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없이 오는 행복은 없다.

입력 2011-02-28 11:03 수정 2011-07-28 17:14
 

생각 진화9. 치유 - 아파도 참는 게 인생(忍生)이다.





















파주로 이사하고 창틀에 끼인 이물질을 쉽게 한 번에 제거하려다가 손톱을 깨트렸다. 물론 소량의 피도 났다. 손톱 사이로 피가 솟으면서 세상에 쉬운 일도, 공짜도, 한 번에 되는 일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쉽고 편하게 살려고 했던 마음 자세를 반성했다. 이사를 하고 짐을 풀면서 군에서 받은 지휘봉들을 버렸고, 장교로 임관할 때 수립한 인생계획서를 보았다. <군인의 길, 한길로 매진하여 국가와 민족을 이롭게 한다. 군인으로 죽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다.> 청년 시절의 기상에 잠시 뭉클하면서도, 모진 아픔을 겪고 운명이 바뀐 인생에 우울했다.



30년 전의 나의 제1의 인생계획서에는 실패와 실수, 손실과 낭패, 좌절과 상처라는 어두운 계획, 위기가 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우발 계획도 전혀 없었다. 미래의 아픔을 예측할 수 없었기에 인생계획서에는 큰 아픔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아픔이 찾아 왔을 때 혼란과 충격이 컸다. 제1의 인생계획서는 인생 과업이 추상적이었고, 진급과 출세라는 본심을 영광으로 미화되어 있었다. 제1구간 인생은 전투적인 경쟁으로 즐거운 일마저 아프게 했고, 제일주의의 풍토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평화를 잃었다. 일은 즐거운 삶을 위한 수단에 불가했는데 일이 전부인 줄 알았고, 진급과 좋은 보직이 행복인 줄 알았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쉽게 일이 성사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일은 높게 인정받으려고 하면서도 타인의 가치는 낮추려고 하다가 다툼을 만들었고, 홀로 하려다가 외로운 생활을 했고, 일을 쉽게 하려고 하다가 실망과 두려움이 생겼다. 학생이 공부를 쉽고 하려고 하면 공부가 지겨워 지고, 직장인이 일을 쉽게 하려고 하면 일에 빈틈이 생기고, 군인이 훈련을 쉽게 하려고 하면 전쟁이 두려워진다. 지금 서로 엇물린 세상은 일을 쉽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지만, 설사 일이 쉽게 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행복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운동 삼아, 혹은 정신 수양 삼아서 해야 한다.



시인, 류 시화의 잠언시집<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을 읽고, 일이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끼며 제2의 인생계획서를 작성했다. 평온하고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위해, 운명이라는 단어로 과거를 정리하고 <행복한 길을 가자. 가까운 사람부터 즐겁게 하고, 산 자의 행동 특권을 마음껏 누려서 진정한 행복을 만들고, 세상에 흔쾌하게 동참하여 인류의 행복을 한 차원 높게 진보시키자.>



아무리 화려한 말도 표현 수단에 불가하며, 화려한 포장도 내용물이 될 수 없다. 껍데기 포장술로 유혹하고, 말로 승부를 걸 수 없고, 성형으로 얼굴을 꾸밀 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고와질 수는 없다. 전문 지식은 한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아는 것에 불가한데 전문지식으로 권위를 세우려고 하고, 높은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은퇴해서도 전관예우와 특별연금을 받으려고 한다. 쉽게 살려는 풍조는 위아래가 없다. 이대로 쉽게 살려는 풍조가 계속되면 육체는 생산성을 잃고, 정신은 무사안일과 두려움, 성급함과 자괴감에 빠져 강인함을 잃는다. 아픔의 기초가 튼튼해야 행복의 건물도 튼튼하다.



인생은 고난과 아픔을 극복하는 드라마이며, 인간은 아픔으로 행복을 빚는 도공이다. 누구나 하나씩의 아픔, 작은 아픔도 있고, 친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하는 깊은 아픔도 있다. 정신적 아픔, 식탐과 운동부족으로 건강 적신호, 색에 대한 집착으로 추해가는 자화상, 예민함으로 마음의 평정을 잃는 정신질환, 배신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자기 실수로 인한 자괴감, 죽음의 공포 등 자연이 제공하는 아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상극의 아픔도 있다.

아픔이여! 너는 손톱 밑에 박힌 가시이며, 잠재의식에 박힌 악마의 발톱이다. 인생은 고해이기에 아플 수밖에 없지만, 아파서 아픈 것보다 마음 때문에 더 아파했습니다. 누구나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아픔만 이야기했습니다. 아픔 없이 행복할 수 없음을 알고 아픔으로 행복을 만들자. 이길 수 있는 아픔이라면 더 큰 아픔을 데려올 수 없도록 야비하게 밟으리다. 폭풍우를 겪지 않고 피는 꽃이 있다면 그 열매를 받지 않으리다. 새로운 봄날에 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아픔으로 성장하고, 행복은 아픔의 고지에 짓는 성전(聖殿)이라고 노래하자.



진통이여! 너는 밤이면 욱신거리는 썩은 어금니이며, 아픈 기억만 회생시키는 불사조다. 아픔 없이 성장하는 생명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픔을 피하고자 했고, 진통제로는 아픔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프면 진통제를 먹었고 위까지 아프게 했습니다. 아픔을 치유할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것을 알고 아픈 만큼만 아파하자.



아픔으로 아픔을 낳는 암수 한 몸의 아픔 벌레를 만났습니다. 아픔 벌레가 두려워서 밟으려고 하는데, 그 벌레가 웃으면서 ‘나를 죽이면 작은 기쁨마저 아픔으로 변할 거라고, 하여 죽이지도 못했습니다. 인생고해(苦海)를 먹어치울 아귀가 없다면 아픔의 덫을 식별하는 눈이라도 주시고, 아픈 기억을 매장하는 마음의 삽을 주소서! 행복을 만드는 발명품이 없다면, 행복한 기억을 오래 유지하는 마음의 보온병을 주소서!



치유여! 당신은 고난 극복으로 감동을 주는 소설이며, 있음으로 없음을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세계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달리는 마차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 아픔도 겪지 않고 치유되기를 바랐고, 나쁜 날씨가 사람을 부지런하게 한다고 말하면서 악조건을 피하고 싶어 했고, 일을 이루려면 최소 3번의 실패를 거쳐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아픔이 오면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태풍이 식물을 강하게 하듯, 행복은 아픔으로 익는다는 사실을 알고 아픔을 즐기자. 앞으로도 아픔을 줄 것이라면, 어려움은 웃음으로! 쉬운 일은 신중하게! 힘든 일은 즐겁게! 라는 엉터리 독해법을 전수해 주시고, 아파도 참는 게 인생(忍生)이라고 말해 주세요.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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