

 새로 구입한 새 차에 누가 중고차를 구매한다는 명함을 꽂아 두었다.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여유가 없고 자존심만 센 저돌적인 사람은  당장 명함을 보고 전화해서 “당신 눈에 내 차가 중고차로 보여? 당신 제 정신이야? 새 차에는 전단 붙이지 마.” 하면서 반말로 감정을 드러낼 것이고, 여유가 있지만 포용성이 부족한 사람은 일단 전화를 할 것이다. “제 차를 중고로 판다면 얼마나 받을 수 있나요?” 라고 질문을 하고, 그가 가격을 말하면 “선생님, 그 가격으로 이와 똑같은 차를 구해주세요. 선물하고 싶은데요.”라고 감정을 조절하면서 불편한 심사를 전할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을 여유 있게 수용(收容)하고 즐기는 사람은 전화 대신에 속으로 (이미 벌어진 일이다. 기분은 나쁘지만 다툼을 피하자. 부족하니까 아름답다. 새 차를 잘 사용하라는 메시지다.) 라고 마음을 달래면서  평정을 찾을 것이다.  똑 같은 사실을 놓고도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대응 방법이 다르다. 



미국에서 영화 제작으로 거부가 된 하워드 휴즈(Howard Robard Hughes Jr.)는 살면서 많은 돈과 여자를 거느렸지만, 영혼의 빈곤으로 정신질병에 시달렸고, 죽는 순간에 ‘Nothing(아무 것도 아니다.)’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부자 삶을 부정했다. 그는 20억 달러를 유산으로 남길 정도로 물질 부자였지만,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없을 정도로 영혼은 가난뱅이였다. 하워드 휴즈의 이야기는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부족하게 살지만 행복한 사람들도 보고, 반대로 정상에 섰던 사람들, 남들이 볼 때 부족한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분들이 자살하는 사례도 자주 본다.



대청소를 하기 위해 열어둔 문으로 센바람이 들어와 아끼던 난초 화분을 깨트렸다. 난감했다. 깨진 난초는 옆으로 누워서 전혀 내색을 못했지만, 나의 기분은 처참했다. 달라진 것은 화분이 깨진 것뿐인데, 마음은 엉망이 되고 즐거웠던 기분이 사라졌다. 갖다 버리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깨진 화분을 수습하고 새로운 화분으로 옮기고 모양새를 바로 잡자, 더 아름답게 보였다. 생각의 기준만 낮추면, 아쉽고 부족하기에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완전한 상태에서 산다면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부족하기에 노력을 하고, 미워하면서 속으로 사랑한다. 싸운다는 것은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비어 있기에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자기 기대감의 1%만 달성해도 이미 성공한 것이라고 자기를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부족하니까 더 아름답다고 위로하자. 50년 인생을 돌아보면, 경솔하고 해코지하는 상대 때문에 나의 즐거움을 깨지기도 했고, 환경오염과 공해, 불공정과 불리한 조건들, 보이는 음모 등 외부 환경 때문에 마음 고생한 일보다 신중하지 못하여 꿈을 접은 일, 여유가 없어서 즐겁게 살지 못한 일, 가까운 사람마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일 등 내가 만든 원인 때문에 진한 고생을 했다.



살면서 무엇이 가득차고 넘쳐서 즐거웠던 일보다, 부족감과 결핍감을 느끼면서 노력할 때 더 행복했던 것 같다. 아마도 조건이 좋아서 혹은 행운 때문에 웃었던 시간보다도 악조건을 이기고 웃었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전갈은 독을 품을수록 아름답다고 한다. 포장된 아름다움이다. 산 정상의 꽃이 더 아름다운 것은 부족한 상태를 이기고 어렵게 피어나기 때문이다. 잡초를 보면 가슴이 뛰는 것은 잡초는 내세울 것이 없지만 있는 그대로 살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을 안다는 동사에서 발전한 형용사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상태는 나를 알고, 진솔하게 자기를 표현하고 절제하는 것이다. 진솔한 자기절제가 없으면 추해지기 때문이다.



현재가 부족하다는 것은 더 행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위로하자. 길이 없어서 내가 못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 않기에 나의 길이 사라진 것이다. 무엇이 부족하여 불행한 것이 아니라, 악조건을 요행수로 넘기려고 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주체는 ‘나’다.  내가 있어 세상이 있고, 내가 있기에 세상이 의미를 갖는다. 행복을 만드는 주체는 ‘나’다. 나의 선한 마음과 행동으로 행복을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부족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비교의식으로 산만해지고, 피해가도 생존에 전혀 무방한 사소한 일과 작은 피해, 이해하고 무시해도 되는 일인데도 자존심 때문에 마음의 평정을 잃고,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서 존엄한 주체성을 스스로 버린다.  마음은 아무리 수련해도 완벽하지 못한데, 자기 마음과 판단이 최고인 줄 알고 자기 기준으로 싸우면서 모순과 갈등을 생산한다. 태풍을 잠재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공기의 밀도가 같아진 고요함이듯, 부족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은 세고 포용적인 영혼의 중심이다.



