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마음의 본성(本性)에 있다.

입력 2011-02-26 22:25 수정 2011-07-26 16:55




습관 진화 4. 본성 다듬기 - 자기 본심만큼 행복하다.











“형체도 없는 고민을 잡고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픔을 치유해야 행복할 수 있나요?”

“아픔은 마음으로 치유할 수 없습니다. 아픔을 만든 것도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탈바꿈으로 새로운 몸과 마음을 창조하세요. 행복은 자기 마음의 본성에서 나오는 향기라고 봅니다.”

이 메일로 아픔을 호소하는 독자와 나눈 필담의 일부다.





본성 때문에 슬펐던 일과 본성을 다스린 일이 있었다. 하나는 악성 프로그램에 반응하여 평화를 깨트린 일이다. 어느 날 컴퓨터를 켜자, 악성 프로그램을 삭제하라는 배너가 떴다. 무시해도 똑 같은 배너가 자꾸만 뜨기에 <삭제하기> 박스를 눌렀더니 결제를 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컴퓨터를 지킬 사명감으로 결제를 했더니 매달 돈이 빠져나갔다. 더 당하지 않으려고 프로그램을 지워버려도 성가시게 자꾸만 떠올랐다. 나쁜 기계(프로그램)에게 시간과 자유를 뺏겼다고 생각하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아뿔싸, 죄 없는 컴퓨터가 주먹에 맞아 깨져버렸다. 주범은 기계 언어를 이용하여 돈을 빼앗는 프로그램 양아치인데, 평정심을 잃고 전달자에 불가한 컴퓨터를 망가뜨렸다.



약을 먹어도 치료가 되지 않는 손톱무좀이 성가시게 했다. 통증이 올 때는 손가락을 잘라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하필 나에게 이런 아픔이 있을까? 원망도 하고, 손톱 깎기로 끝 부분을 잘라내어 피를 흘리기도 하고, 바늘로 후벼 파보았지만, 뿌리 깊은 무좀 조직은 그대로 붙어 있었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류 시화 시인의 <들풀>이라는 시, -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를 읽고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라는 화두를 잡고 나서야, ‘이 무좀도 살려고 태어났구나! 나의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자, 라고 생각했고, 아파도 그대로 방치를 했더니 손톱무좀이 사라졌다.



컴퓨터 파손 사건과 무좀 치유 과정은 내게 ‘행복은 이삭줍기가 아니라, 자신의 본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라는 화두를 주었다. 마음은 모든 판단과 결심의 우두머리이자, 행동의 뿌리이면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지배했다. 행복은 마음에 있었다. 어둠을 먼저 보는 마음은 작고 어두운 골목으로 찾아가서 스스로 부정적인 행동을 했고, 마음이 걸림 없이 날개를 펴지 못하면 마음은 구겨진 휴지처럼 접히고 초라했다. 부정적인 마음을 생각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면 더 달라붙는다. 어떤 마음을 지우려고 하면 더 크게 자라나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실이 고통스러워도 받아들여서 녹이면 힘이 생겼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고 가능성과 희망의 유도장치를 가동하면 사소한 일, 상상속의 의심, 징크스, 두려움은 사라졌다. 행복은 1차적으로 마음과 나의 의지에 존재했다.



변하지 않는 본성이 있고 본성만큼 행복하다. 운명이 길흉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본성이 운명을 좌우한다. 우리가 실수하고, 고통 받고, 불행에 빠지는 것은 불완전한 마음이 육신을 끌고 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선과 악, 완전과 불완전 사이에 놓여서 갈팡질팡 한다. 마음은 우주의 팽창처럼 끝없이 상상하면서 새로운 창조도 하지만, 마음이 작아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고 상식 이하의 엉뚱한 짓을 한다. 마음이 어둠과 손을 잡으면 불편하고 칙칙한 행동을 하고, 어두운 마음을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면 더 달라붙는다.



