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다만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 뿐이다

입력 2010-01-28 17:28 수정 2010-01-28 17:28
도지재인심(都只在人心:모든 것이 다만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 뿐이다)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명심보감 천명편(天命扁)에 보면 천청(天聽)이 적무음(寂無音)하니 창창하처심고(蒼蒼何處尋)고 비고역비원(非高亦非遠)이라 도지재인심(都只在人心)이니라는 구절이 있다. 이 뜻은   “하늘의 들으심이 고요하여 소리가 없으니 푸르고 푸른 저 어느 곳에서 찾을 것인가. 높지도 않고 또한 멀지도 않다. 모든 것이 다만 사람의 마음속에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모든 일에는 하늘에 뜻이 있다고 믿고 늘 하늘의 뜻에 맞추어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단지 옛날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대에 사는 우리도 취직이 안 될 때 열심히 노력해도 기회를 얻지 못할 때 하늘의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하늘의 뜻이 있어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 그것을 알고 찾을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 이 구절은 명쾌하게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늘의 뜻은 열심히 의지와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는 자신안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고민을 1930년대의 시인인 백석의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민족 현실의 시기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고향의 풍습을 통한 민족 문화 정체성의 회복을 꾀하였던 시인이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 백석 -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중략-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동순, 백석 시 전집, 창작과 비평사, 2003. )


이 시의 계절적 배경은 바람도 많이 불고 추운 겨울날이다. 이 시에서 시적화자는 아내와 집을 잃고 부모형제와도 떨어져 쓸쓸한 거리를 혼자 헤매다가 날이 저물자 어느 목수네 집의 허름한 방으로 세를 얻어 든다. 이런 배경만으로도 시적 화자의 외로움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놓여 있는 어려운 현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시적 화자는 혼자 누워 쓸쓸하게 뒤척이는데 그것은 백석의 모습일 것이다. 집안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연인 자야여사에 대한 마음, 부모님에 대한 생각, 혼자 고향을 떠나 떠돌아 다니는 자신에 대한 연민과 슬픔을 가지고 삶의 비애도 느끼고 탄식과 자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암담한 삶의 현실은 내가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운명적인 큰 힘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시인의 마음이  내가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는 말을 하게 한다. 그것은 일종의 운명론적 세계관의 표명으로 모든 희망을 잃은 시인의 모습을 더욱 강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시인의 생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어느 먼 산 바위 옆에, 눈이 와도 “굳고 정하게” 서서 마을을 지키고 있는 갈매나무를 생각해낸다. 여기서 눈은 단지 계절의 변화를 말해주는 소재가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을 대신하는 소재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갈매나무는 아마 고향마을에 서 있던  나무일 것이다. 
 
백석은 외롭고, 세상살이에 힘들 때, 고향마을을 꿋꿋이 지키고 서 있는 갈매나무를 기억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그는 식민지 현실의 외로운 떠돌이 삶에 자신을 함몰시키지 않고 자신 안에 중심을 세우고 다시 한 번 다잡으며 그에게서 상실된 것들인 고향과 가족을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시인의 시에서는 일제강점기라는 상황과 근대화가 시작되어 모든 가치관이 변화되어가며 소용돌이치는 현실속에서도 풍요로운 고향과 유년기의 아름다운 추억을 시로써 형상화하여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고향의 모습을 반추하게 한다. 
 
이것은 다만 시인 백석의 이야기뿐만 아니다. 누구에게나 외롭고 힘든 삶의 일상에서 지쳐가는 나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은 바로 나이기에, 자신안의 중심점으로 누구에게나 “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한 그루쯤 마음속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갈매나무는 힘들어도 꿋꿋하게 상황을 인내하며 해 보겠다는 의지를 다짐하는 것의 표현이며 열심히 하루를 노력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또한 명심보감에서 말하는 도지재인심(都只在人心)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백석
1912. 평북 정주 출생 ~?
1935년 8월 〈조선일보>에 〈정주성 定州城〉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만주에 머물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 정주에 머물면서 글을 썼으며, 6·25전쟁 뒤에는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
1936년에 펴낸 시집으로 『사슴』이 있고 작품으로는 <여우 난 곬족〉(조광, 1935. 12)·〈고야 古夜〉(조광, 1936. 1)등이 있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62명 34%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122명 66%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