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경계하는 이야기가 있다.
불교 초기경전인 <아함경>에 ‘만족을 모르는 탐욕에 빠지면 재앙과 쾌락이 붙어 걱정과 괴로움이 떠나지 않고, 아무리 고생해도 부자가 되지 않고, 온갖 악업을 짓고 남까지 해쳐 사후에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탐욕을 경계하는 말씀이 있고, <마태복음) 21장 12절>에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가 탐욕스런 환전(換錢)꾼을 내쫓으며 강도에 비유하는 이야기가 있다. 욕심은 인간의 본성이며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기초 동력이지만, 욕심이 지나치면 탐욕으로 발전하여 탐욕으로 망한다. 역사 속의 모든 전쟁, 종교 갈등과 종교전쟁, 문화충돌, 세계적 금융위기는 모두 탐욕의 산물이다. 탐욕은 그칠 줄 모르는 재물과 색에 대한 욕심,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탐욕은 만병의 근원이며, 마음의 평화를 깨고, 함정에 빠트리며, 일의 성공을 방해한다. 행복하려면 왜 탐욕을 버려야 하며, 어떻게 탐욕을 경계할 것인가를 살펴보자.

1) 하나 밖에 보지 못하는 탐욕을 경계하라.

육체와 호르몬에 프로그램 된 욕망은 의욕과 활동을 만드는 순기능도 있지만, 욕망이 지나치면 지저분한 탐욕으로 발전한다. 탐욕은 자기 하나만 보는 외눈박이다. 지금 자기의 행위가 탐욕에 빠진 것을 모르고, 자기 욕심은 정당하고, 남이 욕심을 내면 추하다고 비난한다. 탐욕은 균형 감각이 없기에 상한선이 없고, 만족을 모르기에 영원히 채울 수 없고, 금지할수록 반대로 가는 청개구리 속성이 있다. 집요한 탐욕의 잡초는 영혼이라는 산삼 밭을 폐허로 만든다. 탐욕이 앞서면 이성은 마비되고 행동의 리듬이 깨져서 되던 일도 장애가 생긴다. 환상과 결합된 탐욕은 순서와 순리를 잃고 무작정 돌진을 하다가 육체는 건강을 잃고 병에 걸리고, 마음은 깨진 유리그릇처럼 원형을 잃는다. 행복하려면 몸과 정신의 조화, 물질과 영혼의 결합으로 내 속의 지나침을 조절해야 한다.

2) 두 얼굴의 탐욕을 이해하라 - 지나침과 안주(安住)

욕심이 자기 위주로 지나치게 흐르면 탐욕이 된다. 탐욕은 능력과 여건 이상으로 지나치게 추구하는 넘치는 탐욕과 자기 할 일도 안 하고 지나치게 편해지려는 안일의 탐욕도 있다. 이익을 위한 인위적 욕심과 음모, 노력 이상의 기대, 중소기업의 기술과 인재 가로채기, 과장 광고로 유혹하기 등은 넘치는 탐욕이며, 노동 조건을 갖추고도 노는 행위, 자기 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나에게 떠넘기기, 놀면서 재미있게 살려는 풍조는 안일함의 탐욕이다. 2가지 탐욕은 자기만을 위해 생각에서 생겨나, 마음의 눈을 가려 오판을 만들고, 자기 기준의 상상과 활동으로 고난에 빠진다. 그늘 속에서 태양을 볼 수 없듯이, 탐욕에 빠지면 이성과 순리를 잃고 하루살이처럼 눈앞의 작은 이익만 얻으려고 하다가 건강과 행복을 잃는다.
3) 세상은 탐욕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터넷 도구는 국경선과 영역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면서 마우스만 잡으면 세상 어디에 무엇이 있고, 누가 무엇을 하며, 제품의 질과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소비자는 온 세상을 제품을 대상으로 질을 고려하고, 이왕이면 질이 좋으면서 싼 것을 찾는다. 월가에서 비밀스런 파생 상품을 만들어 잠시 이익을 봤지만 세상을 혼란시켜 왕따가 되었다. 이제 인터넷 정보가 완전 개방되면 소수만의 비밀은 통하지 않는다. 규제에 걸리거나 눈 밝은 네티즌에게 당한다. 국민을 위한 진정성 없이 인기 정책과 말로만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고 하면 표로 심판을 받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네티즌에게 철퇴를 맞고, 자녀의 진정한 재능도 모르면서 막연한 성공을 위한 사교육은 가정경제를 거덜 낸다. 탐욕은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생산하지만 지나치면 지나친 만큼의 고통을 돌려준다. 세상은 탐욕을 허용할 정도로 쉬운 구조가 아니다. 서로 연결되어 서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4) 내 안의 탐욕부터 살펴야 한다.

이제 완전하게 열린 세상, 소비자가 시장을 평가하는 세상, 감성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되면 탐욕세력은 기반을 잃는다. 탐욕 세력을 저주하기보다, 나도 모르게 범하는 내 안의 탐욕을 살펴야 한다. 먼저 이익 때문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일은 없는지? 반대로 쉽게 살려고 요령을 부리고,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는 일은 없는지? 자기를 과시하는 소비,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소비로 짧은 쾌감 뒤에 인품까지 잃는 일은 없는지? 당장은 이익이지만 장기 손실을 초래하는 우매한 탐욕, 이상 징후를 읽고도 멈추지 못하는 관성적 탐욕, 세상 정보도 모르고 열정 하나만으로 투자하다가 손해를 보는 탐욕, 작은 결과를 얻으면서 사람을 잃는 탐욕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세상에 쉬운 일도, 공짜도, 홀로 되는 일도 없는데, 자기만의 이익을 사냥하기 위해 애쓰고 몸부림치는 일은 없는지? 세밀하게 살펴보다. 나에게도 탐욕이 있다면 지독한 절제력으로 제거해야 한다.

5) 오기를 부리면 삶이 피곤하다.

능력 이상의 활동은 탐욕이다. 탐욕은 무리를 부르고 무리는 고통을 의미한다. 자기 집을 통해서 얻는 삶의 질과 정신적 안정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2억 대출을 끼고 5억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실제 원금 7억에 대한 이자를 부담하면서 산다는 이야기다. 남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신종 탐욕이 증가하고 있다. 지식인의 아이디어와 중소 업체의 특허 기술이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현대의 유통 패턴은 개인이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인 프로슈머인데, 서로 상대 가치를 인정하고 적정한 대가를 치루지 않고, 자기 생산물은 비싸게 팔고 남의 것을 싸게 사려는 풍조가 전체 시장에 개입하면 소비와 생산이 동시에 위축이 되고, 자기 기준의 값을 받으려면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무수한 대책회의와 실적 강요가 따르고, 생존하려면 야근을 해야 한다. 자기 능력 이상의 탐욕은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남을 인정하지 않는 신종 탐욕은 사회의 발전을 막고 서로 살기 어려운 세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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