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 사장은 미남이다.

입력 2005-05-09 14:19 수정 2005-05-09 14:22


 

 정윤희 사장은 미남이다. 1백82센티미터 키에 짙은 눈썹과 선명한 얼굴선이 보는 사람을 압도하게 만든다.

 액정화면을 중국과 중동에 수출해온 그가 에쿠스를 몰고 한국경제신문사앞에 나타나면 수위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경례부터 한다.

 그런 정 사장이 어느날 초췌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언제나 검은색의 말끔한 양복에 넥타이차림이던 그가 이날은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중림동 시장에서 3천원이면 살 수 있는 허름한 파카에 그토록 빛나던 머리칼은 무참히 헝클어져 있었다.핏발선 눈으로 쳐다보며 “형님,죄송합니다”만 연발했다.

 일단 그를 중림설렁탕으로 모시고 가서 소주 한병에 설렁탕 두그릇을 시켰다.그가 설렁탕을 먹는 모습은 정말 서울역 노숙자를 방불케 했다. 리츠칼튼호텔 양식집에서 그렇게 세련되게 칼질을 하던 그가 이날은 입가에 국물이 흘러내리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후룩후룩 소리내며 떠먹었다.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이 과연 정윤희 사장인가’라고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는 수출대행업자가 끊어준 어음 5억원을 부도맞는 바람에 자금난이 겹쳐 자신도 부도를 당하게 됐다면서 눈물을 주룩 흘렸다. 이미 자신이 살던 압구정동 아파트엔 채권자들이 보낸 패거리들이 구두를 신은 채 안방을 점거했고 아내와 딸아이는 친정으로 보냈는데 그곳까지 빚쟁이들이 찾아와 숨겨둔 돈을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거였다.

 “저의 인생이 이렇게 무참히 깨질 줄 은 정말 몰랐습니다”라며 다시 눈물을 훔치던 그는 남은 설렁탕 국물을 후딱 마셔버리고 입가를 깨끗이 닦고 갑자기 의연히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았다.

 한참이나 이빨을 깨물고 있던 그는 “형님,저 틀림없이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라며 총총히 등을 돌려 서울역 방향으로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4년간 필자는 정윤희 사장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누군가로부터 캐나다로 피신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 확인할 길이 없었다.

 지난주 서울 선릉역 인근에 있는 기술센터에서 김영호 유한대학장,한장섭 기술표준원부장 등과 SR(Social Responsibility) 표준 제정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출처를 알 수 없는 전화가 한통 들어왔다.

 평소에는 신원을 모르는 전화를 받지 않는데 이날은 회의중인데도 이상하게 전화가 받고 싶었다.

 그 전화는 다름 아닌 정윤희 사장의 것이었다. 정 사장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필자가 그곳에서 회의중이라는 사실을 추적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거였다.

 회의중에 빠져나와 그를 만나자 너무나 반가워 한참이나 부둥켜 안았다.

 돌아온 그는 역시 미남이었다. 짙은 눈썹과 선명한 얼굴선이 다시 사람을 압도하게 만들었다. 정 사장이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이미 그는 재기했음을 알아차렸다.

 정사장은 제조업으로는 단기간안에 재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연구원인 친형의 명의를 빌려 상가개발에 손댄 것이 대박을 터뜨려 다시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도가 난 뒤 피신기간 동안 그래도 가장 위안이 됐던 게 형님이 쓰신 <패자부활 중소기업인> 이야기였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아,그리고 그 중림동 설렁탕집 아직 있습니까?”라고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우리는 그의 에쿠스를 타고 중림 설렁탕에서 다시 갑부가 되어 돌아온 그의 재기성공담을 신나게 들었다.

 필자는 올해로 ‘중소기업’을 담당한지 꼭 30년째가 된다. 그동안 참 많은 중소기업의 부침을 겪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중소기업이란 글자는 4박자이다.

그래서인지 중소기업은 쿵짝쿵짝 4박자로 돌아간다. 어려울 때도 있고 잘되기도 하고, 늪에 빠지기도 하고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송대관의 노래처럼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한민국” 4박자를 외치면 우리는 “중~소기업”이라고 큰소리로 응답한다.

     rhee@hankyung.com 

  
대학 4학년 2학기 때 지하철역에서 난생 처음 '한국경제신문'을 샀는데, 거기에 난 '기자모집'이란 걸 본 게 팔자를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그로부터 '기자'란 꼬리표를 떼지 못한 채...오히려 '중소기업전문'이란 딱지를 하나 더 붙여서....어언간 36년이란 세월을 흘려보내고...그 산전수전 이전구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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