우리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존재라고 위로하자. 집착하는 성격, 고정관념, 자기 아집이 있는 한 모순과 상처는 생기기 마련이다. 상대 때문에 박탈감을 느끼고 고통을 겪는다고 원망하지 말자. 나이가 들면 더불어 살되 홀로 서는 의미를 알게 되고, 나가는 것보다 멈출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함을 깨닫게 되고, 때로는 서로 즐겁기 위해 협상도 한다. 세상과 보조를 맞출 수만 있다면 외롭지 않다.저마다 개성이 있기에 내가 상대를 통제하여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산을 움직여 물길을 내는 것보다 어렵다. 대상에 맞추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르다. 내가 즐거울 권리가 있는 것처럼 미물도 다 즐거울 권리가 있다. 남을 움직이는 것은 어쩌면 그의 즐거움을 뺏는 짓이기도 하다. 그대로 두라. 내가 움직여서 기쁨을 누려라. 벌과 나비가 꽃을 찾아가서 꿀을 얻듯, 내가 움직여서 기쁨의 꿀을 찾자.



부족의식과 열등의식이 만나면 먼지보다 작아지고, 마음이 커지면 우주를 압축할 정도의 기운을 갖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주체는 ‘나’라고 선포를 하자. 나는 내 행동을 주관하는 황제다. 황제는 신하들 눈치를 보지 않는다. 황제는 바람처럼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다. 심신의 자유로움으로 즐거움을 만끽한다. 우리는 태생이 강한 존재이지만, 어디에 묶이면 위대한 허깨비가 되어 스스로 자유와 존엄성을 잃는다. 마음이 눈이 자기기준에 묶이면 있는 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고, 기분 나쁜 일에 마음이 잡히면 위축되고, 징크스에 묶이면 멀쩡한 바보가 된다. 부족할수록 이해하고 거두는 감성이 풍부해지면, 마음은 괴로워도 즐거움 쪽에 서고, 아침 햇살을 보면서 살아 있음에 가슴이 뛰고, 기어가는 개미를 보면서도 용기를 낸다.

부족함과 체념이 만나면 가능성과 즐거움을 파괴하는 신종 괴물이 생긴다. 부족의식이 만든 걱정과 근심은 나의 즐거움을 통째로 앗아가고, 길을 잃고 헤매는 욕심은 불만 꾼으로 만들고, 습관과 취미, 인터넷과 약물 중독은 이미 있는 즐거움마저 쫓아버린다. 어린 코끼리가 쇠말뚝에 묶여서 큰 고통을 체험해 보면, 큰 코끼리가 된 뒤에는 나무 말뚝에 고삐를 걸쳐만 두어도 말뚝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듯, 우리는 자기가 만든 말뚝 - 징크스와 속설, 환상적 예언, 체면과 형식, 위축과 병적인 완벽함, 명예와 명분, 돈과 물질에 잡히면 한 발짝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묶이고 포기하면 심신의 자유는 사라지고, 즐거움은 그림자 속의 빛처럼 존재하지 못한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해야 행복하다. 저돌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자기 기준으로 싸우고, 화내고, 많이 다툰다. 잠시 진정하고 참고 피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을 예민하게 반응하여 일을 그르치고 평화를 잃는다. 나이가 들면서  ‘동네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갔다.’는 한신 장군의 일화를 통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얻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즐겨야 하지만 피할 수 있는 일, 부정적인 생각, 안 해도 무방한 일, 원하지 않는 일은 자기 의지로 피해야 한다. 우리는 선택도 할 수 없고,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괴로운 일보다, 피할 수 있는 것을 의지와 용기 부족으로 피하지 못해 고통 받고, 인간관계를 깨고, 몸부림치고, 더 큰 고통을 번다. 우리는 내 의지로 피할 수 있는 일, 영혼이 원하지 않는 일을 스스로 피할 때 다툼이 줄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영성으로 고통을 즐기는 고성능(高性能) 인간이 되자. 우리는 부족함의 고통을 피해갈 수 없다. 자기모순의 결과든, 운명이든, 해코지를 당해서든 어떤 형태든 고통을 겪는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 없듯, 고통은 고민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고통이 오면 무시하든, 자세를 낮추든, 영적 우위에 서서 고통을 치유해야 한다. 고통을 준 상대와 맞대결하면 고통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같은 주파수의 작은 마음끼리 부딪히면 서로 싸움과 미움이 생기고, 작은 마음과 겸손이 부딪히면 동정심이 생기면서 싸움이 그치고, 마음과 영성이 부딪히면 평화가 생긴다. 마음은 수련으로 완전해 질 수  없다. 영성은 자기를 버리고 낮추는 곳, 깨우침 에너지가 동할 때 생긴다. 마음 위에 존재하는 영혼과 영성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행복한 인생 만들기 >칼럼을 찾아주신 독자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3월 2일부로 소리전화 회사, 전략사업본부장으로 부임하였습니다. 
   <소리로 온 세상을 구하겠다.>는 원대한 취지로 입사를 하였습니다. 
 
   회사 중책을 맡아서 많이 바쁜 몸이 되었지만,
   앞으로도 좋은 칼럼이 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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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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