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인화성 물질에 방아쇠 당기기

입력 2011-10-16 13:14 수정 2011-10-16 19:47



 

새들의 습격을 다룬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라는 스릴러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새들의 공격으로 주유소에 기름이 흘러나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상태에서 차 한대가 들어옵니다.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한 운전자는 주유를 하기 전에 담뱃불을 붙이고 이를 바닥에 휙 던져버립니다. 순간 “쾅”하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주유소 전체가 날아가 버립니다.

 

요즘에야 주유소 근처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몰지각한 사람은 없겠지만 새라는 영화가 발표된 게 1963년이고 보면 그 시절엔 그런 몰지각한 행동이 다반사였는지도 모르죠.

 

여하튼 주유소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행위가 없었다면 주유소가 폭발하지도 않았으며 운전자도 주유만 하고 그 주유소를 떠났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안전하게 말이죠.

 

그러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주유소에서 담뱃불을 붙인’ 그 행위 자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 ‘주유소에서 담뱃불을 붙인’ 독립된 행위 자체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전에 이미 주유소는 새들의 습격을 받았고 그래서 주유소 바닥은 흥건하게 기름이 유출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주유소는 유출된 기름으로 아주 위험한 상태였고 운전자는 그것이 폭발하도록 방아쇠를 당긴 역할을 했을 뿐인 거죠.

 

결과적으로 위험을 초래한 것은 담뱃불만이 아니라 유출된 기름도 한몫을, 아니 더 큰 비중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정부의 어쩔 수 없는 금리동결

 

얼마 전 프랑스의 유명한 신문인 [르 몽드]에서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의 경제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경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랬는진 몰라도 금통위는 10월에도 금리동결을 발표했습니다. 무려 4개월째 금리가 동결된 상태입니다. 이로서 정부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보다 가계부채로 인해 촉발될 수 있는 국내경제의 대재앙과 세계 경제의 둔화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우리경제의 악영향을 제어하는 데 더 치중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기대 인플레이션은 더 높아질 것이며 이는 다시금 우리 경제를 옥죄일 겁니다.

 

물론, 한쪽면만 부각해서 말해선 안되겠죠. 금리동결은 앞서 말한 가계부채나 대외수출 등에는 어떤 형태로든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것은 현재 우리경제가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아주 골치 아픈 상태라는 겁니다. 금리를 동결시키는 것이 임시 방편은 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가계부채 원금을 줄일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우리 경제도 그 주유소와 같아…

 

[르 몽드]에서도 언급했듯이, 지금 현재 우리 경제는 주가하락과 달러 대비 원화가치 절하, 국채가격하락 등으로 이로 인해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비해서는 심한 상태는 아니지만 경제성장 면에서 그와 비슷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겁니다.

 

치솟는 원달러 환율 역시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일부 소진해가면서 개입했지만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저축률도 2.8%로 OECD 회원국 평균 6.1%에 비해 크게 낮으며 무엇보다 높은 가계부채 문제가 구조적 문제로 한국 경제성장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이렇듯 현재 우리경제는 밀폐된 공간 안에 인화성 물질로 가득 차 있는 형태와 비슷합니다. 인화성 물질로 가득 차 있다고 해서 그게 바로 폭발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주유소에 유출된 휘발유가 흥건히 젖어 있다고 하더라도 멀리서 볼 땐 아무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이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전혀 위험하지 않은 정상적인 상황은 결코 아닙니다.

누군가 담뱃불을 ‘휙’ 하고 던져버리기라도 하면, 누군가가 방아쇠를 ‘틱’ 하고 가볍게 당겨버리기라도 하면 ‘쾅’ 하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지 그 도구가 무엇일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소한 도구라도 인화성 물질에 조그마한 불꽃만 튈 수 있더라도 큰 재앙이 됩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그 ‘방아쇠 당기기’가 현실화 되기 전에 우리는 밀폐된 공간에서 서서히 인화성 물질을 빼내야 합니다.

 

인화성 물질을 다루는 것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를 위해 정부부터가 체계적이고 신중한 장기 플랜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은 충분히 그럴 실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한가지 크게 우려되는 것은 선거가 코 앞이라는 겁니다. 체계적이고 신중한 장기 플랜을 세우기엔 세상이 너무 시끄러울 것 같아서 입니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잡아 먹을 정도로 말입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229명 37%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396명 6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