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와 족제비. - 자기 통제

입력 2010-12-05 12:36 수정 2010-12-05 19:44

경남 진주에, 싸움 잘하는 황소가 있었지.
한 번도 시합에서 져본 적이 없는 전설적 싸움소였지. 550Kg의 거구에 고루 발달한 네다리, 딱 벌어진 어깨와 V자로 날이 선 뿔은 감탄을 자아냈고, 윤기 나는 황색 털 바탕에 사선으로 그려진 검은 색 털, 돌진할 때의 소리와 눈빛은 위압적이었다. (누구도 황소를 육우 가치로 보지 않았다.) 소싸움 구경꾼들은 이 황소를 ‘신(神)이 보낸 황소, 적수가 없는 무적 싸움소’로 불렀지.




무적 싸움소는 무패(無敗)의 기록을 이어가기 위해 주인이 시키는 대로 밀고 당기고 끄는 훈련을 했고, 먹기 싫은 한약재도 벌컥 마시고, 자기 전에는 축사에 설치된 쇠기둥을 미는 훈련을  했어. 무적 싸움소의 승리 비법은 타고난 체질, 철저한 훈련, 눈빛으로 제압하여 이겨놓고 싸운다는 자기  원칙, 일단 붙으면 절대로 밀리지 않는 집요한 근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적 싸움소는 싸움판에서 경지에 이른 기량을 보여주고, 시합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자기가 정한 싸움 매뉴얼대로 싸웠는지를 되짚어 볼 정도로 성실하고 영리한 싸움소였다.  




무적의 싸움소에게 밤이면 접근하는 족제비가 있었어. 무적 싸움소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등에 올라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신임을 얻자 귀청도 후벼주고, 때로는 코뚜레도 갉아서 풀어 주었고. 싸움소는 족제비 소리만 들어도 반가울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되었어. 족제비가 황소에게 공을 들이는 것은 영웅적인 싸움소에 대한 짝사랑이 아니라, 잘난 황소를 자기 꾀로 쓰러트리고 싶은 야심 때문이었는데, 무적의 황소는 족제비의 무서운 음모를 꿈에도 몰랐어.




투우 황소가 100전 100승을 달성하던 날은 TV 카메라가 싸움소 취재를 했고(실제는 주인이 대변을 했지), 배터리 광고 모델로 제안을 받고, 하여튼 소싸움의 모든 기록을 갖고 있었지. 싸움소에 있어 승리는 고달픈 영광이었지만, 주인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은 싸움소를  오만하게 했어. 연습량이 줄었고, 무대에 등장한 싸움소를 보고도 긴장하지 않았고, 상대소가 떨어뜨리는 침이 더러워 뿔을 박고 밑으로 파고드는 기술을 구사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기가 세운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쉽게 이기기만을 바라다가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경우도 있었고, 승부를 내지 못하고 판정까지 갈 경우는 유명세 덕분에 비겁하게 이기는 경우도 있었지. 무적 싸움소의 장점이 모두 단점으로 변했고, 털의 윤기가 빠지면서 자신감도 잃었지. 다급해진 주인이 정신을 차리라고 벌겋게 달아오른 쇠뭉치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결국 무적 싸움소는 시합에서 지고 말았지. 소싸움에서 최초로 지고 돌아온 날이었어. 실의에 빠져있는 싸움소에게 족제비가 접근해서 위로했지.

“무적님! 때로는 질 때도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곳으로 가서 싸우지 않고도 황제 대우를 받으라는 신호입니다. 전설적인 황소가 되시죠?

“새로운 곳이 어디냐?”

“ 여기 산 너머 초원이 있지요.”

“족제비야,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뜻이야. 무적 싸움소의 명예도, 주인으로부터의 대접도, 내가 고민해서 만든 싸움 절차까지 버려야 한다. 난, 덩치가 커서 그곳에 가려면 개미와 쥐들의 집을 파괴할 거고, 나를 묶고 있는 코뚜레와 쇠줄을 끊을 자신도 없다. 싸움으로 얻은 명예를 싸움으로 다시 찾고 싶어. 이곳을 떠날 생각은 없어.”

