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진화4. 밥은 행복을 위해서! 행복은 밥을 위해서 존재한다.



행동과학의 세계적 권위자, 에드 디너 교수가 2010년 한국의 학술대회에 참석해 "130개국 13만 여명을 대상으로 행복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경제규모 세계 15위인 한국의 행복도는 5.3점으로 130개국 평균인 5.5보다 낮다.” 고 했다. 그 이유로 한국인은 물질 중심적이기에 행복도(幸福度)가 낮다고 분석했다. 디너교수는 한국 사회가 물질 중신으로 가면 경제는 성장하더라도 행복도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루소는 <에밀>에서 행복은 영혼의 보상으로 정의했다. 영혼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대목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우리는 육체와 정신의 조합이며, 육체와 정신은 한 지붕에 동거하므로 행복은 영혼만으로 제조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육체와 영혼의 조화에 있다. 육체가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면, 영혼은 육체에 혼을 부여하고, 가동하고, 순환시키는 시스템이다. 육체가 우주의 기운을 흡수하고 발산하는 근거지라면, 영혼은 우주와 자기를 연결하는 에너지다. 육체의 활동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면, 영혼은 정신을 맑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육체와 영혼은 2원 집정체제이면서 서로 교감한다. 육체와 영혼이 따로 놀거나 충돌하면 불행을 만들지만, 영혼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면 행복하다. 영혼과 육체가 조화되면 현재의 고통을 뛰어넘게 하고, 죽음까지도 기쁘게 받아들이게 한다. 영혼의 행복은 다리가 없지만 새벽안개처럼 조용히 찾아오며, 길은 없지만 물처럼 흐르며 마음을 적신다.

육체와 정신이 협력하면 행복하지만, 서로 대립되면 분노와 증오의 좀비들이 판을 치면 불안하고 불행하다. 물질만의 섭취는 육체적 욕망만 비대하게 키워서 정신이 깃들 자리를 내주지 않고, 마음의 양식만 섭취하면 몸이 허약해져 영혼을 담는 그릇이 깨진다. 물질과 정신은 더디게 가더라도 짝으로 움직여야 한다. 인간이 평안을 누리려면 물질 양식과 마음의 양식을 고루 섭취해야 한다. 육체는 음식(물질)을, 정신은 영혼의 양식(행복감, 책, 예술, 정서순화)을 먹어야 유지되고 활기를 띤다. 따라서 우리는 육체를 위해 밥벌이를 해야 하고, 정신을 위해 행복을 벌어야 한다. 일란성 쌍둥이인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밥벌이와 행복벌이를 동시에 해야 한다.

육체를 위한 밥벌이는 귀천이 없는 숭고한 사명이다. 육체는 인간 생존의 하드웨어다. 강하고 건실한 육체에 영혼도 깃든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고, 나무가 있어야 종이도 만들고 사랑의 시도 쓴다. 물질이 풍요해야 몸과 마음이 편하다. 정신력이 강해도 물질이 궁핍하면, 육체가 힘과 리듬을 잃는다. 육체의 활동과 안정을 위해 다양한 밥벌이를 해야 한다. 밥벌이는 육체를 유지하고 행동 영역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귀천이 없다. 젊어서 손과 발로 직접 생업을 찾고, 운동과 건강생활로 신체를 강건하게 만들어 생업의 바탕을 튼튼하게 하고, 인간 세상은 이상 세계가 아니라 모순을 극복해 가는 공간임을 인식하고 부딪히지 말고 맞추어 가며, 준비와 행동으로 필연적 결과를 얻고, 인간 존중의 철학으로 갈등을 조절하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부단히 연구 ․ 노력하고, 돈을 벌고, 모으고, 유지하기 위해 돈을 입체적으로 관리하며, 식솔을 위한 물질 벌이에 에너지를 집중한다. 밥벌이는 물질로 정신을 챙기고 보호하고 행복 벌이의 수단이다.

영혼을 위한 행복벌이는 깨우친 자만이 실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영혼은 인간 존재의 최상위 품격으로, 자부심과 자존감, 만족감과 자유의지, 사랑과 보호의식 등의 행복감을 느껴야 안정되고 무한 에너지를 만든다. 우리는 영혼의 안정과 영혼의 성장을 위해 행복 벌이를 해야 한다.
행복은 무겁고 어두운 곳에 살 수 없다. 행복은 즐거운 곳에 깃든다. 마음부터 즐거움을 느껴야 뇌에서 ‘세로토닌’이라는 쾌감 물질이 분비되어 행복감이 생긴다. 즐거움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즐거움을 만들려면 어색한 공간이 있으면 웃음을 풀어놓을 줄 알고, 자기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자기 자리를 스스로 인정하고 축복해야 한다. 마음이 즐거우려면 그림자를 보면서 빛을 생각하는 밝은 마음을 갖고, 자존심이 한 치 깊이로 상처를 입으면 여유 한 자락으로 감싸는 포용력을 갖고, 나의 즐거운 기분을 깨기 싫어서 상대의 까칠한 말도 웃으면서 받아주어야 한다.