마음은 작은 아집에 잡히면 변덕을 부리고, 마음이 불자(不字) 언어들(- 불안, 불만, 불평, 불확실, 불완전-), 무자(無字) 언어들 (-무지, 무시, 무책임, 무성의, 무계획-)과 동맹을 맺으면 마음은 철옹성을 쌓는다.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마음이 옳다 그르다는 특정한 기준이 있을 수 없지만, 마음이 어디에 묶이면 자기 성벽을 뛰어넘지 못한다. 마음이 만드는 행복도 자기 꼴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마음은 내면의 대화와 상호 교감에 의해서 시공을 초월하는 위대한 힘도 있다. 열린 마음은 진보한다.



행복은 자유로운 마음에 있다. 나의 자유를 억압하고, 나를 구금하고 구속하는 것은 타인과 불공정 사회가 아니라 굳어 있는 본성과 마음의 질병이다. 자유를 막고 주저하게 하는 고삐를 풀려면 잠자는 영혼을 깨워서, 아파할 때 아파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아닌 것은 아니어야 하고, 멈출 것은 멈추어야 하고, 할 일은 바로 하자. 마음을 비우고 길들여진 타성을 깨트려 심신을 자유롭게 사용하자. 열린 생각으로 선택과 권리에 욕망을 섞지 말고, 세상을 넓게 보자. 넓은 시야로 욕심의 헛됨을 보고, 있는 그대로의 자유와 마음 폭만큼의 행복을 노래하자.



본성(本性)이여! 너는 본디 지닌 성질이며, 같은 각도로 반사되는 빛이다. 본성은 자기 크기만큼 담기는 그릇이며, 마음을 따라가는 행동이다. 본성대로 모양을 짓고 본성대로 꼴값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둡고 굽은 본성으로 큰 요행을 기다렸고, 차가운 말을 하면서 상대가 굽히기를 바랐습니다. 콩 대공에 콩이 열리듯, 인생은 본성의 바늘과 환경의 실이 만나서 만드는 자수(刺繡)임을 알게 하소서! 행복은 별도로 정해진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기 본성만큼 행복하며, 행복한 사람이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나쁜 에너지가 모여서 불행을 준비하기 전에 밝고 바른 본성으로 행복을 만들겠습니다. 변화를 싫어하는 본성이 불편한 자유인으로 만들기 전에, 본성에 갇힌 울타리를 뛰어넘어 제한된 자유를 누리리다.



수련(修鍊)이여! 당신은 거친 인성을 순화시키는 다듬이돌이며, 고정 축에 잡혀서 돌아가는 바람개비입니다. 행복은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수양으로 만드는 제조품임을 알게 하시어, 굽고 거친 마음을 곧게 펴서 행복한 길을 열게 하소서! 행복의 길은 향기로운 꽃길도, 화려한 조명 속에 펼쳐진 고고한 카펫 길이 아님을 깨닫고, 시리고 슬픈 마음을 다듬고 두들겨 행복의 향기를 피우게 하리다. 도구를 부리면서 부림을 당하지 않고, 부하를 부리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통제의 끈을 놓아주고, 인생의 암벽을 수련의 밧줄을 잡고 오르리라. 정상에 올라서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 바람의 자유를 노래하리다.



초월이여! 당신은 깨우침으로 고통을 뛰어넘는 절차이며, 바위에서 꽃의 향기를 느끼는 고고한 상상입니다. 수련으로도 개선되지 않은 본성이라면 싸우지 않고, 웃음과 칭찬을 하리다. 뇌가 발견한 모순과 실수를 탓하지 않고 순간 감성의 초월로 기쁨을 찾으리라. 두뇌와 신의 통로인 온전한 영혼으로 행복을 찾고 노래하리다. 어미 닭과 알 속의 병아리가 함께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듯, 내게 벅찬 것은 신에게로 결재를 올리고 신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혼과 수련의 공조로 최상의 행복을 만나, 영광을 노래하게 하리라.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174명 35%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318명 65%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