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우습게 보지마라

입력 2009-11-03 10:07 수정 2009-11-03 10:07
막걸리는 그냥 술이 아니다. 유산균을 많이 함유한 발효주다. 달콤쌉싸름하고, 부드럽고 순하고 시원한 청량감이 어우러진 맛이다. 농부가 밥대신 막걸리로 농삿일의 고단함을 잊었던 우리의 전통주다. 값도 싼 서민의 술이다. 그런데 이 막걸리가 요즘 인기 급등이다. 일본에선 막걸리 열풍이라 할 정도고, 뉴욕이나 유럽에서도 막걸리란 새로운 술에 대한 관심이 크다. 해외에서의 막걸리 인기를 뒤늦게 알아챈 우리나라 사람들도 막걸리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TV에선 막걸리에 대한 다큐가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막걸리 예찬론자들의 목소리도 점점 많아진다. 허름한 선술집에서나 마시던 막걸리가 이제는 특급호텔에서도 마실 수 있고, VIP들의 행사에서도 나올 정도다. 심지어 한일 정상회담에서 막걸리가 건배주로 나왔으며, 아시아나항공은 일본노선에서 쌀먹걸리를 내놓고 있다. 막걸리의 신분상승은 놀라울 정도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론 우리의 것에 대한 제대로된 평가가 어렵다. 일본에서의 막걸리 열풍, 뉴욕에서의 막걸리 관심, TV를 통해서 해외에서의 막걸리 열풍에 대한 소개 등이 이어지면서 우리가 다시 막걸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막걸리라는 매력적인 자산이 있어도 그 가치를 우리가 몰라봐서 소외의 길로 들어서게 방치해뒀었다. 그러다가 외국에서 막걸리가 재평가받으며 새로운 웰빙술로 와인의 가치에 버금갈 가치로 대접받을 수 있다고 하니, 국내에서도 뒤늦게 막걸리가 급속유행한다. 그동안 방치되고 소외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전통주의 명맥이 사라지고, 막걸리의 기반도 많이 사라졌다. 전통주를 국세청에서 관리하던 체제였다보니 전통주의 산업화에 한계가 있었다. 이젠 다시 전통주이자 막걸리를 되살려야한다. 제대로 살려야 한다. 우리끼리 마시고 말 값싸고 흔한 술이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마실 와인과 사케에 비견되는 아주 신선하고 매력적인 발효주로 살려내야 한다.

막걸리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사케다. 일본은 자신들의 전통주 사케를 프랑스 와인처럼 세계적인 술로 만들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정부가 발벗고 나서고 있다. 덕분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사케 열풍이 불어 와인을 제치고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아가고 있다. 사케는 와인처럼 고급스럽고 세련된 술문화로 인식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엔 사케를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했다. 바로 막걸리다. 홍대앞의 사케전문점은 어느새 막걸리전문점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종류의 사케를 가져다놓은 사케전문점은 수년간 최고의 인기를 끌었는데, 이젠 그곳이 수많은 막걸리 종류를 가져다놓은 막걸리 전문점이 된 것이다. 장사꾼은 유행에 가장 민감하다. 사케를 막걸리가 대체했다는 것만으로도 요즘 막걸리가 얼마나 대세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에 사케 열풍이 불었지만,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사케보다 일본으로 수출하는 막걸리가 3.6배 더 많은 물량이다. 우리가 사케 열풍만 관심가지는 사이 일본에선 우리도 몰랐던 막걸리 열풍이 우리나라의 사케 열풍보다 훨씬 강하게 불었던 것이다.

왜 우리는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걸까? 왜 외국에서 우리가 가진 좋은 것에 대한 평가를 하면, 그제서야 우리도 우리것을 다시 평가하는지 안타깝다. 우리의 좋은 것이 더 발전하고 더 산업화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국내에선 소외되고 도태되게 만든 상황이 안타깝다.

막걸리처럼 소금도 안타까운 상황은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금은 프랑스 게랑드 소금이다. 우리나라에서 게랑드 소금은 ㎏당 6만~9만원 정도에 팔린다. 우리나라 천일염이 ㎏당 수천원 수준이니 엄청난 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게랑드 소금에 비할바 없는 소금이 있다. 신안 신의도 소금을 비롯한 우수한 품질의 천일염들이 많다. 심지어 두바이의 칠성급 호텔에선 게랑드 대신 신안 신의도 천일염을 쓰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식품이 김치, 고추장, 된장, 젓갈 같은 염장발효식품인데, 우리는 그동안 소금의 가치를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우리의 좋은 소금도 외국에서 오히려 더 크게 평가받는다. 덕분에 요즘들어선 국내 우수한 천일염도 국내에서 재평가 받고 있다.

막걸리와 소금에 이어, 한글도 그렇다. 사실 한글은 앞의 두가지보다 더 중요한 상품이다. 유네스코에 의해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한글은 세계의 관련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이자 언어라고 극찬을 하는데도 우리는 영어에 대한 관심만 높을뿐 한글은 늘 소외받는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의 문맹률을 자랑하고 있는 이유도 한글 덕분이다. 가장 쉽고 체계적인 언어이기에 배우기도 쉬워 문맹률이 낮은 것이다. 1986년부터 유네스코가 제정한 인류 문맹률을 떨어뜨리는데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 이름이 바로 '킹 세종 프라이즈', 즉 세종대왕상이다. 한글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언어는 자연발생적이고 오랜 세기를 거쳐 진화된 산물인 반면, 한글은 발명자도 있고 적용 시기도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 주도로 개발된 언어다. 세계에서 이런 사례는 한글밖에 없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한글의 종주국인 한국에서 한글에 대한 중요성은 점점 낮아진다. 정부나 지자체는 발벗고 영어쓰기에 앞장서고 있고, 기업도 영어쓰기가 일상화되었다. 아주 매력적인 문화적 자산을 소통의 효율성이란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영어로 대체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한글을 세계화시키는 것은 한국의 상품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막걸리와 천일염, 한글을 참 묘하게 닮았다. 세계적으로도 아주 경쟁력있고 매력적인 우리의 것인데, 너무 가까이있고 흔하다보니 그 가치를 잊어버리고 우리에게 소외받았던 존재란 공통점을 가진다. 안타깝게도 흙속의 진주를 발견해내는 능력은 우리에겐 별로 없나보다. 우린 우리의 진주를 흙속에 묻어버리기만 했다. 세계인의 눈으로 진주를 발견해내니, 우리도 덩달아 진주 예찬을 하는 식이다. 우리가 먼저 우리의 진주를 흙속에 밀어넣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지금도 숨겨져있는 수많은 우리의 진주를 흙속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적 자산은 우리나라가 가진 최고의 자원이기 때문이다.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www.digitalcrea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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