행복을 느끼려면, 즐거운 행동으로 실체감과 자존감을 찾고,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며, 토막 시간이 생기는 대로 책을 읽어서 정서를 저장하고, 웃는 얼굴과 겸손한 말로 상대를 행복하게 해야 한다. 행동으로 나와 남을 기쁘게 하는 행동주의자는 어려운 이를 따뜻하게 해주는 여유가 있고, 자기 수련으로 자기행동 무대를 고고하게 하며, 이웃 사람과 더불어 기쁨을 누린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자기 일로 존재 이유를 찾고, 상대와 더불어 편안함을 추구한다. 행복한 사람은 손과 발로 자신의 밥과 행복을 직접 챙기고, 생산된 행복을 나눌 줄 안다.

밥이여! 당신은 몸이 원하는 영양분을 공급하는 실체이면서 생존을 상징하는 언어입니다. 물과 빛, 땅과 영양분이 생명체의 밥이라면, 밥과 행복, 희망과 사랑은 인간의 밥입니다. 육체의 힘과 정서의 향기를 만드는 밥에는 공짜와 연체가 없다. 어제 즐겁게 먹은 밥도 오늘이면 무효다. 고통이 없는 밥이 있을 수 없듯, 요리가 없는 밥상은 없다. 밥상을 밥과 국과 반찬으로 차리듯, 행복밥상은 생명의 밥, 고통과 불행을 치유하는 반찬, 여유와 감사의 진국을 놓으리다. 반찬과 국이 짜고 맵다면, 삶의 의미와 노동으로 만든 기쁨의 조미료를 첨가하리다. 상대의 무례와 시비 때문에 행복을 잃는다면 이는 밥그릇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다고 그릇을 깨는 짓이다. 파리의 비행이 자유이듯, 상대의 교만과 오만도 내가 맛있게 먹어줄 자유의 밥이다.

행복 벌이여! 당신은 행복을 만드는 동사이며, 행복을 저장하는 절치다. 행복 벌이는 행복을 줍는 절차가 아니라 불행을 수용하고 요리하는 과정이다. 도토리를 주워서 저장하는 것이 다람쥐의 밥벌이라면, 먼지 묻은 행복을 털어서 행복의 원형을 찾고, 불행의식을 소멸시켜 잔한 행복으로 바꾸고, 이미 온 행복이 도망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행복벌이다. 행복 벌이에 신의 어음으로 결재하는 이가 있다면 논리와 분석의 칼을 대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 주리라. 행복 벌이에 누가 영혼의 채권을 사라고 하면, 자기를 볼 수 있는 영혼, 상대를 어여쁘게 받아들이는 영혼, 세상을 밝게 해석하는 영혼, 포용하고 감싸는 강한 영혼을 사리다.

밥과 행복벌이여! 몸과 영혼으로 구성된 당신은 육체를 위한 밥벌이와 영혼을 위한 행복벌이를 동시에 요구합니다. 물질중심의 반쪽은 물질 때문에 영혼을 뺏긴 아픔이 있고, 행복만 찾는 반쪽은 행복 때문에 생존 기반이 흔들린 경험이 있습니다. 물질과 정신은 서로 교감하기에, 밥벌이로 행복을 대체할 수 없고, 행복 벌이만으로 물질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밥벌이로 건강과 행복을 돌보지 않는 것은 미련한 짓이며, 나물 먹고 물을 마시면서 행복의 찬가를 부르는 것은 자기기만입니다. 물질과 영혼이 조화된 온전한 행복을 위해 서로 성격이 다른 존재와 2인 1각 달리기를 하리다. 속도를 늦추고 골인 지점까지 보조를 맞추리라. 물질을 위한 밥벌이와 정신의 평화를 위한 행복 벌이가 함께 하여 물질로 행복을, 행복으로 물질을 키우리라. 물질과 행복은 영원한 동반자라고 노래를 하리다.


=> 행복 벌이와 밥벌이는 동시에 추진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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