“그럼, 지금처럼 피터지게 소싸움을 하고, 고난의 영광을  유지하시겠습니까? 코뚜레와 쇠줄은 제가 끊을 테니, 소싸움을 하지 않고도 황제 대접을 받는 자유의 초원으로 가시죠?”




족제비의 진지한 간청에 황소가 침묵하자, 족제비는 황소의 자유를 묶는 코뚜레와 쇠줄을 잘라주고, 새로운 초원을 향해서 가게 되었지. 초원에 당도하면 족제비의 말이 거짓이 드러나게 되므로  족제비는 때를 놓치지 않고 황소의 목줄을 물고 조였다. 황소는 소싸움은 천하무적이지만, 작은 족제비가 목을 무는 것에는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숨이 막혀 똥을 싸며 주저앉고 말았다. 거물 인사(人士)가 측근의 농간에 주저앉는 것처럼 황소는 자신의 생명과 명예를 쉽게 종결시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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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싸움소가 족제비에게 당한 이유는 뭔가?

바둑 게임이 끝나면 전체 국면을 다시 두면서 분석하듯, 무적 싸움소의 죽음을 분석해보자. 황소가 목숨을 잃은 이유는 (겉으로 호의를 베푸는) 족제비의 음흉한 의도를 모르고 경계심을 푼 점도 있지만, 목숨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절제력과 정보부족으로 자신에게 자기가 속기 때문이다. 족제비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환상의 성(城)에 갇혀 고통과 모순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누가 허황된 조건을 제시할 때 순간 판단력을 잃고 말리면 그동안의 명예와 자유를 잃는다. 




‘나’라는 작품은 내가 완성해야 할 예술품.

인간은 누구나 남과 차별화되는 신화적 자아, 아름다움(매력)이 있고 존경을 받는 완성된 자아, 마냥 행복한 자아를 꿈꾼다. 자아를 찾기 위해 간절하게 준비와 노력을 하고, 참기 어려운 고난도 참는다. 문제는 자아를 찾더라도 자기 통제라는 지속적인 에너지가 없으면 좋은 결과와 행운을 얻지 못한다. 비 맞은 소똥은 행인의 코와 눈을 어지럽히지만, 바싹 마른 절제된 소똥은 화석 연료가 된다. 절제된 소똥이 화력 가치가 있듯, 인간도 절제력에 의해 인간 품질(등급)이 변한다. 자기 절제, 자기 규제는 성공의 요인이면서 자기를 완성시키는 에너지다.




자기통제 원칙을 세우되 원칙 속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

보이는 것이라고 안전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방심하지 마라.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나를 지키려면 자기 원칙을 지키면서 그 원칙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두뇌의 학습으로 만든 원칙과 감각이라고 모두 진리일 수는 없다. 때로는 허상일 수가 있다. 원칙을 지킨다고 지나치게 자기를 억압하고 지나치게 신중하면 때로는 영혼마저 자기 성에 가둔다. 영혼은 우주로 멀리 뻗어나가 반짝이는 별이 되고, 빛나는 태양을 품고,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아름다움을 행동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자기 원칙 때문에 영혼을 가슴에만 가두어 두면 아름다움을 잃고, 매력적인 자기로 완성할 수 없다.




자기통제를 통한 행복 창조 법 <우화 법률 102조 5항>

1.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상대가 몸을 굽힌다고 마음까지 굽히는
    것은 아니며, 바둑판을 서로 다 보면서 쉽게 이기지 못하는 것은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2.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가 만든 원칙에 자기가 결려들어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자기원칙을 세우되 자기 원칙에 갇히지 마라.
    자기만의 아집의 성을 쌓으면 그 성에 갇혀 스스로 구속받는다.

3. 성공을 위한 자기 원칙과 통제만큼 남의 마음을 읽는 절차와 훈련이
    필요하다. 남을 읽는 것은 나의 영역을 넓히는 길이며,
    실패를 줄이는 처방전이다. 

4. 힘은 자기를 보호하지만 힘 때문에 죽기도 한다.  권력가가 무너지는
    것은 거대한 힘을 규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5. 독선과 아집이 만든 오만은 약이 없다. 오만은 진실과 목숨을 잃게 한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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