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에게 칼자루를 맡겼다: 글래스-스티컬법 폐지

입력 2010-01-31 14:00 수정 2010-02-07 13:59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새로운 금융구제안을 내놓아 월가가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금융규제안의 핵심이 다름아닌 ‘글래스-스티걸법’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제가 대학시절 배웠던 ‘글래스-스티컬법’(Glass-Steagal Act)

 

1933년 미국 대공황의 여파로 탄생한 이 법은 미국의 금융기관(은행)을 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 투자은행(Investment Bank) 이렇게 둘로 나누어 이른바 ‘칸막이’를 세운 법입니다.

 

대공황 당시 서민들의 예금을 받아서 그 돈으로 위험한 투자를 일삼았던 미국의 은행들

 

당연히 대공황으로 파산하게 되었고 이는 해당 은행뿐만 아니라 가계 및 국가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되었죠.

 

그래서 미국 정부는 앞으로 서민들의 예금을 받는 은행을 ‘상업은행’이라 하여 이들은 ‘고위험-고수익’의 투자를 못하게 하고,

 

굳이 고위험-고수익의 투자를 하겠다는 은행은 ‘투자은행’으로 만들어서 그러한 투자를 하되, 이들 은행은 일반 서민들의 예금을 받아서 손 쉽게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죠.

 

적어도 서민들의 예금으로는 위험한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

 

그게 바로 제가 대학시절 배웠던 ‘글래스-스티걸법’의 요점이었죠.

 

솔직히 고객으로부터 ‘어디어디 투자하겠다’며 펀드자금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이자를 주는 예금을 받았다면 이를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금융기관은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수익성뿐만 아니라 위험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글래스-스티컬법의 당위성을 강조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그런데 이법이 1999년 폐지가 되었답니다.

 

“애들에게 칼자루를 맡기는 것은 위험하지만, 우리 같이 뛰어난 투자전문가들에게는 결코 위험한 일이 아니다.”

 

“정부는 더 이상 쓸데없는 규제를 내세워 전문적인 금융투자를 막지 마라.”

 

“잘 알지도 못하는 정부는 가만 있으라, 우리가 돈 더 벌어 준다는 데 무슨 말이 그리 많으냐!”

 

당시 월가에서는 금융규제완화와 자유경제논리를 내세웠던 거죠.

 

물론, 모르긴 몰라도 월가의 엄청난 자금력이 이 법을 폐지시키는 로비에 쓰였겠죠.

 

하지만 이 법이 폐지된 지 10년이 채 지나지도 않아 미국은 급기야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키는 장본인이 됩니다.

 

상업은행의 대명사였던 미국의 CITI은행이 서브프라임 부실로 엄청난 액수가 물린 것도 이 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오바마 정부가 은행의 규모를 제한하고 다시금 상업은행이 ‘고위험-고수익’의 투자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막기로 했답니다.

 

상업은행이 모기지유동화증권(MBS) 등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새로운 규제안을 발표했고, 그 뿐만 아니라, 이들 상업은행이 헤지펀드나 부동산 사모펀드 등에 투자하는 것도 제한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97년 우리나라에서 외환위기가 터지자 미국 중심의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어린아이에게 칼자루를 맡겼다’며

 

우리 금융기관에게 외환관련, 파생관련 상품들의 투자를 허용한 한국정부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우수한 선진금융기법을 전하겠다고 우리 금융기관을 인수하거나 지분참여를 했었죠.

 

하지만 그들 역시 위험하게 칼자루를 휘두르던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큰 사고가 나고서야 외양간을 고치나 봅니다. 1933년 대공황이 발발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듯이 말입니다.

 

오바마 정부의 이번 신 금융규제가 ‘글래스-스티컬법’의 부활이라고 이야기 되는 것도 이런 맥락 때문입니다.

 

만약 1999년 이 법이 폐지되지 않았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 언제나 반성할 줄 모르고 돌고 돌기만 하는 아이러니한 역사입니다.
증권회사의 PEF 운용역으로 있으며, 저서로는 '알기쉬운 금융상식1,2,3', '부자의 첫걸음 종자돈 1억만들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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