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있는 집으로 쏠린다. - 가난한 사랑노래

입력 2011-03-13 22:29 수정 2011-03-13 22:30
 

변향유전가(便向有錢家: 돈 있는 집으로 쏠린다)

                               - 가난한 사랑노래




명심보감 성심편에 보면 인의(人義)는 진종빈처단(盡從貧處斷)이이요 세정(世情)은 변향유전가(便向有錢家)니라는 구절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의리는 다 가난한 데서 끊어지고, 세상의 인정은 곧 돈 있는 집으로 쏠린다는 뜻이다.




명심보감의 대부분의 구절은 착하게 살고 가난해도 재물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안빈낙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근데 이 구절은 세상의 인정이 돈에 따라 달라지는 세태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며칠 전 후배가 “사는 게 택시타고 택시미터기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고  공감을 많이 했다. 하긴 집에서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든다. 조금만 다니면 다니는 것 자체가 다 돈이다. 그래서 좋고 편리한 부분도 많지만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돈만이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시가 있다. 신경림 시인의 시로 그가 길음동 산동네에 살 때 이웃에 살던 한 가난한 젊은이를 위해 헌사한 시라고 한다.  그는 너무 가난하여 사랑했던 여자에게 결혼하자는 말을 차마 못하고 이별을 거듭하다 신경림 시인 덕분으로 어느 비좁고 허름한 지하실에서 시작했지만 사랑의 결실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시이다.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실천문학사, 2009.)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시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 등 인간적인 감정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젊은이의 애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오히려 더욱 순수한 마음 끝까지 변치 않는다면 가난은 이길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이다.




시인은 시집 후기에 이런 말을 써 놓았다. “시골이나 바다를 다녀보면 모든 사람이 참으로 열심히 산다. 나는 내 시가 이들의 삶을 이들의 삶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을 한다”고 말이다. 세상사 돈으로 많은 것이 좌우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한편의 시는 시인의 바람대로 꿈을 꿀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신경림 

1936년 충북에서 출생하였고 1960년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한직의 추천을 받아 1955~56년 〈문학예술〉에 시 〈낮달〉·〈갈대〉·〈석상〉 등이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고향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현대문학사, 휘문출판사, 동화출판사 등에서 편집일을 했다. 한때 절필하기도 했으나 1965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다. 시집으로 <새재〉(1979)·〈달넘세〉(1985)·〈남한강〉(1987)·〈우리들의 북〉(1988) 등이 있다. 1973년 만해문학상, 1981년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았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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