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도 요리하면 행복이 된다.

입력 2011-02-06 14:55 수정 2011-08-12 09:55
























행복진화 1 - 불굴의 의지를 갖자.



2004년 3월 30일 20년 군 생활을 접고 전역을 했다. 원하지 않은 전역을 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의 심정은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추락한 기분이었다. 분노의 기운은 오래 동안 뇌세포를 자극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사는 것이 걱정이었고, 과거의 불쾌한 기억은 수시로 불쑥거렸고, 몸에 배인 권의의식은 세상 속으로 동참을 어색하게 했다. 낮에 나온 반달처럼 방황했고, 나의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는 오류에 비틀거렸다.



반복되는 아픔을 이기지 못해 내장이 저릴 정도로 울었지만 대책이 없었고, 옷을 벗은 몸에는 바늘 하나 숨길 공간이 없었고, 나를 방어할 힘이 없었다. 항고(抗告)에서 이겼지만 복직하지 못했다. 질서를 존중하는 조직은 선한 의도를 악으로 판결했다. 나의 성공을 기대하셨던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친구들은 떠나갔다. 나는 스스로 나의 정체(正體)성을 부정했고, 세상을 두려워하는 벌레가 되었고, 벌레의 움츠린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몇몇 부하들이 찾아와 ‘아, 글쎄, 이제부터 더 행복하면 됩니다.’ 라고 위로했지만, 나 자신이 초라하고, 가엾고, 보기 싫었다. 44세, 생을 나의 의지로 마감하려고 강원도 정선에 갔다가 할머니 한 분이 콩 타작을 끝내고 콩을 고르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는 돌만 골라내시고, 벌레 먹고 찌그러지고 덜 아문 콩은 골라내지 않기에 ‘할머니, 찌그러진 콩은 왜 버리지 않나요?’ 라고 질문했더니 할머니는 ‘콩이 찌그러진 것도 억울할 텐데 내가 버리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 덜 여문 콩도 들어가야 달콤한 장맛이 나는 법이여!’라고 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나는 순간 깨우침의 번개를 맞았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쓰임새가 있듯, 내가 겪는 불행 또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행은 고통만 주는 괴물이 아니라 더 큰 영광을 주기 위한 선물이다. 불행을 요리하여 행복을 만들자, 라고 위로를 했다.

그러나 불행을 수용하고 도전하는 세상은 복잡했고 나 또한 복잡한 대응을 했다. 사회로 먼저 나온 동기생이 힘들게 사는 나에게, ‘인생은 아파도 참아야 하는 인생(忍生)이다.’ 라고 위로했다. 그러나 서로 바쁜 사람끼리 위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무의식에 갇힌 아픔을 내가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治癒)하지 않으면 불안과 불행은 반복이 되었다. 사전(辭典)은 불행(不幸)을 ‘완전(完全)하지 못한 상태’로 간단하게 정의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불행은 괴롭고, 불쾌하고, 멍하게 만들고, 식은땀이 흐르고, 목살을 저리게 하고, 삶의 의미마저 앗아갔다. 불안감이 우울함으로 발전하던 어느 날,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인간은 새로 태어나기 위해 자신의 고정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문장을 읽고, 위로를 받았고, 성공이 길을 찾아 잠까지 줄였다.



4각의 링에서 싸우는 권투선수처럼 성공을 위해서 인위, 경쟁, 욕망, 비교라는 인생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싸웠다. 삶 자체가 생존을 위한 폭력이라고 합리화도 하고, 선택과 집중을 성공의 진리로 받들고, 뭔가(물질과 권력) 가져야 품위가 선다고 믿고, 나의 것이 될 것만 같은 상상 속의 꿈을 찾아 꿈틀거렸다. 우월한 돈벌이를 해야 행복한 줄 알았다. 그러나 몸이 바쁠수록 일은 꼬였고, 경쟁과 싸움만 늘어났고, 나의 불행은 계속 되었다.



네팔의 산악인은 최악의 생활을 하는데도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최고로 높다는 발표, 크게 성공한 사람의 자살 소식, 주변에 행복한 사람이 많을수록 상대적인 불행을 느낀다는 외국의 논문을 접하면서 인생은 성공보다 행복에 대한 자기 이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수시로 노출되는 불행은 행복의 방해물이 아니라 에너지라는 사실, 어쩌면 인생은 불행을 요리하여 행복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우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불행이여! 너는 슬며시 찾아오는 감기이며, 불안과 패배의식을 주는 괴물이다. 불행에 떨다가 가기엔 너무도 짧은 인생인데, 기준도 없는 불행에 속고 불행을 두려워하면서 아까운 시절을 허비했습니다. 인생은 불행을 요리하는 과정이며, 아플수록 행복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소서! 작은 불행에 호들갑을 떨지 말고, 피할 수 없는 불행과 아픔을 동반하는 불행이라면 행복이 약이라고 노래하자. 불행의식에 잡힌 자아여, 불행의 꼬리표를 떼고 너 제국의 황제로 돌아가라. 배고프면 밥을 먹듯, 불행할수록 더 행복을 먹자.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이라면 하늘이 너에게 큰일을 맡기기 위한 시련으로 위로하자.



불운(不運)이여! 너는 불행과 안도감의 경계선이며 다시 일어서라는 경종이다. 넘어뜨리는 것은 다시 일어서게 하려는 의도임을 알면서도, 부족과 불운에 상처를 입었고, 상처의 긁으면서 덧나게 했습니다. 불운이 오더라도 고독의 강으로 가지 말고 삶을 채찍질 하자. 미운 종아리에 채찍을 들어서 새로운 힘을 주고, 경쟁으로 끊어진 인간다리를 관심으로 연결하여 정과 사랑이 오고가게 하자. 다시 일어서는 자아여,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불자(不字)의 언어들을 버려라. 이미 너는 가능성의 존재이며 대본이 필요 없는 자유 연출자다. 행운을 바라는 허상의 대본을 버리고 너의 역사를 쓰라. 불운을 겪은 날이면 큰 행운을 얻은 날이라고 기록하라. 강한 자에게 불운은 붙지 않는다.



불굴의 의지여! 당신은 넘어져도 바로 일어서는 오뚝이입니다. 문제는 풀라고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행과 불운에 잡혀 에너지를 낭비하였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의 의지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불행도 불굴의 의지로 이겨가게 하소서! 암반에 뿌리 내린 소나무처럼 슬픔의 뿌리에서 기쁨의 꽃을 피우고 불행의 언덕을 넘어 행복의 정상으로 가자. 불행에 꺾이지 않는 의지가 있었기에 행복할 수 있었노라고 감사의 기도를 하자. 어떤 고난에도 꺾이지 않을 불굴의 자아여, 타인을 의식하는 껍데기 자아를 버려라. 생각, 습관, 행동을 바꾸어 나 자신의 황제로 살아가자. 청춘은 도전한 만큼 청청(靑靑)하고, 중년은 일어선 만큼 중후(重厚)하고, 노년은 신중한 만큼 노련(老鍊)하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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