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지 못하는 상상과 생각은 무의미 하다는 우화가 있다.
참새 3형제가 전기 줄에 앉아서 뭉게구름을 감상하고 있었지. 3형제는 같은 구름을 보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했어. 쌀 알 먹기를 좋아하던 장남 참새는 ‘하얀 쌀 덩어리를 실은 저 구름이 바람 타고 나에게로 오면 좋겠네.’ 멋진 비행을 꿈꾸던 차남 참새는 ‘가볍게 둥실 비행할 수 있도록 저 새털구름 한 자락 베어다가 내 날개에 붙였으면 좋겠네.’ 게으른 막내 참새는 ‘높게 떠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움직이는 저 구름에 살면 좋겠어. 그리고 목마르면 구름 조각을 베어서 먹고 말이야.’

참새 3형제가 서로 다른 상상을 하는 도중에 구름은 사라졌고 참새 3형제의 꿈도 끝이 났다.

인류는 물질세계의 속성을 물리법칙으로 정립했지만, 정신의 속성을 다룬 정신의 법칙을 세우지 못했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자유분방하고, 형상으로 잡을 수 없고, 검증을 할 수 없기에 어떤 객관적 법칙을 만들 수 없다. 다만 인간의 정신이 녹아 있는 문학을 통해서 정신세계를 살필 수 있다. 정신세계를 물질 현상에 비유한 말들이 많다. ‘내 마음은 호수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 황금 보기를 돌을 보듯 하라.’등 그리고 차를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고기를 먹으면 정신이 흐려짐을 느낀다. 이를 종합하면 물질과 정신은 배타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섭(삼투)하며 영향을 준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물질계의 질서를 설명하는 물리법칙을 정신세계에도 준용할 수 있고, 물리법칙에서 행복의 법칙도 찾을 수 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여기까지 이해가 어렵다면 이 글은 뛰어넘어도 무방하다.

관성의 법칙과 행복의 발견

제1의 물리 법칙인 관성의 법칙은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운동하려고 하고, 정지된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는 물질의 속성을 말한다. 인간의 정신도 관성의 속성이 있다. 관심 분야만 생각하고, 아는 만큼만 볼 수 있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아픔이 따르는 일은 피하려고 한다. 관성의 법칙을 정신세계에 준용하면 인간의 마음은 운동하는 물체처럼 변함없이 한 방향으로 품는 항심(恒心), 정지된 물체처럼 어느 특정한 생각에 묶이는 집착, 물질 속을 뚫고 나가는 중성자처럼 통찰과 깨우침이 있다. 항심은 바탕이 되는 마음으로 자기 철학과 가치관, 습관과 태도, 기존 관계를 지키려는 의리, 삶의 축으로 삼는 종교관 등에 영향을 준다. 인간 정신의 관성 요소로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1) 생각 속에 행복이 있다.

화가의 그림은 손이 아니라 마음속의 구체적 형상에서 나오듯이, 구체적 생각이 행동을 만든다. 긴요한 생각은 긴요한 행동을 만들고, 행복해지려는 생각은 행복을 만들고, 불행을 생각하면 불행한 짓을 한다. 인생에서 행복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행복이라는 큰 목표를 세우고, 행복을 얻는 일에 구체적 생각을 해야 한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행복 목표, 서로 행복하려는 양보,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서 행복 찾기 등 구체적 생각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발견해야 한다.



2) 집착을 끊는 곳에 행복이 있다.

집착은 자기 생각과 일에 묶이는 자기애(自己愛), 자기만 앞세우는 좁은 행위로 집착은 고집스런 행동을 만든다. 돈에 집착하면 얼굴이 동전처럼 바뀌고, 색에 집착하면 추해지고, 눈이 집착에 빠지면 전부를 볼 수 없고, 빠른 성과에 집착하면 엉뚱한 곳으로 간다. 집착이 지나치면 살아서 꿈틀거리게 하지만 자기를 초라하게 한다. 집착이 독선으로 발전하면 남까지 어렵게 하고, 대인관계에 부딪힘이 많고, 나중에는 사람과 행복을 잃는다. 어차피 인생은 죽음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착을 버려야 마음에 평화가 생긴다. ‘마음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인간의 마음이 변하는 것은 기적이다.’라고 하지만 마음은 깨우침으로 바뀐다. 고정된 생각과 태도, 가치관, 종교관 등 기존 인식도 새롭고 충격적인 자극을 가하면 얼마든지 깰 수 있다. 다만 욕망에 잡힌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어렵다.
3) 행동하는 곳에 행복이 있다.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만 어떤 순간의 깨우침이 없으면 항상 그 수준이다. 전체를 보는 통찰과 세상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열리고, 가는 만큼 도달하며, 믿고 행동하는 만큼 행복하다. 마음과 행동으로 행복한 사람은 항상 그 수준이다. 신을 생각하는 사람은 보다 높은 에너지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중성자가 물질 속을 빠르게 돌진하려면 아주 작게 쪼개져야 하듯이, 차원 높은 행복을 누리려면 똥 같은 마음들(변덕과 이중성, 보수성과 변화기피, 집착(我執)과 아집, 타인을 무시하는 독선과 오만, 생소한 일을 기피하는 폐쇄적인 고집, 예민하고 병적인 마음, 시도도 하기 전에 품는 어둡고 차가운 마음, 자기 이익과 주장만 높이는 날이 선 마음, 일을 벌이면서 마무리가 없는 산만한 마음 등) 을 영혼의 힘으로 완전 분해하고, 무리가 따르면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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