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이 행복이다.

입력 2011-03-04 15:35 수정 2011-07-28 17:27


생각 진화 11. 삶 - 아무리 괴로워도 죽음보다 괴로울까?












모임을 마치고 밤늦게 택시로 복귀하다가 추돌사고를 당했다. 온 몸에 멍이 들고, 쑤시고, 마음마저 혼미했다. 괴로웠다. 사고를 낸 운전자자가 밉고, 짓밟고 싶을 정도로 악감정이 생기다가도,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했고, 감정은 순화되었고 살아 있음에 감사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속담은 삶이 아무리 괴로워도 죽음보다 괴롭지 않다는 뜻이다. <세네카>는 죽음은 굴레를 벗기는 일이면서 존재를 사라지게 한다고 했고, <아우렐리우스>는 죽음은 삶 뒤에 오는 광대한 시간이자 끝없는 공간이다고 했다. 삶과 죽음을 낮과 밤처럼 연결된다고 본 것이다. 삶을 기준으로 보면 죽음은 기분 나쁜 단어다. 괴롭고 힘이 들 때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부질없고 헛된 일이라는 자기 마취로 고민은 작아지고, 감사할 일은 많아진다. 자기가 만든 상처를 스스로 위로할 수 있다.





죽음의 문제는 누가 어떻게 정의하고, 정리해도 죽음의 비밀이 풀리기 전에는 영원한 미완성의 글이 되겠지만, 죽음을 삶과 연계해서 정리하고자 한다. 필자는 반세기 인생을 살면서 여러 형태의 죽음을 목격했다. 어려서 아버지의 임종(臨終)을 보았고, 성장하면서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았고, 군 생활을 하면서 많은 죽음을 보았고, 죽을 고비도 몇 번을 겪었다.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죽음 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과 교훈을 준 것은 장인어른의 죽음이다. 장인어른은 담도암 판정을 받고, 3달간의 투병생활을 했다. 암센터에서도 조치할 것이 없다하여 일산 소재,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시고 간병을 했다. 아쉬우면서도 긴 시간이 흘렀다. ‘잘 있어라. 그동안 고맙다.’는 유언이 있었고, 기계 수치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맥박 105 / 산소 수치 65, 70/40, 20/5 , 0. 띠-띠~~~ 네. 0 00님 운명하셨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겠습니다. 네. 12:40분부로 운명하셨습니다. - 충격, 슬픔, 경황없음, 대혼란, 우왕좌왕, 시간과 공간의 흐트러짐 - 1일차 장례식장에 안치, 2일차 입관 식 거행, 3일차 고인의 유언대로 화장을 했다.



365일X 74년 =‘0’로 정지된 관이 화장을 위한 마지막 절차를 밟았다. 독경과 통곡 속에 불을 켜는 스위치가 작동했고, 1시간 뒤에 관을 안치했던 화덕이 나왔다. 덩그런 엉치 뼈, 흐트러진 등골뼈, 순서를 잃고 부서진 머리 뼈, 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조각 뼈들, 타지 않은 동전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깨끗한 無(무)였다. 고인의 74년의 수고와 고생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고, 뼈 속까지 아린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야 할 가족을 걱정하셨던 따스한 마음도, 병든 몸을 회복시키려고 투입된 약과 주사약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림 재주와 의술을 베푸셨던 손도, 부지런하셨던 발도, 마지막에 복수(腹水)가 찼던 배도 없었다. 뜨거운 불에 녹아 무(無)의 세상으로 사라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함께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인간 생명체의 사라짐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도 슬펐고, 몸서리쳐졌고, 많이도 울었다.



정신적 스승이기도 했던 장인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죽음은 인간 실존의 끝인가? 새로 태어나기 위한 휴식인가? 죽음은 새로운 세상으로 전이(轉移)하는 과정인가?’ 죽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죽음은 두렵고 기분 나쁜 일이다. 무신론자는 죽으면 모든 몸에 깃든 생각과 영혼도 사라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무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유신론자는 신이 부여한 바코드인 영혼은 죽지 않기에 죽음은 천상으로 가는 중간평가로 인식하고, 윤회설을 믿는 인류의 1/2의 인구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살아서 쌓은 공덕에 따라 새로운 몸을 받는다고 믿는다. 죽음을 생명체의 완전한 소멸, 영혼의 소풍을 위한 육신의 껍질을 벗는 탈바꿈, 신의 심판을 받는 과정으로 보는 등 죽음에 대한 신념과 수용은 서로 다르다.

삶이여! 당신을 꿈이라 하기엔 너무도 사실적이고, 죽어가는 과정으로 돌리기엔 너무 허무합니다. 삶에는 개근상도 없지만 한 호흡도 놓치지 않고 노동과 꿈으로 엮어 가리다. 어떤 삶이든 삶은 삶으로서 온전한 진행형임을 알고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오늘을 활동하자. 눈이 자기 눈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삶이 삶을 볼 수 없기에 휴식으로 삶을 살피고, 욕심으로 엉킨 타래를 풀고, 진지한 삶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자. 세상은 불완전한 존재들의 하모니이기에 서로 맞추어 주고, 아픔을 반복해서 제공하는 이와는 서로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 이별하리다. 인생 소풍이 고통으로 마무리되어도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웠다고 노래하자.



죽음이여! 당신은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다. 죽음은 허무의 끝인지? 새로운 부활의 초대장인지? 알 수 없지만 산 적이 없는 자는 죽음도 없음을 알게 하소서! 배우(俳優)는 죽어도 각본만 있으면 다시 연출할 수 있듯, 영혼만 있으면 다시 산다는 믿음을 갖겠습니다. 인생은 졸업장도 없지만, 몸의 인연이 끝나기 전에 새로운 곳으로 가기 위한 진학원서를 쓰리다. 가수 게임에서 탈락해도 부활의 의지만 있으면 다시 가수로 살아가듯, 삶의 의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죽음이 삶에게 언제 오냐고 묻기 전에 삶으로 죽음의 공포를 잊으리라. 어둠을 배경으로 별이 빛나듯, 죽음으로 삶을 더 빛나게 하자.



꿈이여! 당신은 삶과 죽음의 혼재이며 실상과 허상의 공존지역입니다. 삶속에 꿈을 꾸는지? 꿈속에 삶을 사는지? 알 수 없지만, 고통을 잊기 위해 꿈을 꾸리다. 꿈에는 우등상도 없지만 최고의 꿈으로 삶이 양식을 삼으리다. 물이 물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꿈인 듯, 생시(生時)처럼 살리다. 꿈이 때로는 삶을 배반할지라도 그 꿈이 삶을 아름답게 했노라고 노래하자. 고통의 인생 짐을 줄이기 위해 이미 죽은 꿈들과 욕심으로 죽어간 꿈들을 버리고, 평화로운 새 꿈을 다시 꾸자.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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