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이가 달린 유리단지를 무심히 들다가 뚜껑과 몸체가 분리되면서 박살이 난 일이 있었다. 막연히 온전하게 결합된 줄 알고 살피지 않은 경솔함이 원인이었다. 유리단지를 깨트린 이후로 불행은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알았고, 겉으로 보이는 믿음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체가 행복인데, 인간은 여러 이유로  - 우연히 찾아온 각종 사고, 일의 실패와 좌절, 사랑의 상실, 사기로 인한 재무적 손실, 욕망으로 인한 탕진, 이별과 사별, 기대와 반대로 가는 현상 등- 불행을 느낀다. 사람들은 돈! 돈 하지만 돈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사람은 1%가 넘지 않고, 건강을 갈구하지만 한 번도 아프지 않고 죽는 사람이 없고, 사랑을 노래하지만 사랑으로 평온을 얻는 사람은 소수다. 인생의 본질은 어쩌면 고통과 슬픔, 불안과 불행을 요리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인간의 불행은 피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인간 스스로 만든 불행이 더 많다. 인간 불행의 9할은 스스로 만든 불행이다. 나만 불행하다는 자폐 의식, 상대 비교로 나의 그릇이 작게 보이는 상대적 불행의식, 불행이 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일시적 불행에 오래 동안 묶이는 집착, 나는 안 된다는 패배의식 등은 신념 부족과 약한 마음이 만든 불행의식이다. 스스로 만든 불행의식은 행동을 위축시키고 진짜로 불행하게 만든다. 약한 몸에 병이 붙듯이, 의식이 약해지면 불행의식이 생기고 행복을 막는다. 스스로 갖는 불행의식을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나 안에 이미 있는 행복으로 불행의식을 녹이자. 태양에는 그림자가 없다. 빛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행복한 존재라는 각성이 있으면 불행은 존재하지 못한다. 불행은 더 큰 행복을 위한 시련일 뿐이다. 행복은 나의 심장에서 가까운 곳에 이미 와 있고, 행복의 문은 열려 있는데, 내가 초대를 못하고 있다. 불행이라는 놈이 행복의 문을 잠그기 전에 잠자는 행복을 깨워 행복의 문을 개방하고, 불행이라는 놈은 출입을 못하도록 통제하자. 불행의 출입 통제가 어렵다면, 예방접종으로 병균을 미리 투입시켜 병을 차단하는 것처럼, 고행(苦行) 속에서 성장한 백절불굴(百折不屈)을 문지기로 세워서 단순한 불행의식을 계도하자.
불행은 행복의 반대말이 아니라 아직 행복하지 않은 상태다. 불행과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불행은 사라지지 않고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불행을 이겨가는 과정이다. 행복은 야외에서 찾는 보물찾기 게임도 아니고, 행복한 조각을 맞추는 퍼즐게임이 아니다. 행복은 불행의 원인을 찾아서 이겨가는 영성의 게임이며, 불행과 행복, 고통과 희망을 짝 맞추기 하는 놀이이면서, 슬픔을 치루고 찾아가는 인생 적금이다. 세상에 고통과 시련 없이 오는 승리, 쉽게 완성되는 일, 막연하게 오는 행운과 희열은 없다. 고통으로 애간장이 태우지 않고 생기는 사랑의 쟁취, 고통 없이 얻는 감동은 없다. 요행으로 얻으려는 행복은 물위의 수증기처럼 실체가 없고, 고통 없이 누리려는 행복은 물속의 횃불처럼 언어로만 존재한다.

불행은 행복의 출발선. 행복은 신의 선물이 아니고, 불행은 행복이 망가진 상태가 아니다. 불행은 행복으로 나가는 출발선이다. 전화위복(轉禍爲福)처럼 행복도 불행을 거쳐서 온다. 밤은 새벽으로 가는 시간이며, 흔들리며 피는 꽃은 이미 열매이며, 불행은 행복으로 가는 과정이다. 불행은 얼마든지 준비와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다. 불행은 과거 불성실의 결과일 뿐인데 불행에 잡히거나 그냥 피하려고만 하면 행복의 공식은 깨진다. 불행은 행복통장의 잔고를 줄어들게 하지만 불행 자체가 행복통장의 적립을 막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좋은 조건보다 악조건에서 만들어진다. 불행을 피하지 말고 맞장 뜨는 자세에서 행복은 시작되며, 희망의 엔진을 켜고 불행의 길을 달릴 때 행복은 성장하며, 불행이 믿음과 열정으로 분해될 때 행복은 완성된다. 벽은 이동을 막는 물체가 아니라 돌아가게 하는 매체이듯이, 불행은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행복을 강화시키는 재료다. 연료를 태우지 않고 달리는 차가 없듯이, 행복의 연료인 불행을 소화하지 못하면 행복도 없다.

고통을 피하면 행복도 없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즐기자. 누구라도 고통을 피하고, 즐겁고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인생 자체가 그렇지 못하다. 고통 없이 행운을 얻었다면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는가? 헬기를 타고 산 정상에 내렸다면 어찌 등산의 희열을 느끼지 못한다. ? 넘어지고 깨지면서 올라가 정상에 설 때 행복을 느끼듯이, 고통의 좁은 문을 통과해야 행복의 광장으로 나갈 수 있다. 행복은 신의 선물도, 알라딘의 마법도 아니다. 행복은 노력과 고통을 치룬 결과이며, 고통을 즐길 때 생기는 인식작용이다. 고통은 불편하고 짜증이 나게 하는 대상이지만 행복을 만드는 에너지다. 고통은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행복을 추수하기 위한 씨앗뿌리기다. 고통과 시련 없이 행복을 누리려고 하는 것은 초벌구이 도자기가 불구덩이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

스스로 만든 불행의식은 내가 치유해야 한다. 내가 불행의식을 가지면 누구도 치유할 수 없고 오로지 내가 치유해야 한다. 자기 내면의 대화를 통해 왜 불행의식을 느끼는지? 를 살펴보아야 한다. 여유와 자신감 부족, 열등의식과 피해의식, 행동 결핍이 만든 불안감이 주요 원인이다. 불행의식의 진원지를 진단했다면, 불행을 행복의 출발선으로 재인식하고 폭 넓은 행동을 하고, 불행이 다가와 입을 벌려도 두려워 말고 의연하게 대응하자. 불행의식은 민감하게 받아주면 더 설친다. 이미 벌어진 불행은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감수할 대상이다. 반 토막 난 주식이 원금을 회복하려면 4배의 상한가 행진이 필요하듯이, 불행한 일을 행복으로 회복시키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바쳐야 하므로 불행이 반복적으로 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소중하게 받들고 사랑해야 할 가족이 있고, 건강한 몸이 있고, 일할 의지가 있고, 일을 하고 있고, 현재를 만족할 수 있다면, 누구나 다 행복한 상태다. 그 행복이 유지가 되도록 노력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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