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의 가격이 떨어진다면…

입력 2014-03-15 20:29 수정 2014-03-20 21:02

[斷想] 우산 장사는 비가 오길 바라고 짚신 장사는 날씨가 맑기를 바라고… 같은 하늘을 두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이렇게 다릅니다.

같은 경제를 두고 어떤 사람은 자산의 가치는 떨어지고 돈의 가치는 올라가길 바라고, 어떤 사람은 그 반대를 바라고 있습니다.

은퇴 후 노후자금을 금융기관에 예치해 놓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전자일 것이고, 주택담보대출로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후자이겠죠.

그러니 경제정책을 펴는 나랏님들도 참 힘들 것 같습니다.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할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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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이란 말도 안 되는 제목의 영화가 나왔듯이,

「한국에서 물가가 떨어진다면...」 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제목의 시나리오가 한국에서 버젓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디플레이션(deflation)’의 징후가 한국 경제에서도 보이기 시작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플레이션이란 물가 하락을 말합니다.

'물가 하락'이란 '물건의 가격이 떨어진다' 또는 '자산의 가격이 떨어진다' 뭐 이렇게 달리 표현할 수도 있겠죠.

 

그럼 우리 경제에 어떤 징후들이 보이길래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걸까요?

 

(1) 부동산시장 측면에서 본다면,

집값 상승보다 전세값의 상승폭이 더더욱 커지고 있다는 거죠.

단순히 전세값이 집값보다 더 오르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그 저변에 '집을 사서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났다'란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게 문제인 같군요. 집값 하락이야말로 대표적인 자산가격의 하락인데 말이죠.

 

(2)주식시장 측면에서 본다면,

2013년 한해 동안의 주식 거래량이 2012년 대비 32.7% 감소했다고 합니다. 여기다 삼성전자나 현대차를 제외하면 코스피지수가 1500수준에 머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착시 현상에 빠져 있을 뿐, 사실은 주식시장에서도 자산가치 하락이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인 거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디플레이션' 즉, 물건 가격이 떨어지고 자산의 가격이 떨어진다면

생활비도 적게 들고 내 집 마련도 쉬워질 것 같은데...

 

왜 여전히 우리서민의 삶은 팍팍하며 왜 경제전문가들은 디플레이션을 우려를 하고 있을까요?

 

디플레이션은 단순한 물가하락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 디플레이션의 핵심은 수요의 급감 때문!!!

 

물가가 하락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이나 신기술 개발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는 더 싼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사게 되므로 수요가 늘어나고 이에 발맞춰 기업들은 생산을 늘리고 자연스레 고용도 늘어나 가계의 소득은 증가하게 되죠. 증가한 소득으로 수요 또한 다시금 늘어나게 됩니다. 실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죠.

 

하지만 현재 우리 경제에서의 자산가격 하락 원인은 생산성 향상이나 신기술 개발이 아닙니다. 바로 그 주범은 고령화와 가계부채입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던 그 두 녀석이죠.

집을 사려고 하는 30대 중반~50대 초중반의 인구가 2012년 정점을 찍고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163.8%로 OECD 평균보다 20%포인트 높은 수준입니다.

 

사람들은 늙어가고 그나마 빚더미에 파묻혀 있으니 누가 과연 물건이나 자산을 척척 사주겠습니까? 이렇듯 수요가 급감하니 물가와 자산가격은 하락할 수 밖에 없겠죠.

 

디플레이션이 더욱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몸부림칠 수록 더욱더 그 늪으로 빠져든다는 것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값이 떨어지면 정작 집을 사야 할 사람도 그 의사결정을 보류하게 됩니다. 어차피 좀더 있으면 집값이 더 떨어질 텐데 당분간은 전세에 살면서 좀더 참아보자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지금이 딱 바로 그러한 상황이죠. 물론 이는 개인으로서는 당연한 의사결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주택구입의 수요가 뚝 떨어지므로 집값은 더 떨어지게 되죠.

 

기업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생산을 위해 필요한 공장 부지나 기계의 가격이 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투자를 보류하게 됩니다. 어차피 수요가 줄어 추가적인 생산을 늘릴 필요도 없겠거니와 이러한 이유로 꼭 필요한 투자도 주저하게 됩니다.

기업 투자가 줄어들고 고용도 줄어들고 이에 따라 소득도 줄어들고 소비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진행되는 거죠.

 

♠ 디플레이션 시대엔 부채가 독!!!

 

만약 디플레이션 징후가 보인다는 게 사실이라면 부채는 더더욱 무서운 독이 됩니다. 자산의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반대로 그것을 살 수 있는 돈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따라서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유리하게 되지만, 돈을 빌린 채무자는 갚아야 할 돈의 가치가 올라가므로 불리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심각해지면, 채무자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자산이 더 떨어지기 전에 이를 처분하여 빚을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시장에 자산들의 매물이 나오게 되면 당연히 자산가격은 더욱더 떨어지고 반면 돈의 실질가치는 더 올라 빚 부담이 더 커지게 되는 거죠.

 

디플레이션이 자칫 잘못하면 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거죠.

 

♠ 디플레이션이라고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다

 

물론 징후가 보일 뿐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져있다고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근원 인플레이션이 1.7%인데 모든 분야에서 물가가 떨어진 상황이 아니므로 디플레이션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거시건전성 규제가 있기 때문에 가계부채 자체가 금융 안정을 해치고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조짐이 보이는 게 사실이라면 자칫 디플레이션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기에 이에 대비를 해서 가계의 자산구조를 점검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우리 경제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디플레이션! 유비무환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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