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배우는 행복 만들기 원리.

물질의 혼돈과 정신 공황시대에 행복에 대한 개인의 관심도가 증가하고 있고, 행복을 화두로 삼는 정치인이 많아졌다. 현 정부의 행복위원회 출범, ‘소외된 사람 없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박근혜, 지난 대선 때 ‘가족 행복시대’를 내세웠던 정동영 등 행복이 정치이슈로 등장했다. 행복을 갈구하는 국민 속으로 정치인이 끼어들었다는 인상도 주지만, 행복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기에 정치인도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행동과학의 세계적 권위자, 에드 디너 교수가 최근 한국의 학술대회에 참석해 "130개국 13만 여명을 대상으로 행복 여론조사를 실시해보니, 경제규모 세계 15위인 한국의 행복도는 5.3점으로 130개국 평균인 5.5보다 낮다.” 고 했다. 그 이유로 한국인은 물질 중심적이기에 행복도(幸福度)가 낮다고 분석했다. 디너 교수는 한국 사회가 물질 중심으로 계속 가면 경제는 성장하더라도 행복도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인의 행복도를 낮추는 이유가 물질집착 때문일까? 설문 조사에 의하면 ‘정치가 개인 행복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80%에 이른다. 위독탈투병(위장전입, 독선, 탈세, 투기, 병역 기피)으로 서민정서를 해치는 한국의 정치를 보면 일리가 있다. 정치와 행복은 어떤 함수 관계에 있는 것일까?

정치의 최고 직능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정치(政治)를 기능적으로 정의하면, 함께 살기 위해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려는 내부 투쟁이며, 체제에 도전하는 외부 세력을 응징하기 위한 위기관리와 외부 투쟁이다. 정치(政治)를 이상적으로 정의하면 백성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백성이 통치의 대상도 아니며,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해 위임된 자리를 차지하려는 투쟁이 아니다. 부탄의 국왕은 국민의 행복지수를 직접 챙긴다고 한다. 정치에 문법은 있어도 논리는 없지만 행복관련 정치 이론을 보면, 19세기 영국 공리주의(功利主義) 철학자 벤담은 그의 저서 <도덕과 입법(立法)의 원리>에서 개인생활의 목표는 행복이고, 정치의 직능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추구라고 하면서 정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로 보았고, 노자는 도덕경에서 ‘정치는 백성들로 하여금 욕심이 없게 하여 마음은 비게 하고, 배를 채워주는 활동’이라고 하면서 교화정치로 백성이 자연의 행복을 찾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복을 만드는 원리는 정치다.

행복도 정치다. 정치는 권모술수, 강제 통제, 냄새나는 무리배의 이미지인데, 행복도 정치라니? (흥분하고 놀랄만하다.) 만물의 원리는 서로 통하고, 진흙탕 속에서도 꽃은 핀다. 정치의 속성을 통해 행복을 만드는 원리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상적인 행복은 난초처럼 고고하고 향기를 풍기는 고도의 정신 에너지에서 생기지만, 정신적 경지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행복은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하다. 정신 에너지는 만족감과 평안을 주지만 육체까지 동시에 지배하지 못한다. 대다수의 행복은 인위적 수련과 자기관리를 통해서 얻는다. 정치가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면 행복은 내부 욕망과의 자기 싸움이며, 정치(政治)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라면 행복은 자기를 다스리는 일이며, 정치가 체제유지를 위한 외부와의 투쟁이라면 행복은 대인갈등을 조율하고 더불어 사는 기술이다. 정치의 속성을 통해 행복을 만드는 절차와 방법을 배워보자.

1) 행복은 욕망을 제어하여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싸움이다.

정치의 발판은 제도권으로 진입이다. 정치는 자기 정체성을 판매하여 국민의 의지를 위임받고, 권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적과의 내부 투쟁이라면, 행복은 행복을 방해하는 욕망과 불안감을 제어하는 자기 싸움이다. 자기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행복의 무대로 나갈 수 없다. 자기관리가 안 되는 사람이 정치 무대에서 버티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그냥 생기는 행복은 없다. 복잡한 세상은 행복을 그냥 주지 않는다. 행복을 방해하는 다양한 요소들 - 불안감과 결핍감, 대립과 갈등, 두려움과 탐욕 등 - 을 과감하게 차단, 통제, 해소시킬 수 있어야 행복의 주체가 된다. 행복을 약화시키는 내부의 불행 요소를 극복하고 최소화시키려면 자기 충격과 자기 의지로 통제를 해야 한다. 정치인이 위임 받은 권력을 남용하거나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면 오래 버티지 못하듯, 자기 행복을 위한 자기 의지가 너무 강하면 더불어 찾는 행복이 깨진다. 홀로 행복을 만들 수는 있지만 홀로 행복을 지킬 수는 없다.

2) 행복은 자기를 다스려 자기 의지를 펴는 정치다.

정치의 본질은 다스림이다. 정치는 백성이 위임한 의지를 받들어서 국가(조직)를 좋은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활동이다. 정치가 국가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공통의 가치체계(국시)를 세우고, 다수의 이익을 위해 국가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법에 근거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라면, 행복은 자기 정체성을 세우고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 방향을 찾고, 양심에 준하여 자기를 다스리는 일이다. 정치가 힘에 의해 움직이듯, 행복 또한 힘에 의해 움직이고 진보한다. 권력자의 의지와 정신에 의해 다수의 행복지수가 영향을 받듯, 행복은 나의 의지와 자기 관리에 지배를 받는다. 최고의 권력자도 자기 통치에 실패하면 무너지듯, 자기 행복도 자기관리에 실패하면 행복을 유지하지 못한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려면 목적과 수단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돈과 밥벌이는 행복의 수단이지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수단이 목표가 되면 행복은 자동 소멸이 된다. 행복의 자리를 존중하지 않는데 머물 행복은 없기 때문이다.
3) 행복의 적을 포용하거나 강제해야 한다.

정치는 외부의 위협을 제어하는 외교력이다. 어떤 조직이든 체제를 위협하는 내외부의 적이 있다. 정치판에는 내부의 적, 반체제, 외부의 적 등 다양한 저항 세력이 있다. 적을 구분하고 응징하고, 자기 의지에 따르도록 하는 강한 힘이 없으면 체제 유지가 어렵다. 정치는 질서 유지와 외부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외교를 하고, 정치의 최후 수단으로 전쟁도 한다. 개인의 행복을 방해하는 외부 세력들이 있다. 자기만을 생각하는 인간 무리들, 선하게 살아도 무시하고 시비 걸고 무례한 상대, 무한 희생을 강요하는 조직은 분명 행복의 적이다. 대인 갈등을 관리하고 해소시키지 못하면 개인은 행복할 수 없다. 힘을 행동으로 보여주거나, 힘이 없다면 포용하고 수용해야 한다. 정치가 자국을 보호하고 자국의 의지를 강요하는 전쟁이라면, 행복은 방해 세력을 다스리고, 제어하고,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가능하다.

필자는 희망한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 모순과 고통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서로 사는 방향으로 노력과 지혜가 모아졌으면 한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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