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시위, 대만의 딜레마

입력 2014-03-30 16:05 수정 2014-11-04 14:38

1996년 여름휴가 때 친구와 함께 대만의 수도인 타이페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인상 깊었던 것은 거리에 넘쳐나는 일본문화였습니다. 가게 어디를 가더라도 일본 J-POP이 흘러나오고 TV광고에도 일본 연예인이나 일본어가 자주 등장하더군요.

늦은 저녁 야시장 구경을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 저에게 대만의 할아버지가 일본어로 말을 걸어 왔습니다. 일본인 관광객이냐고 묻더군요. 참고로 저는 대학시절 일본 교류동아리 활동을 했기에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합니다. 한국인이라고 밝히고 야시장 위치도 다시 물어볼 겸해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만과 마찬가지로 일본 식민지를 당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곧 잘하는 할아버지가 90년대 후반에만 해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대만 할아버지가 전혀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대만에 판치고 있는 일본문화에 대한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90년대 후반, 한국도 일본문화 개방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일본문화가 개방되면 온통 왜색으로 점령되어 우리문화가 설 곳이 없어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반대가 되었죠. 그건 정말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저는 이미 일본문화가 만연해져 있는 대만에 대해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 할아버지에게 과거 식민지시절의 고통을 겪었던 분으로서 요즘 대만의 세태가 걱정스럽지 않냐며 물었습니다.

하지만 대만 할아버지의 의외의 답변을 들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다름 아닌, 일본은 고마운 나라였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연로하신 할아버지는 일본이 패망 후 대만에서 철수한 것에 쇼크를 받아 돌아가셨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저는 일본이 한국에서 저질렀던 만행이나 중국 남경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할아버지에게 일본 제국주의의 잔학상을 강조했지만, 할아버지는 일본이 그럴 리가 없다 그것은 일본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한국사람들의 과장된 이야기이며, 특히 남경대학살은 거짓말 잘하는 대륙(중국)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오히려 저에게 역정을 내셨습니다.

유쾌하게 시작된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얼굴을 붉히는 수준까지 가서야 끝이 났습니다.

저는 남은 대만 여행기간 내내 할아버지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똑 같이 아픈 식민지 역사를 지닌 대만이 왜 일본에 대해 이리도 거부감이 없으며, 심지어 우호적인지 그리고 같은 중국인들에게는 오히려 적대감을 느끼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대만의 근대사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다수 대만 사람들은 대륙의 중국사람들이 아니며, 따라서 중국공산당뿐만 아니라, 심지어 현재의 대만 국민당까지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대만이 일본의 지배로 주인이 바뀌었고, 당시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대만인들에게는 주적을 청나라로 돌리며 선린, 우호적인 정책으로 지배를 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일본이 물러나고 중국공산당에 참패한 국민당 장개석 정부는 대만으로 건너와 대만을 다시 지배하며 강압적인 폭정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만인들은 대륙의 중국인에게 적대감을 느끼고 일본에 우호적이란 것이죠. 그리고 상당수의 대만인들은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대만독립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대만인이라는 것이죠. 저는 그제서야 그때 대만의 할아버지가 왜 저에게 역정을 냈는지, 대만의 거리마다 일본의 노래가 넘쳐나도 대만 사람들은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대만이 시끄럽습니다. 중국과 체결된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에 반대 시위를 벌이던 대만 대학생들이 급기야 입법원(국회)과 행정원(중앙정부) 청사를 점거했기 때문입니다.

대만 학생들은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馬英九(마잉주)정부가 독단적으로 이 협정을 강행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중국 노동력이 대거 대만으로 몰려 들어 정작 대만인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며 삶의 질도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한때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리며 우리나라와 자웅을 겨루던 대만 경제는 성장 정체의 덫에 걸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역시 성장 정체의 덫에 걸려 힘들어 하고 있지만 대만 경제의 경우는 2000년대 이후로 우리에게도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2013년 대만의 GDP(명목기준)는 4,846억불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GDP(명목기준)는 1조1,975억불에 이릅니다. 대만의 인구 역시 2천3백만 수준으로 내수시장 또한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장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시장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대만정부의 절실함도 이해는 갑니다. 현재 중국의 힘에 밀려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과의 교류겠죠.

 

하지만 배가 고파서 상대에게 손을 내민다면 그 이상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오늘날 대만이 처한 딜레마입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대만 경제를 자신의 세력권 안으로 예속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적지 않은 대만인들이 자신들은 중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상당수의 대만인들은 공산당이 집권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되는 것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번 대만 대학생들의 시위는 중국과의 협정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단순한 경제적 불안감뿐만 아니라, 그들의 심리 기저에 깔려있는 중국에 대한 적대감과 불안감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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