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남자--웃는 여자

입력 2006-03-09 17:22 수정 2006-03-09 17:30
 

그가 가진 것이라곤 짧고 날카로운 <칼> 한자루 뿐이었다.

작은 칼을 허리에 차고 갑자기 나타난 몸매 건장한 그를 보고 우리는  <깡패>가 아닌가하고 놀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깡패이기엔 너무나 얼굴이 온화하고 매력적이라는 걸 느꼈다. 30년전 우리 시골마을에 문득 나타난 그는 우리집 사랑채 초당방에 하루 묵어가겠다고 했다.




 언제나 서생들이 묵어가던 이곳에 신분을 알 수 없는 기이한 나그네가 자리를 잡자, 모든 것을 팽개치고 초당방으로 달려가 그 아저씨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에예요?




“내가 뭐하는 사람이냐고..? --그건 내일이면 물어보지 않아도 금방 알게 될 거야”라며 그는 초당방에 팔을 벤 채 벌렁 누워버렸다.




 다음날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는 아버지께 우리집 뒷밭에 있는 대나무 몇그루를 사더니 작은 칼로 대나무를 탁탁 쪼개기 시작했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와보니 집안 곳곳에 <굉장한>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광주리 바구니 조리 대나무자리 키 등이 햇볕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광주리뿐 아니었다. 온동네 여자들은 다 모여 있었다. 여자들 사이에서 그 사나이는 칼로 연신 대나무를 잘라대며 얘기바구니를 털어냈다....그 <남자>가 몇마디를 할 때마다 동네 <여자>들은 배꼽을 안고 까르륵 웃어댔다.




 그는 칼 한자루만 들고 이 세상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이다. 만주벌-백두산-울릉도-대마도 발길 닫는 대로 돌아다니다 대나무를 만나면 바구니를 만들고, 박달나무를 만나면 방망이를 만들고, 소나무를 만나면 달마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갖가지를 만들어내면서도 단지 칼 한 자루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요즘 와서야 그 칼잡이 아저씨는 우리보다 한 세대를 앞선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지금까지 <공장>이란 땅위에 서있는 것으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이 칼잡이 아저씨는 이미 오래전부터 <걸어다니는 공장>이었다...사실 옛날 뻥튀기 아저씨도 <뻥튀기 공장>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지 않았던가.




 이제 곧 <칼잡이 아저씨>처럼 우리도 휴대폰 하나만 들고 제품 콘텐츠 서비스 등을 제공할 수 있는 모바일 매뉴팩터링(Mobile Manufactoring)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그 갈잡이 아저씨가 건너 마을에까지 바구니를 다 팔고 칼 한자루 허리에 차고 다른 마을로 떠날 무렵 한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짓궂게  물었다.




--아저씨는 자식이 몇이예요?




그러자 그는 입을 쑤욱 내밀며 요렇게 대답했다.

 “자식요?  하도 곳곳에!!  흩어져 있어 다 세어보진 못했네요”

 그러자 여자들은 또 다시 배꼽이 튀어나올까봐 움켜쥔 채 깔깔깔 웃어댔다.

 

---하긴 요즘들어 <필자>도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지구촌을 돌아다니며 갖가지 콘텐츠를 만들어 팔며 밥먹고 살면서부터 그때 그 칼잡이 아저씨를 닮아 가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다만, 자식이 몇인지 모른다는 것만 빼고!!

          

        rhee@hankyung.com
대학 4학년 2학기 때 지하철역에서 난생 처음 '한국경제신문'을 샀는데, 거기에 난 '기자모집'이란 걸 본 게 팔자를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그로부터 '기자'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오히려 '중소기업전문'이란 딱지를 하나 더 붙여서....어언간 36년이란 세월을 흘려보내고...그 산전수전 이전구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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